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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RQxfckJ8Q4c?t=1606

 

 

2021124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42

끔찍한 비극 후에 벧엘로 올라가다

(창세기 3418~ 355)

 

[들어가는 말]

 

오래 전 월남전 때 베트콩이 미군 한 명을 죽이니까, 그가 소속된 미군 부대가 쳐들어와서 그 마을 주민 전체를 죽이고 증거 인멸을 위해 아예 그 마을 자체를 없애버렸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일에 참여한 군인들이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도 테러리스트들이나 중동의 어느 나라 군대가 어느 마을에 와서 비슷한 일을 저지르는 소식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전쟁에서나 벌어질 법한 그런 사건이 바로 믿음의 조상인 야곱의 집안에 의해 집단적으로 저질러졌다는 데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래 전 르완다에서 소위 인종 청소가 일어나서 그 만행에 세계의 사람들이 경악한 적이 있습니다. 그와 비슷한 일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야곱의 집안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하란에서 가나안에 오기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에, 야곱은 가나안 생활이 아주 평탄할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기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까지 받았으니 그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세겜에서 장막을 세울 수 있는 땅을 사고,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그곳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오늘까지 강한 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셨으니 앞으로도 나를 붙들어주셔서 내 생활이 평탄할 것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딸 디나가 그곳 사람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더구나 그런 짓을 벌인 사람이 일반 주민이 아니라 바로 그곳 지도자의 아들이며 추장인 세겜이였다는 사실은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야곱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양을 치는 아들들이 들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의 아들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들은 세겜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를 속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디나를 좋아한다니까 결혼은 시켜주겠지만 그 전에 세겜 자신과 모든 남자들이 할례부터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세겜은 그들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주민들을 설득해서 집단적인 할례를 행했습니다.

 

남자가 할례를 받으면 며칠 동안은 굉장히 고통을 받는데, 바로 그럴 때 야곱의 아들들이 칼을 차고 쳐들어 가 세겜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그것도 부족해서 그 성을 노략한 후 아이들과 여자들을 다 잡아가는 일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책망하는 아버지 야곱의 말에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학 반항했습니다. 우리는 가장 의로워야 하고 가장 분별력 있어야 할 야곱 집안의 식구들이 이웃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토록 무자비하고 잔인한 보복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끔찍한 비극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려는 것입니까? 누군가가 우리나 우리 가족들을 해치려 들 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 배, 이십 배, 백 배 보복해도 된다는 것입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엄연히 할례를 받았고 지속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구제불능의 죄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냥 있는 그 모습대로 살라는 것입니까? 그것을 오늘 함께 찾아보기 원합니다.

 

 

1.   야곱의 아들들의 세겜 성 살육

 

하나님과 약속대로 벧엘로 가지 않고 자기가 선택한 세겜 땅에 정착한 야곱은 결국 그곳에서 굉장히 험악한 일을 당했습니다. 딸 디나가 대낮에 그곳 추장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 사건으로 인해 사랑하는 딸이 그런 일을 당함으로써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사건이 그보다 더 큰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여동생의 소식을 들은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칼로 진멸시킨 것입니다. 그들은 교활하게도 세겜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표시로 행하라 하셨던 할례라는 하나님이 주신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그들의 말을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좋게 여기므로, 이 소년이 그 일 행하기를 지체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며 그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가장 존귀하였더라” (18-19)

 

세겜은 디나가 너무 좋아서 사과도 하지 않고 그냥 와서 결혼하게 해달라고 했고 그 아버지도 결혼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몰과 세겜도 문제이지만, 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책임은 사실 야곱에게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들이 세겜과 하몰에게 이런 제안을 할 때 다른 데 간 게 아니라 거기 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듣고 있었으면서도 그때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세겜과 하몰 그리고 그 백성들도 자기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은 전혀 없고, 그저 어떻게 하면 세겜 사람들과 별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이 땅에서 이방인 신세이니까 자칫 잘못하면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들과 잘 지낼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제안을 마땅히 거부했어야 합니다. ‘얘들아, 할례는 결혼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할례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야. 가서 일단 디나를 찾아오자. 그리고 차근차근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고 해결해보자.’라고 나왔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그들의 성읍 문에 이르러 그들의 성읍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그들이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데려오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 (20-23)

 

세겜과 하몰은 가서 백성을 설득합니다. ‘이들이 우리와 결혼하게 하고, 물건도 교환하며 장사도 하게 하고, 교류를 하게 하자. 그러면 저들이 가진 부가 다 우리 것이 되지 않느냐?’ 하몰과 세김의 말이 그곳 주민들에게 먹혀 들어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세겜과 하몰이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는 지도자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얼마나 지도자의 말에 순종을 잘하는 백성인가를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무조건 남을 따르지 않습니다. 무언가 자기에게 유익이 있을 때 따릅니다. 단순히 남을 위해 자발적으로 수고하거나 고통을 감수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위대한 인물들입니다.

 

할례를 받으면 남자가 움직이지 못합니다.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최소한 2, 3일 동안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더구나 요즘은 마취제와 진통제와 항생제가 있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할례를 행한다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겜 사람들이 세겜과 하몰의 말을 듣고 즉시 하자고 한 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선 그들은 아주 가난했던 것 같습니다. 세겜이 그렇게 부자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이 마침 자기들 옆에 왔는데, 이들이 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들어주어야 자기들에게 유익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요즘도 외국에 있는 회사들이 미국의 외딴 곳에 공장을 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남부에도 현대차, 기아차, 삼성, LG 등이 공장을 짓고 들어왔습니다. 공장이 들어오면 주민들이 고용되어 지역 경제가 발전합니다. 미국 내에서도 아마존 같은 대기업이 어디에 들어온다고 하면 서로 도시마다 또는 주마다 유치하려고 경쟁을 벌이지 않습니까? 세금도 감면해준다고 하며 경쟁합니다.

 

그것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맞습니다. 가난한 마을에 공장이 들어오듯이, 자기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인데 엄청난 부자 가족이 자기들 옆으로 왔습니다. 가족 수도 많고 가축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들과 하나가 되면 자기들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겠습니까? 경제적인 논리가 금방 돌아간 겁니다.

 

세겜 사람들은 할례가 좋아서 받은 게 아닙니다. 하몰과 세겜이 설득하면서 저 야곱을 우리가 붙들어야 뭔가가 떨어지지 않겠느냐? 이 기회에 그 사람들을 아예 우리 사람들로 만들어버리자. 그러면 그 재산이 다 우리 것이 된다. 이 부자를 놓치지 말자.’라고 하니까 이 말이 먹혀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남자는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인 남자는 그때 다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단지 할례만 행한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겁니까? 사도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고 굉장히 강조합니다. 행위만 한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전혀 믿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할례만 받는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마치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천국 간다는 말을 듣고 예수 믿기로 한다면, 그 믿는 이유는 복 받고 천국 가기 위한 것인데, 그렇게 믿는 것을 진짜 믿는 것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복 받고 천국 가는 수준만이 아닙니다. 그것도 당연히 주어지지만, 예수 믿고 천국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백성답게 사는 방식이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내가 욕심과 야망을 향해 달려왔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일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지, 하나님을 믿겠다고 해놓고 여전히 자기 돈벌이와 욕심을 위해 사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아닙니다.

 

만약 야곱이나 그의 아들들에게 세겜과 그곳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저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들이 이런 식으로 할례 받으라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을 죽이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24-26)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갔다는 것은 두 사람만 가서 다 죽였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주동이 되어서 다른 형제들과 군대와 같이 키우는 종들을 끌고 가서 살육을 저질렀다는 뜻입니다. 할례 받고 고통 중에 있는 남자들을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저항도 할 수 없습니다. 야곱의 두 아들은 세겜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칼로 죽였고, 다른 아들들은 성을 노략질했습니다.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27-29)

 

여기에 두 가지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야곱의 아들들이 분노에 차서 세겜 남자들을 다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 분노는 특히 디나와 어머니가 같은, 즉 레아의 자녀인 시므온과 레위에게 더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살육에는 소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르우벤과 유다도 레아의 아들들이지만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다른 형제들은 다 소극적이었는데 둘째와 셋째였던 시므온과 레위는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물론 누이를 겁탈한 자를 향한 오라비들의 분노가 극렬했겠지만, 그러면 그들에게만 보복하고 말았어야지, 왜 거기 있는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아이들과 여자들과 짐승들을 다 사로잡아 갑니까? 너무 심한 게 아닙니까? 만일 우리가 시므온과 레위를 만나서 정말 이래야만 직성이 풀렸겠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어본다면 잘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분노는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속에서 막 분노가 끓어오르고 화가 날 때,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기는 있는데 그 정도까지 화를 낼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사실 분노는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이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있어서 화를 내거나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이 조금의 자극만 받으면 곧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게 화를 끼쳐 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를 치고 를 죽이리니 그러면 집이 멸망하리라” (30)

 

여기 야곱의 말에서 어느 단어가 반복됩니까? 전부 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완전히 바뀐 게 아닙니다. 전부 , , 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고 하며 옷을 찢으며 통회하는 것이 아니라, ‘니들이 이렇게 해서 내가 어렵게 됐다.’라고 합니다. 이제 주변 민족들이 합세해서 자기를 공격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합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식의 대답을 합니다.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31)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벌써 아들들의 힘이 아버지 야곱에게 대들고 도전할 만큼 커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야곱이 아들들 올 때까지 기다린 것만 봐도 아들들의 힘이 더 세다고 알 수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야곱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 힘이 약해졌습니다. 전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던 아들들이, 벌써 아버지를 능가하는 난폭하고 힘센 남자들로 커 버린 것입니다. 굉장히 사나운 사람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때 야곱은 자신의 무력함을 깊이 느꼈을 것입니다. ‘, 내가 자식들을 잘못 키웠구나.’하는 후회가 밀려왔을지 모릅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과 자기 재산 늘리는 일에 온 힘을 쏟아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통해서 아들들도 바로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커버린 것입니다.

 

사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백성을 공격한 것은, 정확히 말해서 여동생의 복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복수를 한다는 명목 아래 세겜 족속의 남자들을 다 죽이고 그곳의 여자들과 자녀들을 다 사로잡고 양과 소와 나귀와 들에 있는 것과 모든 재물을 빼앗고 노략했습니다. 단지 복수만을 위했다면 하몰과 세겜만 죽이고 끝나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세겜이 한 짓에 대해 세겜 성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해를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자들을 다 죽이고 약자들을 포로로 잡고 전 재산을 노략했습니다. 여동생을 구실로 해서 소위 한몫을 단단히 잡은 겁니다. 복수심과 돈에 대한 욕심이 그들을 살인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2.   벧엘로 올라가자

 

결국 이 모든 험악한 일들을 겪고 나서야 야곱은 하나님 앞에 자기가 서원했던 것을 지키지 못한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들어올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급할 때는 하나님, 제가 뭐든지 하겠습니다.’ 하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으면 그것을 잊어버립니다.

 

바로 야곱이 그랬습니다.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던 중, 무섭고 캄캄한 들판에서 자기가 자면서 무사히만 돌아오게 해주시면 이 땅에 하나님의 전도 세우고 십일조도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돌아오면서도 에서가 400명의 군사들을 데리고 자기를 치러 온다니까,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까지 했습니다(32:11-12).

 

또한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천사를 붙들고 자신을 축복해달라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름까지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해결되고 나니까 야곱의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느슨해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세겜으로 가서 거기에 적당히 단을 쌓고서 나는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자기를 속이게 된 겁니다. 그러다 딸 디나의 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아들들의 야만적인 행동으로 인해 더욱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351)

 

야곱이 더 이상 자기 재산의 손해가 나지 않도록 잔머리를 굴리며 서원한 내용을 살짝 바꾸어 세겜에 머물고 거기서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했을 때,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를 징계하지 않으시고 그냥 놓아두셨습니다. 그를 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 후 이제 그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기도도 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응답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가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 노릇을 하면서 잔머리를 굴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전적으로 하지 않으며 적당히 그 내용을 바꿀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 네가 감히 주인 노릇을 해?’ 하시며 팍 때리지 않으시고, ‘네가 주인 노릇하고 싶으냐? 그럼 한 번 해봐라.’ 하시면서 놓아두십니다. 내가 딴 길로 가고 주님을 제대로 섬기지도 않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괜찮은가 보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보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한 번 해보라고 그냥 놓아두며 기다리고 계시는 중입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에 그러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저번 장례식 때 제가 가서 우리 교회 온라인 예배를 드려보니까 힘들었습니다. 집중하면서 작은 화면으로 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나와서 하는 게 더 쉽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나와서 예배를 드리시면 좋겠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자동으로 교회 유튜브 채널에 예배 비디오가 올라갑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하는 경우를 빼고, 적당히 게으르게 하거나, 안 하거나, 다음에 하거나, 아무 때나 자기가 보고 싶을 때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내 편리 중심의 신앙생활로 변질된다는 겁니다. 이 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올바르게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적당히 할 것이냐? 이것을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사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삶이 복잡해지고, 깨지고, 찢어지고, 넘어집니다.

 

그럴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면서 나를 떠나더니 꼴좋다.’라고 비웃으시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안타까워하십니다. 슬퍼하십니다. ‘나를 떠나더니 저렇게 힘들게 사는구나.’ 오히려 그럴 때 넘어진 우리를 일으켜주시며 우리의 깨지고 찢어진 상처를 보듬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십니다.

 

뭐라고 하십니까? ‘벧엘로 올라가라.’ 이때 은혜가 되는 것은, 야곱에게 하나님이 거 봐라. 꼴좋다.’ 하지 않으시고 아무 말 없이 벧엘로 올라가라.’ 하십니다. ‘네가 도망하던 때에 내가 네게 나타나지 않았느냐? 거기서 제단을 쌓아라!’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했을 때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네 주인이 되어서 살아보지 않았느냐? 그 결과가 무엇이냐? 이제부터는 나를 네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절이 무엇으로 시작합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십니다. ‘위기라는 말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기회가 된다는 말 아닙니까?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위기는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이제는 다 틀렸다고, 다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기회가 됩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야곱이 너무나 막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할 바로 이 순간, 하나님께서 야곱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십니다. 야곱 가정만 아니라, 크고 작은 문제들이 우리 가정들에도 다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나아갈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지금 경제적인 문제, 직장이나 사업 문제, 진로 문제, 건강 문제, 관계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문제들을 보면 도저히 풀릴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풀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문제들이 다 해결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그럼 뭐가 해결됩니까? 내 시각이 바뀝니다. 문제를 보는 내 시각이 바뀌어서 그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된 일을 놓고도 세월이 지나면 자기 능력으로 또는 우연히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야곱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에서에게 큰 재물을 주었습니다. 뇌물 식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서원대로 하면, 본래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한 사람이 없었는데도 에서에게 엄청난 재물을 주고 나서는, 그 재물이 나갔기 때문에 그 손실을 생각하면서 정작 드렸어야 하는 하나님과의 약속에는 소홀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해이해진 야곱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 계획대로 세겜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땅을 사서 가나안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세겜은 안전한 땅이었습니다. 사람들도 순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야곱은 예상치 못했던 쓰라린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 에서를 피해 도망가던 벧엘 들판에서의 캄캄한 밤, 무서운 밤에는 오히려 아무도 야곱에게 해를 끼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야곱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회피하고 자기 생각에 의해 행동을 하니까,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안전해 보이던 세겜 땅에서 오히려 무서운 일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들을 통해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구나.’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정말로 하나님에게서부터 시작됩니다. 예배에 초점을 맞추고 나아가는 겁니다. 예배는 주일예배만이 아닙니다.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어떤 방법으로 나타나셨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야곱은 그것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바쁜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빨리빨리의 시대입니다. 인터넷도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이전에는 1Mbps만 되어도 빠르다고 했는데, 지금은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입니다. 이렇게 바쁜 시대에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으십니까?

 

사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지 않은 크리스천은 없을 것입니다. 그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좋은 방법은, 조용한 시간을 잡아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또 기도하는 시간을 매일의 삶 속에서 정기적으로 갖는 겁니다.

 

특히 듣는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내 사정을 일방적으로 아뢰고 끝나는 기도가 아니라, 내 자세한 사정을 아뢴 다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겁니다. 기도하고 기다릴 때 뭔가 생각을 주십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가 많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때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됩니다. 우리의 문제 해결의 핵심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듣기만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듣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2-3)

 

이제 야곱은 믿음의 결단을 내립니다.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며 살려고 했던 세겜을 떠나서 이제 진작 가야했던 장소인 벧엘로 떠나게 됩니다. 자신의 가는 길에서 언제나 자기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도망갈 그 고통의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외삼촌의 낯을 피해 도망할 때도, 또 라반의 군대와 에서의 군대 사이에 포위된 상태에 끼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군대가 나타나서 야곱을 보호해주었습니다.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올 때도 그가 야곱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나님이 막아주셨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의 위기 때마다 나타나셔서 개입하시고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을 이때 다시 붙들게 된 것입니다. 다 해보았는데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붙들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을 잘 보면, 야곱은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 20년 전에 벧엘에서 약속하신 하나님, 한마디도 어기지 않으시고 20여 년 동안 계속해서 가는 길에서 함께하신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려고 한다.’라고 하며 벧엘로 가자고 합니다. 문제의 해결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야곱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2절을 보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볼을 바꿔 입으라고 합니다. 또한 이방 신상을 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벧엘로 가라고 하실 때 야곱은 가족들에게 있는 우상들을 생각한 겁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장인의 드라빔 신상을 훔쳤을 때, 처음에는 몰랐겠지만 나중에는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가 갖고 있는 우상을 묵인했습니다. 미워하면 칼 같이 하면서, 사랑하면 관대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만나 씨름하며 기도했던 야곱이지만, 이때까지도 신상들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삶에서 다루는 견고한 진입니다. 그런데 우상들은 라헬만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가족들 전체가 다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4)

 

당시 귀고리는 전부 부적이 달린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많이 체험한 사람이고, 힘들 때 함께하시며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체험했던 야곱이었지만, 그의 가정 안에는 이렇게 우상들이 많았습니다. 야곱이 왜 몰랐겠습니까? 그냥 봐도 귀고리에 이방 신의 부적들이고, 옷도 바꿔 입으라고 한 것은 우상의 무늬 같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패션이라고 하지만 다 벗고 갈아입으라는 겁니다. 우상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을 갖고 있지는 않겠지만, 우상의 잔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무슨 날을 따지는 것이라든지, 뭐가 더 좋다고 하는 것을 따집니다. 소위 황금 돼지의 해’, ‘백말의 해’, ‘흰 소의 해등을 따집니다. 이상하게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만 혈액형을 따집니다. 띠를 보고, 궁합이나 사주를 보고, 오늘의 운세나 별자리를 봅니다. 재미로 한다고 하는데, 다른 것을 재미로 하면 되지 왜 그런 걸 합니까?

 

야곱은 우상들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가족들이 다 버립니다. 그리고 참 하나님께 제단을 쌓습니다(7). 20년 전 약속하신 대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께 자기도 약속한 대로 단을 쌓은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려고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5)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세겜 근처의 사람들이 분개하며 연합군으로 쳐들어오는 것이 맞이 않습니까? 그들이 일어나 야곱 가정을 쫓아올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두렵게 하셔서 사람들이 감히 손을 대지 못한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이 너무 크게 보이는 겁니다. 감히 가서 공격을 할 생각을 못합니다.

 

본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야곱이 제단을 쌓을 때 그 자녀들이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특히 다른 아들들은 장성한 어른들이지만, 당시 10대 어린 소년이었던 요셉이 거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께 경배를 올리는 생활 속에 자녀들은 깊은 교훈을 받습니다. 이미 다 큰 자녀들은 영향을 덜 받지만, 어린 자녀들은 부모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요셉이 어린 나이에 거기에서 교훈을 받았기에 믿음의 사람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는 힌트를 우리가 여기에서 얻게 됩니다. 벧엘에서 제단을 쌓은 야곱은 자기에게만 유익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야곱 같은 사람 밑에서 믿음의 사람인 요셉이 나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야곱이 신앙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내 마음대로 살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내 뜻대로 살게 되면, 그렇게 안전하고 친절해 보이던 세겜 추장이 딸의 강간범으로 바뀔 수 있고, 자기 손 안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던 아들들이 무서운 살인 병기와 테러리스트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야곱은 큰 대가를 치르고서야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땅 속에 감추어진 뿌리와 연결된 가지에 열매가 아름답게 열리고 꽃이 핍니다. 성도의 형통함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 거기에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에게 세겜은 어디냐? 너의 벧엘은 어디냐?’ 나의 세겜은 내 삶의 영역에서 내가 주인 노릇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신을 속이는 부분을 말합니다. 이 코로나 사태 가운데 자기합리화를 하며 나아가는 나의 세겜은 없습니까?

 

또한 나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하나님께 드렸던 서원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 벧엘로 가는 것입니다. ‘나는 서원한 적이 없는데요?’라고 하십니까? 예수 믿겠다고 고백한 그것이 서원이고 약속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한 것, 그리고 세례를 받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 삶의 어떤 영역이 하나님을 정말 주인으로 모시고 단을 쌓아야 할 벧엘입니까? 아직도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못하고 염려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을 때,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 삶에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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