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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https://youtu.be/zdI54HwOI_w?t=3135

 

 

20201220일 성탄주일예배

성탄절 메시지

믿을 수 없는 말씀에도 순종하는 믿음

(누가복음 126~38)

 

[들어가는 말]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로 많은 사업체가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영화관인데, 요즘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 힘들어서 그런지, Netflix, YouTube, Apple TV, Amazon Prime 등을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나왔는데 아주 좋은 영화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크리스천의 가치관으로 만든 영화들도 많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중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가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크리스천 작가인 C. S. Lewis 가 쓴 공상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아주 좋은 성경적 메시지가 있으니까 이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 가족이 함께 보면 좋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도 오래 전 많은 관심을 모았고, C. S. 루이스와 동료였으며 함께 교제를 나누는 사이였던 J. R. R. Tolkien 원작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올해 초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부문 중 하나인 최우수 작품상을 한국 영화인 <기생충>이 받아서 화제가 되었는데, 25년 전인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는 어떤 영화가 best film(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바로 <포레스트 검프>(Forest Gump)였습니다. 얼마 전 부친상으로 엘에이에 다녀올 때 비행기 안에서 보여주는 영화들 중에도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 영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 Forest Gump는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었지만 성실하고 정직한 자세로 삶을 살아 큰 성공을 거둔다는, 동화 같은 줄거리입니다. 이 영화를 보셨다면,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어느 주 출신인지 기억하십니까? Alabama입니다. Alabama 주에서도 어느 도시 출신인지 기억하십니까? Greenbow입니다. 실제로는 없는 가상의 동네인데, Greenbow County는 실제로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그곳이 아주 시골로 나오는데, 그런 데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주인공 고향으로는 아주 부적합한 곳입니다. 앨라배마에는 버밍행(Birmingham) 같이 큰 도시도 있는데 왜 하필 시골 촌 동네를 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대에 미국을 변화시킨 세 명이 있는데,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 존 워너메이커 (John Wanamaker), 그리고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입니다. 무디는 메사추세츠 주의 시골인 노스필드(Northfield)에서 출생했습니다. 워너메이커는 필라델피아 변두리에서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출생했고, 초등학교 2년을 중퇴한 사람입니다. 또 링컨은 켄터키 주 시골에서 출생하여 인디애나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역사를 이룬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시골 출신인 것을 봅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마리아

 

사실 예수님이 그 어떤 곳보다도 더 시골 촌 동네 출신이셨습니다. 도저히 위대한 인물이 날 수 없다고 하는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가서 자기가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를 만났는데 그가 바로 나사렛 출신 예수라고 하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1:46)라고 즉시 대답할 정도로 나사렛은 형편없는 곳이었습니다.

 

나사렛은 구약성경에 전혀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학자에 따라 그저 1,600에서 2,000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로마군 주둔지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또 다른 학자는 그 정도 숫자도 아니고 그저 50~60명 정도 밖에 살지 않은 곳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나사렛은 도시도 아니고 촌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구세주(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바로 그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골, 정말 별 볼 일 없고 형편없는 곳, 도시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동네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태어난 줄로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태어난 곳은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입니다. 하지만 자라기는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6-27)

 

이것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이란 동네로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합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뭐라고 합니까?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8)

 

지금 마리아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갈릴리의 나사렛입니다. 이곳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동네입니다. 모든 사람이 깔보고 무시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거칠고 환경도 좋지 않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안 좋은 동네에 살던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마리아가 은혜를 받은 사람이며, 또 주님께서 그녀와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메시지였습니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29)

 

이런 놀라운 말씀은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고 또 들을 것이라고 전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동네인 나사렛이었기 때문에, 마리아도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오래 전 수요예배 때도 본 적이 있는데 <맨발천사, 최춘선>이라는 영상을 기억하십니까? 지하철을 할아버지가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앉아 있는 지하철 승객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유관순!” “안중근!” 하고 소리를 지르시는 겁니다. 어떤 젊은 아가씨가 졸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가리키면서 유관순!”이라고 외치니까 어리벙벙하고 옆에 있는 고등학생들은 웃겨 죽겠다고 막 웃는 모습이 나옵니다. 자기가 무슨 유관순인가 하는 표정으로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오늘 마리아에게 천사가 해준 말은 그것보다 더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주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환경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디 출신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어느 지역 출신이십니까? 서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강원도? 이북? 중국? 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서울 중에서도 강남이냐 강북이냐를 놓고 굉장히 따집니다. 집값도 차이가 나고, 학군도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좋은 지역에 산다고 자기가 높은 수준인 줄 알면 착각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꾸 구분을 지으며 내 편이냐 네 편이냐를 나눕니다. 그러면서 어디 출신인지, 나와 비슷한 출신인지, 나와 배경이 비슷한지 따져봅니다. 그래서 학연, 지연, 혈연 등에 따라 끼리끼리 모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것이 굉장히 중요할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디 출신이냐를 보고 쓰시는 게 아닙니다. 어느 나라든지 어디 출신인지를 보면서 안배를 합니다. 한국은 그런 게 심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와 친한 쪽을 많이 뽑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런 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신앙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어디 출신인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쓰겠다고 하시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체험하는 것은 환경과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가장 어려운 형편에 있다 할지라도, 지금 내 상황이 극도로 안 좋을지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데는 그런 것들이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은혜는 사람이 주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환경이 주는 게 아닙니다. 좋은 환경에 있다고 은혜를 더 많이 받는 게 아닙니다. 나쁜 환경에 있다고 덜 받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믿으십니까?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어느 동네가 사나, 학군이 어디인가, 얼마짜리 집인가, 어디 학교 출신인가, 직업이 무엇인가, 돈은 얼마나 버나, 연봉이 얼마인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가장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신경 쓰고 돌아봐야 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 이런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인가? 나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이 정말 쓰기를 원하시는 사람인가?’ 여기에 우리는 가장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기를 원하시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스펙이 좋고 엄청난 일을 이룬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나는 얘를 별로 쓰고 싶지 않아.’ 하시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아무리 낮은 곳에 있더라도 나는 얘를 쓰고 싶어.’ 하시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만 한다면, 환경이나 출신이나 학력이나 배경이나 그 무엇이라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좋은 동네를 찾고, 좋은 집을 찾고, 좋은 학군을 찾고 거기에 참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사실 내 자녀가 가장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부모로서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내가 또 내 자녀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준비시키는 노력은 얼마나 기울이고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주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역사 속에 성공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 허무하게 끝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 이룬 것 같았지만 허무하게 끝난 겁니다.

 

백화점 왕으로 체신부 장관이기도 했던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의 글 중에서 이런 말이 적힌 것을 책에서 보았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도보다 더 큰 즐거움을 발견한다면, 성경보다 더 좋아하는 책을 발견한다면, 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한다면, 주님이 베풀어주신 식탁보다 더 좋은 식탁을 발견한다면, 예수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천국보다 더 좋은 희망을 발견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신앙에 경보를 울려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동네 살고 좋은 집에 살고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으시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형편이 좋지 못하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면 그 이야기는 끝난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그것이 최고의 삶입니다.

 

 

2.   가브리엘의 메시지와 마리아의 믿음의 반응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0)

 

천사가 나타나 말하자 마리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이런 경험을 하고 안 놀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가브리엘은 무서워 말라고 하며 다시 한 번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확인해줍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아주 놀라운 말씀을 전해줍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1-33)

 

여기서 크게 네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어라.’ 둘째, ‘그는 위대하게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넷째,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릴 것이며,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놀랍게도, 자기가 낳을 아이가 메시야가 된다는 겁니다. 자기가 메시야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그 메시야, 그리스도(구세주)를 마리아가 낳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4)

 

저는 처녀입니다. 그런데도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일 것이라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빨리 서둘러 요셉과 결혼을 해야 됩니까? 아니면 어떤 다른 하나님의 사람과 결혼을 해야 되는 건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어떻게 아기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지금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준 말을 못 믿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방법을 물어보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질문은 당연합니다. 여자 혼자 아기를 가지지 못하는데, 지금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지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대답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5)

 

, 아무 남자와의 관계가 없이 아기를 갖게 될 텐데, 그것은 성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덮일 때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브리엘은 이에 대한 증거로서,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을 언급합니다.

 

요즘 뉴스에 보면 가끔 남편 없이 아기를 낳은 여자들이 나옵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연예인이 최근에 혼자 아기를 낳았다고 하고, 오늘 아침 뉴스에도 두 여인이 같은 남성의 정자를 받아서 아기를 출산했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자 혼자 낳은 겁니까? 남자에게 받아서 낳은 겁니다. 그러니까 여자 혼자 낳은 게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여자 혼자 성령의 능력으로 낳는다는 겁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6)

 

원래도 임신하지 못했고 이미 늙어서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다고 여겨지던 친척 엘리사벳이 지금 임신 6개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말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7)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그런데 우리 삶을 보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저히 될 수 없는 일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 무너졌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상식을 초월합니다. 상식을 무시하고 이성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비상식이나 몰상식이 아니라, 초상식이고 초이성입니다. 상식적으로 1+1=2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고, 논리적으로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덮으시면, 1+12가 아니라 3이 될 수도 있고 4가 될 수도 있고 10이 될 수도 있고 100이 될 수도 있고, 1000이 될 수도 있고, 얼마든지 그 이상도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기만 하신다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려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다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마리아가 처녀로서 아기를 갖게 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기를 가지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족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며, 또 정혼한 요셉에겐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고 그래서 임신했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행실이 나쁜 여자애가 어디서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기 합리화를 하느냐고 생각할 것이고, 잘못하면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진다고 해도, 요셉이 자기를 안 받아줄 것이 뻔한데, 실제로도 마태복음에 보면 그가 조용히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평생 미혼모로서 자기가 낳은 아이는 아비 없는 사생아라고 손가락질 당하며 키워야 합니다. 실제로도 그런 음모론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38)

 

자칫 잘못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마리아는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어린 소녀가 말입니다. 1세기 당시 이스라엘에서 정혼한 처녀 나이는 14세 정도 또는 그 이하였습니다. 정혼이라는 것은 결혼해서 사는 것만 안 하지, 정혼하고 1년 동안 떨어져 살지만 이미 결혼한 것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가집니다. 여기서는 약혼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정혼’(betrothal)입니다.

 

그러니까 많아 봐야 8~9학년 정도 되는 어린 여자아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것에 대한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린 마리아였지만,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덮으시면, 1+1=2가 아니라 100이 될 수도 있고 1000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마리아는 정말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비록 자기가 미혼모로 취급받는다 하더라도, 설사 요셉이 자기를 버린다 할지라도, 아무도 자기 말을 믿지 않는다 해도, 자기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아기를 갖게 됨으로 지금 당장 수치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자신의 그 어려움을 통해 장차 이 세상을 영원히 다스리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다는 이 엄청난 약속을 받았고, 그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붙잡았던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심각한 도전 앞에서, 마리아는 이것이 다른 어느 누구의 말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담대히 믿음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고 선택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는 게 문제입니까?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다 믿습니다. 다 믿으시죠? 그런데 정말 문제가 뭔가 하면, 객관적으로는 다 믿겠는데 정작 나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그것을 잘 믿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기도하겠다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한테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것을 정말 믿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좌절합니다. 특히 그 기간이 길어지고 기도해보아도 별 응답이 없고 지체가 되면 더 불안해지고 초조해집니다.

 

그러나 힘든 상황이 올 때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믿음의 시험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하는 사람은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현재의 상황, 코로나 사태가 나를 힘들게 만듭니까? 아무리 기도해도 길이 보이지 않고 답답합니까? 하나님의 사명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닥친 문제만 보게 되면 좌절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 위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결코 좌절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게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바뀌는 게 아닙니다. 사명을 행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겁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사람은 결코 무기력하게 자포자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결코 그냥 이뤄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험과 시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명을 붙들고 그 과정에서 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나아갈 때, 그러한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경적 신앙은 결코 논리로 설명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비논리는 아니지만,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게 많습니다. 체험되어야 합니다. 결코 미리 다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 조금씩, 조금씩 보이게 됩니다. 나를 향한, 내 가정을 향한, 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무엇을 이루기를 원하고 계시는가? 이것을 우리가 찾으며 나아가야겠습니다.

 

덴마크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죄렌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알고, 하나님께서 내가 어떤 일을 하기를 진정으로 바라시는가를 알며,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나가는 말]

 

여러분, 우리가 언제까지 뭐가 안 되면 환경 탓, 저 사람 탓, 이 세상 탓, 조상 탓, 부모 탓을 하며 살겠습니까? 환경이 좋아진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닌데 왜 환경에 매달립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만 한다면, 어떤 환경도 조건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당장에 이뤄질 수가 있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 대해 우리도 마리아처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결단하며 인내로써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직접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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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새해에는 더욱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 (눅 11:9-13) - 신년 메세지 (1/03/21) kpccoh 2021.01.03 876
295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 (창 32:22-32)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9 (12/27/2020) kpccoh 2020.12.27 1102
» "믿을 수 없는 말씀에도 순종하는 믿음 " (눅 1:26-38) -성탄주일 메세지 (12/20/2020) kpccoh 2020.12.20 2165
293 "아무리 애써도 여전히 불안할 때 " (창 32:13-21)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8 (12/13/2020) kpccoh 2020.12.13 959
292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사 43:1-7) - 김현철 목사 (12/06/2020) kpccoh 2020.12.06 296
291 "심히 두렵고 답답할 때 우리가 할 일은" (창 32:1-12)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7 (11/29/2020) kpccoh 2020.11.29 1289
290 "과로운 상황에도 감사하는 사람들 " (고전 1:4-9) - 추수감사주일 메세지 (11/22/2020) kpccoh 2020.11.22 921
289 "막혔던 관계가 풀리고 새로운 관계로" (창 31:43-55) -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6 (11/15/2020) kpccoh 2020.11.1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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