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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sF_c2sHFR6U?t=2960

 

 

2020531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12

뜻밖의 방문을 통한 약속의 재확인

(창세기 181~15)

 

[들어가는 말]

 

어제와 오늘은 날씨가 약간 시원해졌지만, 지난주 며칠 동안은 낮에 90도까지 올라가면서 마치 이곳 한여름 날씨와 비슷했습니다. 더운 지역에 살아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더우면 몸이 축 쳐지는 기분이 듭니다.

 

제가 처음 이민 온 곳이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주였는데, 그곳은 3월부터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5월이나 6월이 되면 정말 덥습니다. 그 당시 대학교를 다니면서 한인들 체육대회가 5월에 많이 있었는데, 5월에 축구를 하려고 운동장에 나가면 뛰기 전부터 땅에서 엄청난 열기가 올라와서 뛰기 전부터 지칩니다. 심지어 제가 이민 온지 두 달 만이었던 1월에 어느 날 갑자기 90도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습니다. 한 여름에는 차를 세워 놓고 계란을 그 위에 터뜨리면 그대로 계란 프라이가 되고, 그 안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완전히 사우나가 됩니다.

 

그 후 제가 애틀랜타(Atlanta)에 있는 신학교에 갔는데, 그곳은 별명이 핫틀랜타(Hotlanta)일 정도로 아주 더운 곳입니다. 게다가 나중에는 마이애미(Miami, FL)에 살았는데, 거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요즘이야 에어컨 때문에 괜찮지만, 에어컨이 없었을 때는 플로리다와 같이 무덥고 습한 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상상이 안 갈 정도입니다.

 

날이 더우면 짜증이 나고 몸이 쳐지면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만사가 귀찮습니다. 한국이든 어디든, 더운 한 여름에 폭력사건이 더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짜증이 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결혼하고 그 다음 해에 졸업하고 방문했던 1994년에 몇 십 년 만의 더위와 가뭄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더웠습니다. 2년 전에도 한국이 그렇게 더웠고, 작년에는 유럽도 엄청나게 더워서 프랑스에서는 수천 명이 죽기도 했습니다.

 

여름에 서부로 가보면 애리조나와 네바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사막은 정말 덥습니다. 4년 전 운전해서 부모님의 자동차를 가져올 때 애리조나를 지나는데 보니까 114도였습니다. 그런 더운 날, 그것도 한창 더운 대낮에, 아브라함은 자기 장막 문에 앉아 있습니다(1). 한낮 땡볕 아래서 만사가 귀찮을 만한 시간이고, 에어컨도 없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다시 나타나셔서 그의 이름을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인 아브람에서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셨습니다(5). 그리고 아브라함 집안의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행하여 표로 삼으라고 하셨고(10-14), 아내 사래의 이름도 사라라고 바꾸어주셨습니다(15). 게다가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19).

 

그러자 아브라함은 즉시 집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다 행합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어느 날 아브라함이 뜨거운 날씨 속에 장막 문에 앉아 있는데 그때 갑자기 세 사람이 아브라함을 방문하는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계속 아브라함을 살펴보고 있고 앞으로도 이삭, 야곱, 요셉을 살펴볼 것은, 이전에도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삶의 문제를 믿음의 조상들은 어떻게 해결했는가에 초점을 두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소망과 위로를 찾으려고 살펴보는 것입니다.

 

 

1.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대접한 아브라함 (1~8)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1-2)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무 예고도 없이 그냥 불쑥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앉아 있는데 갑자기 세 사람이 나타닙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모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꿈이나 환상을 통해 나타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이때가 언제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 보면 그때는 날이 뜨거울 때입니다. 그러니까 더운 중동 날씨의 하루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한낮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 가나안 지역에는 한낮에 너무 더워서 아무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중동이나 유럽의 더운 나라들은 낮에 일하지 않고 낮잠 자는 습관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시에도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하고 나서 낮이 되면 일을 중단하고 낮잠을 잔 다음, 해가 질 때가 가까이 올 때부터 다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낮의 찌는 더위 속에서 모든 사람이 다 잠을 자는 이때 아브라함도 장막 문에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중동 날씨는 그늘이 있으면 조금 괜찮습니다. 그래도 뜨거운 바람이 불기 때문에 거기 앉아서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본즉”(2), 다시 말해 자다가 갑자기 눈을 떠보니까 세 사람이 나타나 있는 겁니다. 자기 장막 근처에 세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그것도 그 뜨거운 땡볕 아래 있는 것을 봅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어땠겠습니까? ‘아니, 저 사람들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 더운 시간에 무슨 길을 가고 그래? 미친 사람들인가 보다.’ 하고 경계하거나, 아니면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길을 가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며 계속해서 낮잠을 청했을 것입니다.

 

한국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요즘은 조금 나아졌습니다. 스마트폰이 생겨서 다 스마트폰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 가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젊은이들이나 학생들이 자리에 앉으면 전부 잠을 잡니다. 사실은 자는 것이 아니라 자는 척하는 것인데, 어른들이 오시면 자리를 양보하기가 귀찮아서 자는 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더 귀찮을 수 있는 상황이 바로 이 상황입니다. 한낮의 뜨거운 땡볕 아래 누가 한 발짝이라도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런데 충분히 귀찮을 수 있는 이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걸어 나간 것도 아니고 달려 나갔습니다.

 

지금 이 더운 때 걷기만 해도 땀이 줄줄 나는데 뜁니다. 마치 이들이 절대 그냥 지나가면 안 된다는 식으로 그들을 붙듭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기까지 합니다. 굉장히 귀한 손님들을 대접하는 주인의 태도입니다. 그러고 나서 뭐라고 말합니까?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3-5)

 

이런 날씨 속에서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장막 주인에게 좀 쉬어갈 수 있겠느냐고 요청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오히려 거꾸로 합니다. 자기가 더 요청을 합니다. 절대 그냥 지나가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요청에 대해 세 사람은 대답합니다. “네 말대로 그리하라”(5). “좋습니다. 정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6-7)

 

이제 아브라함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급히 장막으로 들어가서 아내 사라에게 고운 가루로 빵을 구우라고 부탁합니다(6). 그리고 자기는 짐승 떼로 달려가 그 중에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서 종에게 주어 요리하도록 합니다(7).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빵을 구우려면 불을 피워야 합니다. 지금 같은 날 중에도 가장 더운 때에 불을 피워 빵을 구우라니, 사라 입장에서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런데 사라가 거기에 동참합니다. 그러니까 사라도 믿음의 여인입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것에 사랑으로 함께한 것입니다.

 

게다가 종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이때 일하고 싶습니까? 누가 이때 요리하고 싶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주인인 자기가 직접 나가서 그 뜨거운 땡볕에 송아지를 잡아다 주니까 종이 어떻게 하지 않겠습니까? 종도 거기에 동참하는 겁니다. 자기도 귀찮고 쉬고 싶지만, 주인이 저렇게 부탁하는데, 게다가 자기가 직접 나가서 송아지를 잡아 오니, 거기에 동참합니다. 아브라함 집안사람들이 이렇게 참 귀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 혼자 귀한 게 아닙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8)

 

음식이 다 준비가 되니까 엉긴 젖(버터)과 우유와 송아지 요리를 가져다가 아주 정성껏 대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먹는 동안에 아브라함은 그 옆의 나무 아래 서 있습니다. 마치 손님들이 식당에 와서 식사할 때 웨이터가 옆에 서서 필요한 게 없나?’ 하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필요한 게 없는가 도와주기 위해 옆에 서 있는 겁니다. 이것은 정말 정성으로 나그네들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움직일 때 얼마나 땀으로 범벅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가 마치 웨이터인 것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아브라함은 이렇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그들을 대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동기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문맥을 보면 그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방금 17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확실한 약속을 재확인받은 상태입니다. 특히 아무 여인이 아니라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라는 구체적인 말씀까지 받았습니다(17:19). 바로 그 아들이 그 동안 그토록 확인해주셨던 그 약속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이후로 지난 24년 동안(99, 17:1) 믿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렇게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실수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확실한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후에 자기 집안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이제는 약속이 성취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시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년에(1년 후에) 주겠다고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삭이 언제 잉태되어 태어날 것인가, 카운트다운을 하며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전에는 그냥 네 후손을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늘의 별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주겠다.’라고 추상적으로만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1년 후에 주겠다고 하셨습니다(17:21). 그리고 분명히 다른 여인이 아니라 사라로부터 나오는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름은 이삭이라고 하라고 이름까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100%(요즘 한국에서 쓰는 말로 백퍼’) 확실한 약속입니다. 안 이루어질 수가 없는 약속입니다. 이제는 정말로 딱 1년만 기다리면 그토록 기다리던 약속의 아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의 마음의 태도가 이때 어땠겠습니까?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우리가 충분히 상상해볼 만합니다.

 

이전과는 달리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후손들을 주겠다고 하셨을 때 , 알겠습니다.’라고 하는 정도로 살아갔는데, 이제는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집중력이 높아졌습니다. 그냥 안일하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삶에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일조차도 그냥 넘길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가만히 있는데 저쪽 산 위에서 바위 하나가 굴러 내려와도 이것이 무슨 뜻일까를 생각할 만한 상황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날카롭고 민감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갑자기 세 사람이 원래 여행을 안 하는 시간의 땡볕에 자기 앞에 탁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냥 보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과 동시에 바로 일어나 그들을 초대하고 극진히 대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때 아브라함이 자신이 바라던 소원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너무나 기뻤기 때문에 이들을 후하게 대접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확실한 약속을 받아서 갖고는 있지만, 아직 그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직 아기가 없습니다. 여전히 100세가 다 된 자기 자신과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사라의 상태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곧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영적으로 깨어 있을 수가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 한낮의 뜨거운 길을 가는 세 사람을 발견하고서 그냥 보내지 않고 대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기가 대접한 분들이 하나님과 천사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13:2)

 

천사만 대접해도 대단한 건데 하나님을 대접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고 사심 없이 친절과 정성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인 줄, 천사인 줄 알고 대접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을 뵙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언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언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나의 상황이 힘들더라도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고 도움의 손길을 베풀 때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다른 사람의 필요에 민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이 성취될 것을 기다리며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소에는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예배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체험할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뵐 수가 있습니다.

 

아직 나의 삶의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전히 마음이 무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 특히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 그것이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나도 어렵지만, 다른 사람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십니까? 물론 먼저 만나고 싶다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그것은 결코 무슨 신비주의적인 사건이나 뜬 구름 잡는 일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일입니다.

 

내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힘들수록 자꾸 자기 삶의 안으로만 숨어 들어가지 말고 밖으로 나가 사랑을 베풀어 보십시오. 더 섬기시고, 더 봉사를 열심히 하시고, 더 열심히 교회생활을 해보십시오. 정말 놀라운 것은, 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어려움부터 먼저 돕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채워주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나중에 보면 놀랍게도 내 문제는 이미 해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의 신비입니다.

 

자기 문제에 얽매이고 거기에 파묻혀 버리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자기 문제가 다 해결되고 나서 하겠다고 한다면, ‘내가 지금 어려우니까, 힘드니까, 바쁘니까, 일단 이것부터 처리하고 다 해결이 되면 좋은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결국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다 끝납니까? 그 다음 문제가 또 옵니다. 이게 해결되면 끝납니까? 또 옵니다. 우리 인생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그러니까 내 문제만 붙들고 이것을 해결하느라 거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틈이 전혀 없습니다. 문제가 있지만 돌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힘들지만 돌아보는 것입니다. 나도 힘들지만 사랑을 베풀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힘든 가운데서도 주님의 평화를 맛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신앙생활이 뜸해지고 믿음을 멀리 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힘들수록 더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하는데, 힘들수록 더 사랑을 나누며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면 해결이 될 텐데, 자꾸 다른 데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다니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어려울수록 더 주님 앞에 나오고, 어려울수록 더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해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상황은 그렇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변합니다. 내가 새 힘이 생기고 내가 살아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보여주시는 새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잘되고 나면 선교를 하겠다고 하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지금 적은 대로 협력해서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협력하는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귀한 분들입니까? 교회가 안정되고 크게 부흥된 다음에 하겠다고 하면 평생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여 이웃사랑기금을 모아보자고 하는데 나도 형편이 안 좋은데 무슨 남을 돕나? 우리 교회도 재정이 약한데 뭘 남을 돕나?’라고 하면 평생 할 수가 없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조금씩 모아서 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실제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상황 따지고, 형편 따지고, 요리조리 계산하고, 머리 굴리고 그러면, 인간의 일은 될지 모르나 주님의 일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냥 하는 겁니다. 어려워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고, 주님을 만나뵐 수 있습니다.

 

 

2.   사라를 돌보시는 하나님 (9~15)

 

사실 하나님께서 이때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주 목적은 사라의 믿음을 굳건하게 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9)

 

여러분, 이 말씀은 사실 보통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으며 나의 가장 사랑하는 말씀이다.’라고 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저도 아닙니다. 이게 뭐가 대단한가? 그냥 보면 하나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한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게 보이시면 말씀을 보는 안목이 있으신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 손님들이 뭐라고 합니까?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아니, 도대체 내 아내의 이름을 어떻게 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사라를 압니까? 말이 안 됩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반응이 여기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때 그는 너무나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이 내 아내의 이름을 아는가?’ 그래서 아브라함은 직감적으로 역시 이분들은 보통 분들이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더욱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0)

 

여기서 라고 되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신데,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여러 번 하나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라는 처음으로 직접 그 약속을 자기 귀로 들은 겁니다. 그런데 사라가 장막 문에서 그것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1-12)

 

사라가 왜 웃습니까? ‘아이고, 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네.’ 하고 비웃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장면을 잘 보면 사라가 아이고, 웃기고 있네하며 웃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겁니다. 너털웃음이라고나 할까. ‘사라에게 내년에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겉으로도 아니고 속으로 웃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대개 자기가 원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실제로는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은 것일 때, 꼭 되면 좋겠는데 쉽지 않을 때, 옆에 있는 다른 지체가 잘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같이 기도하면 분명히 잘되실 겁니다.’라고 하면 좋으면서도 부인하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이 사업은 분명히 잘되실 겁니다.’ ‘아이, 되기 힘들죠. 힘들어요.’라고 하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되고 싶은 겁니다. ‘너는 그 학교에 틀림없이 될 거야.’ ‘에이, 나 정도의 성적에 그렇게 좋은 데가 되겠냐? 그냥 여러 군데 중에 한 군데만 되어도 다행이지.’ 그런데 속으로는 거기가 정말 되고 싶습니다.

 

힘든 일이기 때문에 안 될 것을 감안해서 미리 연막을 치는 겁니다. 그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혹시라도 안 되면 창피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방어 장치를 마련해놓는 겁니다. 제가 아는 어느 학생도 시험 잘 봤냐?’라고 하면 못 봤어. 최악이야.’라고 합니다. 그래 놓고는 나중에 결과가 너무 잘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그 통지가 온 것을 붙들고 잠을 잡니다. 그런데 정말 못 봤다는 게 아니라 잘되고 싶은데 미리 연막 친 겁니다.

 

12절에서 사라가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내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사실 그 동안 그렇게 원했는데 안 됐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으로부터 남편이 약속을 받았는데 갑자기 입맛이 없고 배가 더부룩하고 다른 때와 다릅니다. ‘, 내가 드디어 진짜로 임신했나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까 체한 것입니다. 또 생리를 안 하니까 이제 진짜 뭔가 됐나보다.’ 했는데 어김없이 그 다음에 또 시작됩니다.

 

그 동안 기대했다가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속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방어벽을 치는 겁니다. 방어기제를 동원하는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라가 웃은 것을 즉시 아십니다. 뭐라고 하십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3-14)

 

12절을 보면 사라는 분명히 겉이 아니라 속으로웃었습니다. 그런데 이 손님은 그것까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데서 속으로 웃는 것까지 아는 이분은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바로 이 질문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바로 이 질문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말씀을 질문의 형태로 물으신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라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 너는 왜 이렇게 믿음이 없냐? 네 남편의 믿음의 반의반이라도 좀 닮아봐라.’ 하고 야단치신 게 아닙니다. 대신 질문을 하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사라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대답해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일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어떤 일들은 하나님이 하실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고 불가능해 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 되어도 저에게는 안 됩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직 하나님의 위치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지는 몰라도,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 지식과 상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대로만, 느껴지는 대로만, 자기가 이해하는 대로만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질문에 대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정말로 아무 것도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며 나아가고 의지하겠다는 결단을 보여주는 믿음의 대답이 됩니다.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15)

 

하나님의 말씀에 사라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속으로 웃었는데 아니까 놀랍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고 합니다. 속으로 그런 것이니까 저는 안 웃었는데요?’라고 부인하지만, 주님께서는 아니다. 너는 웃었다.”라고 정확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안 나와 있지만 이때 사라가 저는 안 웃었어요.’라고 할 때 하나님이 막 화를 내고 분노하시면서 너는 웃었다!’라고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이때 하나님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면서 너 웃었잖아.’라고 하신 겁니다. 얼마나 따뜻합니까? 그리고 정확하십니다. 그런데 단지 웃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라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라가 하나님을 안 믿습니까? 아니, 분명히 믿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능력을 믿지 못합니다.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도 지금 나의 이 문제를 과연 해결해주실까라는 의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뭡니까? 하나님을 안 믿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해주실까?’ 의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데, 막상 어떤 어려운 일이 나에게 생기면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자꾸 인간적인 수단이나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려고 애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항상 불안하고 염려가 되고 두렵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을 찾아가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일이 잘 풀리고 잘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잘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몰라도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채 자기가 알아서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써서 살아가게 되면, 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잘되더라도 평생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이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늘 불안해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다 인생이 끝나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만 의지하면 인도해주신다는 약속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 말씀을 대할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사라처럼 믿지 못하고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하며 웃으십니까? 주님의 말씀이 내 삶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아무리 말씀을 읽어도,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예배에 참석해도, 별로 변화가 없다면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믿기는 믿지만, 하나님이 정말로 내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으시고 또 해결할 마음도 있으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만약에라도 그런 의심이 조금이라도 들면 바로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나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너는 어디 있느냐?’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그리고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가는 말]

 

오래 전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담임목회를 처음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주 강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부교역자 시절에는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담임목사가 되고 나서 아주 뼈저리게 목회는 이것이라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세미나나 다른 데서도 들은 적이 있지만 정말 실감하게 된 말이 있는데 바로 이겁니다. “목회현장은 지뢰밭이다.”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릅니다. 그런데 목사만 목회하는 게 아닙니다. 직분자들, 그리고 목자 목녀도 다 목회가 아닙니까? 사역 현장은 지뢰밭입니다. 언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를 모릅니다.

 

처음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뭔가 힘든 일이 생겨서 고민하며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기도할 때 바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맞습니다. 하나님은 능하지 못한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아빠엄마를 그냥 신뢰하듯, 바로 그렇게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주님 앞에서 그 순수한 어린아이의 신앙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듯, 주님을 우리가 무조건 의지하는 바로 그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반드시 다 이루어집니다. 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고 하셨으면 정말로 능하지 못한 일이 없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각자를 인도해주시고 우리 가정을 인도해주실 것이고, 우리 가정을 인도해주실 것이고, 또 우리 교회도 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후에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능하지 못한 일이 없으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만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하며, 주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에 참여하여서 쓰임 받는 귀한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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