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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19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6

사자와 어린양이신 주님의 구원 계획

(요한계시록 51~10)

 

[들어가는 말]

 

지금 어린이와 청소년과 대학교 1-2학년 정도까지의 자녀를 두신 분들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20세기 사람들이고, 우리 자녀들은 무려 21세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세기가 다릅니다. 21세기 들어서 세대가 더 빨리 바뀌고 있으니까 우리는 몇 세대 차이가 나는 겁니다.

 

20세기는 그 동안 인류가 발전시켜 온 문명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과학 기술의 발달을 이루어낸 기간이었습니다. BC부터 19세기까지 다 합친 것보다 20세기에 이루어진 과학 기술의 발달이 더 큽니다. 사람이 비행기로 하늘을 날고, 우주선이 우주를 날아 달 표면에 도착하기도 하고, 다른 별들로 가기도 했습니다. 의학 기술의 발달도 눈이 부시게 달라져서 과거에 불치병이라고 여겨지던 병들이 치료되어 인간의 수명이 연장됐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는 20년 밖에 안 지났는데, 20세기의 100년보다도 21세기의 20년 동안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빨리 달리면 부작용이 일어나는데, 그래서 지금 부작용도 많이 있습니다.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황폐해지고, 전쟁의 위협과 핵폭탄의 위험도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우리가 실감하고 있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도 있습니다. 이전에 알지 못하던 바이러스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나온 바이러스를 Novel Coronavirus라고 부릅니다. ‘novel’이라는 말은 소설이라는 뜻도 있지만 ‘new(새로운)’이라는 뜻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이전에도 있었는데 ‘Novel Coronavirus’ 즉 새로운 변종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인류가 어디로 어떻게 더 발전해나갈 것인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며 여러 가지로 사람들이 고민합니다. 특히 요즘 이런 바이러스 사태를 보면서, 앞으로 인류가 멸망하는 것은 전쟁도 핵폭탄도 아니고 바이러스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인류는 결코 과학의 발전이나 환경의 파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역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기까지 인류 역사는 계속됩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1.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 (1)

 

한국이든 미국이든 국가별로 중요한 문서에는 ‘1급 비밀표시를 붙여 놓고 철저히 관리를 합니다. 깊숙이 숨겨 놓고 아무도 못 보게 합니다. 그런 문서들을 취급할 수 있는 사람은 법적으로 자격이 정해져 있어서 그 사람만 볼 수 있거나, 아예 몇 년이 지날 때까지 아무도 못 보도록 봉인을 해놓습니다.

 

성경이 쓰인 1세기 로마시대 때도 똑같았습니다. 중요한 두루마리 문서의 둘레에 띠를 두르고 그 띠에 납 같은 것으로 인봉을 해서 아무나 그것을 함부로 열지 못하도록 해놓았습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1)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오른손에 아주 중요한 두루마리 책 하나를 들고 계시는데,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것이 오른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무슨 사람처럼 오른손이나 왼손이 있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오른쪽 또는 오른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권능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두루마리가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고, 또한 일곱 인(seal)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책이면 인을 일곱 개씩이나 찍어서 봉하여 놓았겠습니까?

 

성경,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의미합니다. 7을 보통 완전수라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7이 왜 완전수인가 하면 하늘과 땅을 합쳐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숫자가 3입니다(성부, 성자, 성령). 또한 하늘도 세 개의 하늘(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이 있습니다. 반면 4는 땅의 수입니다(동서남북, 사계절 봄/여름/가을/겨울). 하늘의 수와 땅의 수를 합친 7이 완전수입니다.

 

어떻게 보면 더 완전한 수는 3 곱하기 4를 한 12입니다. 괜히 이스라엘이 열두 지파인 것이 아닙니다. 열이나 열셋, 열다섯으로 할 수도 있지만 12지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열두 명입니다. 천국에도 열두 기둥이 있어서 사도들의 이름이 거기 기록됩니다.

 

따라서 일곱 인으로 봉했다는 것은 완전히 봉해졌다는 것, 또 완전히 비밀이라는 뜻입니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은 거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가 아니면 결코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두루마리는 안팎으로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내용이 아주 많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쉽게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학자들도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요한계시록을 쉽게 읽지 못합니다. 설교자들도 설교 때 많이 다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괜히 잘못 해석했다가는 이단 시비가 붙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쪽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대해 설교를 많이 하지, 뒤의 이야기는 별로 안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요한계시록의 구조가 단순합니다. 앞에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오고, 6장부터는 심판이 나오는데, 물론 중간 중간에 다른 이야기들도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큰 구조는 심판이 시작되면서 일곱 인이 있고, 여섯 인을 뗀 다음 일곱째 인을 뗄 때 일곱 나팔의 재앙이 시작됩니다. 여섯 천사가 여섯 나팔을 불고 일곱째 나팔을 불 때 일곱 대접의 재앙이 또 시작됩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으로 진행되며 그 강도가 점점 세지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6장 이후 일곱 개의 인을 하나씩 뗄 떼마다 세상에 아주 무서운 재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핵심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요한을 통하여 이 책 내용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r 당시 교회가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마치 거대한 산이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상황 앞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고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회였습니다. 지금도 로마 유적지에 가보면 1세기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이루어놓은 것들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아니, 그 당시 어떻게 이런 문명을 이루고 살았는가? 이런 편의시설을 갖추고 살았는가?’ 하며 놀랍니다. 로마 사람들이 보기에 로마에는 더 이룰 목표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한 로마라고 하는 거대한 제국 앞에서 교회는 너무나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구원이 위대하다고 해도, 아무리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1세기 당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배우지 못한 사람들, 가난한 노예들, 부녀자들이 많았습니다. 지식인들이나 교양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박해의 물결이 아주 강하게 일어나고 있던 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AD 50~60년대에는 제국 차원의 박해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인생 말기였던 AD 60년대 후반부터 당시 황제였던 네로 때부터 박해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주 초라하게 느껴졌고, 특히 사도 요한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밧모 섬에 유배되어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았던 1세기 말에는 굉장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법 앞에 성경의 진리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모든 욕망을 자신의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로마의 지식인들 앞에 복음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의미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크리스천들이 박해를 견디면서도 은근히 그들 마음 가운데에는 이러다 교회는 망하는 게 아닌가? 밖에서는 박해가 들어오고 안에서는 타락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 우리 교회는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 요한이 교회에서 같이 사역하지 못하고 유배를 당해서 저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는데, 거기서 환상을 보고 기록한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이처럼 밖에서 교회가 엄청난 박해를 받으며 이제 망하지 않는가 하는 상황 속에서 사도 요한의 눈에 무엇이 들어옵니까? 그의 눈에는 이 복음의 진리가 일곱 개의 인으로 봉인된 책,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두루마리 하나가 보이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류 문명의 발달을 찬양하며 고대 문명을 연구합니다. 그러면서 인류 역사의 마지막은 문명의 극치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뉴욕이나 파리나 런던 같은 데 가보면 정말 인류 문명이 찬란합니다. 특히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데에 가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이 나오는 것들이 많습니다. 또 높은 건물들을 보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래서 인류의 마지막은 문명의 극치를 이룰 것이라고 예상을 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은 인류 문명의 극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성취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결코 완전한 세상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알려줍니다.

 

사람들은 생명도 인간이 만들 수 있고 조작해서 뭐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며 우주도 나갈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지도로 보면 아주 조금밖에 못 나간 겁니다. 그런데도 인류 문명을 칭송하고, 그런 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띄워주고, 그러면서 우리는 앞으로 완전한 세상을 이룰 수 있다.’라고 착각하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당시 로마의 법은 현대 법률 체계의 기초가 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문명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로마 사람들은 검투사들을 서로 싸우게 하고, 사람들 특히 크리스천들을 잡아다가 맹수와 싸우게 하고, 그러면서 한쪽이 찔리고 비참하게 피를 흘리고 몸이 찢기고 잘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또 맹수에게 잡아먹히며 뜯기는 것을 보면서 환호했습니다. 마구 좋아하고 기뻐하고 환호하고 박수를 쳤습니다.

 

또 로마 사람들은 파티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음식을 먹고 가서 토하고 다시 와서 또 먹으며 파티를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화장실 외에 토하는 곳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간과 우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학문도 많이 발전시켰지만, 그렇게 인간의 지성을 떠받들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우상들을 만들었습니다. 로마 신화나 그리스 신화에 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그토록 고상한 그들의 철학은 사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데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선포하는 것은, 그런 로마의 화려한 문명이나 인간의 높은 지성이 역사의 끝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마가 아무리 강력해 보여도, 그 힘과 지혜와 지식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몇 년 후의 역사를 보면 다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인류 역사는 로마와 상관없이 계속될 것이고, 또한 전쟁과 기근과 질병도 계속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가 그러한 재앙들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도 보여줍니다. 2천 년 전에 요한계시록에서 그것을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봉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나팔을 불 때마다, 대접이 쏟아질 때마다 무서운 재앙이 일어나는데, 그렇게 되면 인간이 그토록 노력해서 쌓아올린 문명의 탑은 그대로 와르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결국 그러한 재앙의 상황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죄인들을 부르셔서 구원해주신다고 선포합니다. 재앙의 상황 속에서는 그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인간이 쌓아올린 어떤 문명이 유토피아나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진짜 천국이며 비교도 안 된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이 보여줍니다.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일어나는 재앙들은 앞으로 일어날 무서운 심판을 미리 보여줍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재앙들은 우리의 삶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인간이 만든 어떤 방법도,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보십시오. 이것 하나 때문에 우리 일상생활이 다 중단되고 모든 계획이 다 중단되지 않았습니까?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중단되고 무너졌으니, 우리가 쌓아놓은 것이 얼마나 연약한 기반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나머지 부분은 이 두루마리 책이 펼쳐지는 가운데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악을 심판하시며 최후에 온 우주를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2.   사자이며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2~6, 9~10)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이 책은 누군가가 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루마리가 열려야 구원의 문도 열리는 겁니다. 그래서 한 힘센 천사가 큰소리로 외치며 질문합니다.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2)

 

이 천사는 큰소리로 온 우주를 향해 이 책에 있는 봉인을 떼어서 두루마리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고 외칩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3)

 

이 두루마리를 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무리 문명과 지식과 지성과 강력한 힘을 자랑해도, 그런 사람 중에 열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나 천사들 중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인간도 어떤 천사도, 이 책을 감당할 수가 없고 열 수도 없습니다. 요즘 이단들이 많이 나오는데 교주를 신격화합니다. 나라도 지도자를 신격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보아야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구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은 정말로 엄청난 구원입니다. 시시한 구원이 아닙니다. 요즘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는 것이 너무 쉽게 들려서 흔히 하는 말 중에 요즘은 구원이 10원보다 조금 못하다.’라는 농담도 할 정도이지만, 결코 구원은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저 지옥에 떨어져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구출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하나님의 영광 안에 잠시 사는 게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사탄의 하수인으로 이용당하며 살 수밖에 없던 상태에서 구원해주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고, 주님의 성품을 받아서 풍성함을 누리며 살게 해주시는 그런 구원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사건임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크리스천이라는 것은 절대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예수 믿고 구원받고 천당 간다.’라는 식의 겨우 그 정도가 아닙니다. 너무 감사해서 감격하며 울고 또 울고 또 울어도 부족한 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내가 정말로 그렇게 엄청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지금처럼 살아도 되는 겁니까?

 

그런데 이 영광스러운 구원은 그 어떤 사람이나 천사가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줄 수 없는 영광스러운 구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이 책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누군가가 꼭 펼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인간에게는 아무런 구원의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요한은 통곡을 합니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4)

 

요한은 이 책이 열리지 않으면 우리의 어떤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이 두루마리를 열어야 하는데 그것을 펼 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슬퍼서 크게 울었습니다. 요한은 하늘에서 계시를 보았을 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로 듣지 않고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에 마음에 콱 와 닿아 울었던 것입니다.

 

지금 자기만 구원을 못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것이 열리지 않으면 인류가 구원을 못 받게 된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울었습니다. 온 인류를 정말로 자기 마음에 품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책을 열 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이것은 정말 큰 문제이기 때문에 크게 통곡했고, 그가 그렇게 통곡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5)

 

바로 이것이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시는 위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대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 여기서 유대로 되어 있는데 사실 유대 지파는 없습니다. “유다 지파를 말합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인을 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불안하고 힘든 상황에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자기가 혼자 외딴 섬에 유배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크게 운 것이 아닙니다. 강제 노역이 너무 힘들어서, 또는 이제 풀려날 가망이 없고 여기서 죽는다는 것 때문에 운 것도 아닙니다. 밧모 섬이든 육지이든, 갇혀 있든 자유의 몸으로 있든, 그것이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뭐가 중요합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인간이든 천사든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도와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인류를 구원할 존재가 없다는 사실, 그런데 주님께서 해결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울 때가 있습니다. 여기 요한처럼 크게 울 때도 있습니다. 나로 하여금 그렇게 울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웁니까? 우리가 울며 괴로워하는 이유가 주로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고, 특히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그리고 내가 무시당할 때 분해서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또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실망하여 눈물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 있어서 정말 되어야 하고 될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안 되었을 때, 정말 슬프고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눈을 들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속히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중간에 사탄의 방해가 있고, 인간들 또한 그 구원에 대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사람들은 그것을 신경도 안 쓰며 살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모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는 겁니다.

 

우리의 진짜 소망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이런 상황에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구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사탄의 속임수를 꺾으시고, 무관심한 인간의 마음을 바꾸시고, 그래서 아무리 혼탁하고 죄가 가득한 세상이라도 구원을 완성하여 마치십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지금의 어려움과 고난이 주님의 구원을 이루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쁨으로 우리 자신을 드리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구원 계획에 나 자신을 바칠 때 우리는 진정한 위로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은 도저히 어울릴 것 같이 보이지 않는 두 가지 모습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사자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입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6)

 

5절에서는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고 했는데, 사자는 언급만 된 것이고 실제로 6절에 등장하는 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입니다. 사자는 정복자이고 승리자입니다. 짐승들 중 가장 위에 있는 존재입니다. 강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연약한 어린양, 그것도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사차처럼 강한 정복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속에 있는 비밀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풀려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사탄의 종 된 것으로부터 우리를 찾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어린양으로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일찍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바로 그 어린양이십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9-10)

 

이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보좌 앞의 일곱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셔서 땅 끝까지 찾아가 사탄에게 종이 된 백성을 빼앗아 오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사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사자와 같은 강력함으로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드러내시고, 우리를 사탄의 권세로부터 빼앗으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어린양을 성령과 연결시킨 것입니다. 성령이라고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나옵니다. 6절에서 일곱 뿔과 일곱 눈이라고 했는데, 일곱 뿔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 힘이 어디서 옵니까?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6). 정말 일곱 개의 영이라기보다는, 바로 이것이 성령님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완전하신 성령님.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 믿는 자들의 교회 위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그래서 온 세상의 죄와 대항하여 싸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능력은 바로 성령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의 힘은 눈에 보이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에서 오고,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주님께서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은, 그러니까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엄청난 박해 속에 있지만 로마제국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뒤에 오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주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의 세력을 쫓으시고 구원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해주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뭔가 하면, 우리 믿는 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고 맛보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왜 그렇게 못하느냐 하면, 정말 예수님을 붙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너무나 피상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삶>이나 <경건의 삶> 공부를 할 때 피상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쓰지 말고 구체적으로 쓰자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사랑, 성령 충만 등은 다 좋은 말입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겠다.’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 말인데,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말입니까? 너무 피상적입니다. 너무 추상적입니다. 은혜가 충만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 성령 충만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우리 삶 속에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신앙이 마치 액세서리와 같이 되어서 무늬만 크리스천인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큰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정말 입게 되면, 우리 안에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고 참된 영적 권세가 회복됩니다. 그래서 사자와 같은 음성으로 우리가 죄악을 쫓아내고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결국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바로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실하게 서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타납니다.

 

 

3.   성도들의 기도 (7-8)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도 요한 당시 1세기 말에는 박해 때문에 교회가 아주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순교가 일어나면 교회가 오히려 더 강력해집니다. 그래서 로마제국은 소아시아의 영적 지도자였던 사도 요한을 죽이지 않고 일부러 가둔 겁니다. 서로 떨어지게 함으로써 교회가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남은 성도들은 주님께서 곧 오겠다고 하셨는데 왜 빨리 안 돌아오시는가?’ 하면서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왜 안 오시나?’라고 하고 있을 때, 주님은 하늘에 있는 교회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십니다.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7-8)

 

이것을 보십시오.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는 그냥 어렵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로마의 박해 아래 있는 교회가 받은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읽어야 합니다. 지금 엄청난 박해 속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언제 잡혀갈지,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때 이 편지가 사도 요한으로부터 도착한 겁니다. 이것을 숨어서 읽고 있는 성도들의 입장에서 우리가 읽을 때 이 말씀이 엄청난 위로의 말씀입니까?

 

하늘나라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 이게 가짜가 아니라 진짜구나.’ 그리고 지금까지 성도들이 드린 모든 기도가 금 대접 안의 향으로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 우리가 드린 기도가 땅에 떨어진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 겁니다.

 

그런데 왜 으로 표현했을까? 이것은 그림언어입니다. 좋은 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까? 요즘은 향 치료까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냥 대접도 아니고 금 대접 안에 담긴 아름다운 향기라는 확신을 박해당하는 성도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드린 기도는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모두 주님 앞에 가서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드린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네 생물이라고 하는 것이 암호 언어입니다. 로마제국의 검열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암호처럼 쓰였습니다. “네 생물은 천사들의 대표이고, “이십사 장로들은 천상의 교회 대표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미 이 땅의 싸움을 마치고 천국에 들어가 영광중에 안식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하늘에 있는 교회를 보면 이들이 모두 손에 각각 거문고(harp)를 하나씩 들고 있습니다. 또 향이 가득 들어 있는 금 대접을 하나씩 다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면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얼마든지 구원을 혼자 하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을 혼자 하지 않으시고 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사용하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렇습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영혼의 구원을 위해 책임을 맡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주님이 행하신 그 일들을 새 노래로 선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곱 봉인을 하나씩 떼시기 전에 먼저 하늘의 교회가 드린 기도와 찬양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 있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세게기도해서 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성령님의 임재의 중요성을 깨닫고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곱 인을 떼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기도의 금 대접을 보여주심으로써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의 진짜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진짜 문제는 우리가 겪고 있는 바이러스 사태나 경제적 어려움이나 또 다른 질병 같은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채로 덜 중요한 것을 쫓아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이고 진짜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우리는 고갈되고 그래서 불안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붙들지 않고 다른 것을 붙들게 되면 자동으로 오는 게 바로 불안함, 염려, 걱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강력한 무기가 바로 기도이고 말씀입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사실은 기도 그 자체라기보다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능력을 받고, 그럴 때 우리는 나가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기도해야 할 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풍성하게 부어지는 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다 따라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아야겠습니다. 또 어떤 기도제목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보면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나타납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을 지금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가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 삶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붙들고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기도하는 사람에게 바로 그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며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우리 자신뿐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저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역사가 우리 삶 속에 또 우리 교회 안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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