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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14일 수요예배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7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기도하라

(베드로전서 113~17)

 

1.   거룩과 순결의 중요성

 

기도가 힘 있게 드려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과 순결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19:2)

 

베드로는 이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편지에서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5-16)

 

거룩이라는 원래 뜻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더럽지만 주님은 순결하십니다. 순결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과 순결이 우리 믿는 자들과 교회에도 있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교회가 교회 되는 길은 거룩과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순결함이 없으면 교회가 아무리 많은 말을 하고, 아무리 크고, 아무리 화려해도, 뭔가를 엄청나게 하더라도, 결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조롱을 받습니다. 교회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거룩하고 순결해야 합니다세상이 악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세상은 교회에 더욱 거룩과 순결을 요구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왜 교회에 대해 그토록 비판적인가 하면, 그만큼 교회에게서 거룩과 순결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을 받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믿는 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교회는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그때 성도들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서로를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찬물을 끼얹는 듯한 일이 일어나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사건입니다.

 

엄청난 역사와 넘치는 에너지로 무섭게 성장하던 초대 교회의 초창기에 왜 하나님은 그토록 무서운 방법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심판하셨던 것입니까?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이 거룩과 순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갑자기 죽은 것은 거룩과 순결을 기초로 하지 않은 부흥은 부실공사와도 같다는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였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크리스천들과 교회의 위기도 같습니다. 삶에 거룩함과 순결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들도 안 믿는 사람과 별 다름 없이 세상에 살면서 솔직히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고, 돈 문제나 이성 문제에도 너무 많이 걸립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보며 내가 저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은데 뭐 하러 저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 나가나?’라고 합니다. 그다지 다른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새로워져서 세상의 도덕과 윤리의 표준이 될 정도로 깨끗해져야 거룩한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안디옥에서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여 교회가 세워졌을 때,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영적으로도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굉장히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믿는 자의 수를 많이 더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며 눈물로 예배하는 모습이 있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비도덕적이고 안 믿는 사람만 못하고 슬쩍슬쩍 속이는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안 믿는 사람을 교회로 이끌 명분이 없습니다. 영향력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깨끗해야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거룩과 순결을 회복하길 원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성도의 거룩함을 옷에 자주 비유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110:3)

 

주님의 백성의 특징은 거룩한 옷을 입고, 즐겁게 헌신하며, 주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곳곳에도 이 거룩한 옷의 이미지가 나옵니다. 특히 신랑 되신 예수님은 신부 된 교회가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된 거룩한 옷을 입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19:7-8)

 

혼인잔치라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의 주로 오시는 마지막 때를 말합니다. 그때가 이를 때 아내(교회)가 자신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아내가 입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착한 일을 해서 구원받을 자격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옷을 입기 때문에 신부가 되는 게 아니라, 신부이기 때문에 이 옷을 입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옷은 주님께서 입도록 허락하신 것이고 주님께서 입혀주시는 옷입니다. 신부이니까 입혀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주신 은혜의 옷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고 주님의 신부가 되었는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후에는 우리가 신부이기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구원의 열매를 삶에서 맺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옳은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는 사람은 바르게 사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의성화는 떼어놓을 수 없고 같이 가는 개념입니다. 정말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삶은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살 수가 없습니다. 다른 각도로 볼 때, 삶을 어떻게 사는가 보면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남의 구원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 삶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특히 요한일서 같은 곳을 보면 그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삶을 사는가? 그것을 보고서 구원받은 것을 안다고 합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옳은 행실을 하며 바르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고, 그것이 주님의 신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신부가 신랑과의 결혼식을 기다리는 동안 해야 할 준비가 있듯이, 주님의 신부 된 교회가 신랑 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준비는 순결입니다.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신부와 음녀의 차이는 순결입니다. 바벨론 음녀는 온갖 화려한 옷과 값비싼 보석들로 치장하고 있지만 너무나 추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신부인 교회는 수수하지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있습니다.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신부의 순결은 곧 거룩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입혀주신 그 깨끗한 세마포 옷을 우리는 깨끗하게 지켜야 합니다.

 

 

2.   거룩과 순결을 잃어버릴 때 일어나는 현상들

 

우리가 거룩과 순결을 잃어버릴 때 어떻게 됩니까?

 

1)  영적 능력의 상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있는데, 그 중 사데 교회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아주 유명한 교회였습니다. 수많은 행사와 사역과 활동을 했고, 교회 출석율도 좋았고, 성경공부 프로그램도 많았고, 좋은 일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겉모습은 아주 괜찮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유명했는데, 사람들에게 유명하고 칭찬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주님 보시기에도 좋은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를 무섭게 야단치셨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3:1)

 

주님께서 죽었다고 하시는 것은 영적으로 무기력하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겉으로만 뻔드르르하고 화려하지, 영적 내실이 전혀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것저것 일하며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다고 하십니다. 사데 교회 교인들이 사데라는 도시의 물질적 풍요와 옛 명성을 그리워하는 헛된 교만, 그리고 도덕적 타락의 풍조에 휩쓸려서 영적으로 부패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거룩을 잃으면 영적인 능력을 상실하고 영적 권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나이가 많고 직분이 있다고 해도 영적 능력이 없으면 존경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영적 권위와 능력이 없이 영적 전쟁에 나가면 마귀에게 조롱당하며 망신당하고 패배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거룩한지 아닌지를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시고, 그 다음이 마귀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거룩하지 않은 사람을 무시하며 마음 놓고 공격합니다.

 

거룩을 잃어버린 사람은 영적 전쟁에서 적군의 샌드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자기 가정과 주변 사람들까지 다 마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 그렇게 무섭습니다거룩과 순결은 개인이나 교회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입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거룩과 순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영적인 능력을 잃게 되어 마귀에게 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거룩을 잃어버렸다면 빨리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거룩을 회복해야 합니다.

 

 

2)  축복의 상실

 

거룩과 순결을 잃으면 축복도 잃어버립니다. 1980-90년대에 너무나 좋은 찬양곡들을 많이 만들어내어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최 모라는 찬양사역자가 있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그가 만든 곡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소위 바람을 피우고 이혼하여 가정이 깨졌습니다. 그를 좋아하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충격을 받았고, 그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처절한 회개와 자숙의 시간을 거쳐 몇 년 전부터 다시 조용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가 끼쳤던 엄청난 영향력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큰 축복을 누릴 것이지만, 우상숭배를 하고 죄를 지어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그 모든 축복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거룩을 잃으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기 가정과 자녀와 사역과 자기가 이끄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마귀가 빼앗아 버립니다.

 

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지만, 마귀는 항상 우리에게 죄의 단맛만 보여주고 죄의 무서운 대가는 못 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 차려야 합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거룩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합니다.

 

 

3)  기쁨의 상실

 

거룩을 잃으면 기쁨도 사라집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불륜을 저지르고 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하나님께 무서운 책망을 들었을 때 시편 51편을 썼습니다. 그것은 처절한 회개의 기도였는데, 거기서 다윗이 뭐라고 합니까?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51:12, )

 

우리가 주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면 구원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기쁨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벽이 생기고, 우리 안에 영적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너무 괴롭습니다. 한때 성령 충만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윗은 놀라운 예배자였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평생 동행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렸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쁨이 사라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기쁨이 사라지만 메마르고 격식만 갖춘 종교인이 되어 버립니다. 아무리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아무리 사역을 열심히 해도, 기쁨이 없이 하면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재미없고 아무 능력도 없고 열매도 없게 됩니다. 그냥 마지못해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는 불행한 삶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을 회복해야 합니다.

 

 

4)  평안의 상실

 

죄를 지으면 자꾸 죄를 숨기며 미화시키려 하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저지른 불륜을 숨기기 위해서 그녀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우리야를 죽여야 했듯이, 죄를 감추기 위해서 또 다른 죄를 짓게 되고, 그럴 때마다 점점 평안을 잃어가게 됩니다.

 

더러운 생각, 더러운 습관, 더러운 말, 더러운 관계, 방치한 죄들은 마귀가 너무 좋아하는 놀이터입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속에서 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 마음은 지옥이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안식과 평안 대신,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 안에 평안이 없고 불안하며 기쁨이 사라지고 괴로움만 있다면, 성령님의 조명 아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쁨과 평안을 회복해야 합니다.

 

 

5)  기도의 막힘

 

거룩을 잃으면 기도가 막힙니다. 우리는 보통 기도를 유창하게 하거나 많이 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자꾸 막히는 것 같고 답답하고 기도가 잘 흘러가지 않을 때는, 뭔가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어서 그럴 때가 많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방치된 죄가 있는 겁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악한 생각을 품었더라면,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66:18, )

 

죄를 마음에 품고 고백하지 않은 사람, 죄를 짓고도 아닌 척하는 사람,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자꾸 합리화하는 사람, 너무 습관적으로 죄를 짓다 보니 무감각해진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영성이 둔해져서 기도의 통로가 막혔어도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해도 응답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사람이 많이 기도해도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던 죄, 남들도 다 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던 죄, 방치된 죄, 합리화시킨 죄를 모두 성령의 임재 앞에 드러내어 고백하고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3.   성도의 거룩과 순결을 잃게 하는 마귀의 전략

 

거룩과 순결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마귀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해서 거룩을 잃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마귀의 지상 목표를 두 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죄를 짓게 해서 거룩을 잃게 하여 영향력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구체적으로 우리를 어떻게 공격합니까?

 

1)  개개인 맞춤 공격

 

먼저 사탄은 개인의 약점을 파악해서 맞춤공격을 합니다. 마귀는 우리 각자가 어떤 부분에 약한지 정확하게 알고 그곳을 집중 공격합니다. 사사기를 보면 삼손은 엄청난 힘을 가진 장사로 블레셋에게서 이스라엘을 여러 번 구했지만, 여자 문제 때문에 자꾸 넘어졌습니다. 젊을 때부터 여자 문제로 사고를 쳐서 혼이 났다면 특별히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그냥 방치해두고 계속 여자를 밝히다가 블레셋이 보낸 들릴라를 통해 함정에 빠집니다. 우리는 자신의 취약점을 잘 알고 그것을 특별히 조심하며 경계해야 합니다.

 

 

2)  정확한 타이밍에 공격

 

마귀는 정확한 타이밍을 노립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강할 때는 거리를 두고 있다가, 영적으로 나태해질 때를 노려 공격해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과 기도를 게으르게 할 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교만해질 때, 직분을 받거나 사역을 맡아서 하기로 했을 때와 같이 하나님께 뭔가 헌신을 했을 때, 많은 사역으로 지쳐 있을 때, 또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시험을 받을 때 마귀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옵니다.

 

마귀의 공격은 타이밍이 기가 막힙니다. 절대 공격받고 싶지 않을 시점에 죄의 유혹을 걸어오고 넘어지게 하려 시도합니다.

 

 

3)  관계를 공격

 

마귀는 항상 주변 사람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듭니다. 친구들이나, 믿었던 동역자들, 또한 가족들을 통해서도 죄의 유혹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관계를 조심해야 하고, 매일 관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4)  서서히 공격

 

우리가 거룩함을 잃는 것은 한순간의 죄로 인해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간을 거쳐 나태해지고 타협하면서 일어납니다. 배가 어쩌다 항로를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누군가가 갑자기 방향타를 홱 돌렸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물결이나 바람 때문에 배의 방향이 서서히 틀어지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중에는 선원들이 눈치 챌 시간도 없이 어느새 항로를 크게 벗어나 암초에 부딪쳐서 침몰하고 맙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살면서 이 정도쯤이야하고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작은 타협들이 점점 쌓여서 타락과 부패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의 삶에서 조금씩 타협하고 있는 부분들이 무엇인지를 체크해보십시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타협하는 부분이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것을 잘 정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커지고 나를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작은 타협들로 무엇이 있습니까? 자기가 한 일을 조금씩 과대포장해서 말하는 것, 악의 없이 한다고 하며 다른 성도들의 험담을 슬쩍슬쩍 하는 것, 인터넷으로 야한 것들을 보는 것, 사업에서 웃돈 얹어 부당한 방법으로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 불안해서 또는 재미로 오늘의 운세를 조금씩 보는 것 등입니다. 이런 작은 타협들이 점점 쌓여서 우리 안의 거룩을 무너뜨립니다. ‘조금 하니까 괜찮겠지하는 것들을 특히 더 조심해야 합니다.

 

 

4.   거룩과 순결의 회복을 위하여

 

1)  회개하라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은 거룩함을 잃어버린 백성에게 회개하고 거룩을 회복하라 하십니다. 우리의 최고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대개 성공하는 것, 건강한 것, 사업자금 구하는 것, 내 자녀가 좋은 학교 가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최고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거룩입니다. 거룩을 회복하면 다른 모든 것들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을 회복하면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싫거나 부담이 되어서 자꾸 다른 것을 하려고 합니다. 거룩과 순결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남의 말 하듯이 그래, 저 사람은 문제가 많아라거나 요즘 저 교회가 문제야라고 남의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고치려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회개하기를 신경 쓰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아 자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네 문제를 고쳐라하고 개혁을 시도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먼저 엎드리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면, 믿음을 떠난 자녀가 돌아올 것입니다. 목회자와 장로가 기도하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성도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영적 리더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항상 하나님 앞에 내놓으며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회개를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해주시며, 바로 거기에서 영적 권위가 부어집니다. 주님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고 깨끗해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성도는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죄에 아주 민감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불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모든 더럽고 악한 것들을 태우시며 깨끗하고 정결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회개하여 거룩을 회복하면 기쁨이 충만해지고 마귀가 물러갑니다.

 

요한계시록에는 거룩한 흰 옷을 입은 성도들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게 나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옷 입으며 죄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싶다면 우리가 할 일은 회개입니다. 거룩과 순결이 회복된 교회에는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2)  거룩과 순결의 방어막을 치라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도 회개가 필요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거룩을 계속 유지하도록 미리 방어막을 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조심해야 합니다. 깨어서 분별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를 잘 보면, 계속해서 같은 부분에 넘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을 발견할 겁니다. 자기 삶에서 주로 넘어지는 패턴을 보면, 비슷한 데서 넘어지고 비슷한 실수를 했을 겁니다. 가장 최악의 실패는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약점을 알면서도 극복을 잘 못하는데, 자기 의지와 노력만으로 하려니까 그렇습니다.

 

성령님께 자신의 취약점을 내어드리고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제 노력과 의지로 이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것을 막아주십시오.’라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죄를 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밀려올 유혹과 죄의 공격을 막으며 주님의 보호하심을 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3)  내 안에 들어오는 것들을 점검하라

 

무엇을 집어넣는가(input)가 무엇이 나오는가(output)를 결정합니다. 일주일 내내 세상 속에서 살지 않을 수 없지만, 세상의 더러운 요소들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은 미리 차단할 수 있습니다.

 

모여 앉기만 하면 자꾸 남을 욕하거나 교회 욕을 하는 사람들, 음담패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사람들을 되도록 피하고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보고 읽고 듣는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들이 영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면 과감히 정리하거나 줄여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과 순결을 지킬 수 있습니다. 죄에 유혹받기 쉬운 시간을 정리하여 죄가 들어올 공간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아니라고 자신하면 곤란합니다. 그 누구라도 쓰러질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다윗보다 영성이 뛰어나고 기도를 많이 하며 찬양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윗보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랬던 다윗도 무너졌다면 우리 중 누구도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약합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알 때 가장 강합니다. 내가 약할 때 가장 강하신 주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크리스천들이라고 함부로 막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모독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은혜를 더럽히지 않도록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경쟁력은 거룩과 순결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보다도 순결하지 않다면 어떡합니까? 교회가 아무리 크고 수가 많아도 거룩을 잃으면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고 기도가 막힙니다.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이 기대하시는 사람들은 거룩함과 순결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볼 때 답답하다고 할지 몰라도, 그들만이 역사의 마지막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가 거룩과 순결을 가져오고, 거룩과 순결이 기도에 능력을 실어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주는 거룩과 순결로 가득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 쓰임 받는 교회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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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맛디아: 빈자리를 채운 사도 (행 1:15-26)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14 (10/21/20) kpccoh 2020.10.22 2280
272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 왕상 19:9-18) - 조준오 목사 (10/14/20) kpccoh 2020.10.15 230
271 가룟 유다: 끝까지 안 믿다가 결국 배신한 제자 (요 13:21-30)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13 (10/07/20) kpccoh 2020.10.08 1291
270 셀롯인 시몬: 진정한 열심을 발견한 사도 (행 1:6-14)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12 (9/30/20) kpccoh 2020.10.01 2373
269 작은 야고보: 작지만 꼭 필요했던 사도 (막 15:40-41)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11 (9/23/20) kpccoh 2020.09.24 2567
268 다대오 유다: 가룟인 아닌 사도 (요 14:21-24)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10 (9/16/20) kpccoh 2020.09.16 1455
267 도마: 의심 많은 사도 (요 20:24-29)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9 (9/09/20) kpccoh 2020.09.09 2621
266 마태: 경멸의 대상에서 존경의 대상이 된 사도 (마 9:9-13)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8 (9/02/20) kpccoh 2020.09.02 2148
265 나다나엘: 순전한 마음을 지닌 사도 (요 1:45-51)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7 (8/26/20) kpccoh 2020.08.26 3730
264 빌립: 신중하지만 결단할 줄 아는 사도 (요 1:43-45)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6 (8/19/20) kpccoh 2020.08.20 1203
263 요한: 사랑의 사도 (요일 4:7-12)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5 (8/12/20) kpccoh 2020.08.13 1332
262 야고보: 열정적인 사도 (막 1:19-20)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4 (8/05/20) kpccoh 2020.08.06 698
261 안드레: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긴 사도 (요 1:35-42)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3 (7/29/20) file kpccoh 2020.07.30 1279
260 베드로: 약하지만 강하게 된 사도 (눅 22:31-34)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2 (7/22/20) kpccoh 2020.07.23 1417
259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 (고전1:26-29) -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1 (7/15/20) kpccoh 2020.07.16 945
258 죽음의 사자 굴에서 경험한 은혜 (단 6:16-27)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16 (7/8/20) kpccoh 2020.07.08 1396
257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 경험한 은혜 (단 3:13-27)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15 (7/1/20) kpccoh 2020.07.02 1462
256 우리의 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 (잠 3:5-8) -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14 (6/24/20) kpccoh 2020.06.2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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