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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26일 수요예배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2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누가복음 724~30)

 

1.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을 보고 있느냐는 질문

 

열두 번째 영적 질문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던지신 질문으로,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광야에는 볼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가시덤불, 모래, , 잡초 같은 것이 전부입니다. 광야에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라고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광야로 몰려든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인 세례 요한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나와서 외칠 때까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말라기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다가, 400년 정도 지나서 세례 요한이 나와 말씀을 선포하니까 사람들이 몰리게 된 겁니다.

 

세례 요한의 별명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사람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보기 위해서 광야에 나간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왜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가 무슨 뜻입니까? ‘너희가 만나고, 듣고, 본 광야의 소리를 주목하라하는 뜻입니다.

 

사실 광야는 힘든 우리의 인생을 표현해주는 단어입니다. 때로는 외롭고, 쓸쓸하고, 힘든 삶을 광야 같은 삶이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인데, 이 단어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드바르의 기초가 되는 다바르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단어인 드바르는 성전의 지성소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말씀하시는 곳이 바로 광야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힘든 곳이고 척박한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축복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그 광야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광야가 우리의 인생에서 아름답고 가치 있는 현장이 될 수 있습니까? 그곳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이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삶에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삶이 편안할 때는 너무 소음이 많아서 그 말씀이 잘 안 들립니다. 이것 듣고 저것 듣고 하다 보니 정작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데려가시는 겁니다. 거기서는 한마디만 하시면 소리가 울리기 때문에 그냥 들립니다. 우리가 삶이 편안하고 그저 먹고 살 만할 때는 적당히 살아가고 나태하게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러한 경험을 했습니다. 비록 광야는 힘들고 문제가 많은 곳이지만, 광야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며 보호해주셨습니다. 밤에는 중동의 한기로부터 보호해주시기 위해서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고, 낮에는 시원하게 햇빛을 막아주시는 구름기둥으로 임하여 주셨습니다.

 

또 그들이 광야에서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하겠습니까? 그래서 먹을 양식인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셨고 메추라기도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 광야인데, 그 황량한 광야에서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아주 생생히 경험하며 40년 동안이나 살 수 있었습니다. 사실 광야에서는 40년이 아니라, 4년도 아니고 4일도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황량한 곳인데, 거기서 무려 40년을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24-26)

 

예수님은 세 번이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라고 물으십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과 같이,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비전’(vision)입니다. 안경 맞추는 데 가보시면 Vision Center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땅만 보고 이 땅의 것에만 집착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유한한 인생만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을 보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어려움과 문제가 있는 그곳이 바로 우리의 광야입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살다가 어려움이 올 때가 있는데, 그곳이 우리의 광야이고 광야는 꼭 나쁜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그 광야 가운데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광야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광야에서 생생하게 주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삶 속에서 어떤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면, 그 동안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 조금 소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광야로 끌고 오셔서 제발 내 말을 좀 들어봐라.’라고 하신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편안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광야로 나가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고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뜨겁게 만나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광야생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그 자리가 저주나 괴로움의 자리가 아니라 축복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메시지

 

세례 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몰려 나왔습니다. 메시지가 없는 소리는 단지 소음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즉 세례 요한의 소리에는 확실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외친 메시지를 붙잡아야 된다.’라는 뜻으로 너희가 광야에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물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과거에 세례 요한에게 나아온 무리들이나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이 외쳤던 메시지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이 무슨 메시지를 전했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3가지를 전했습니다.

 

1)  내가 서 있는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 사람은 그 빛을 증언하러 왔으니, 자기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1:6-7, )

 

세례 요한이 증언한 대로, 어두움 가운데 참 빛으로서 참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1:11). 세례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1:26-27).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위치를 정확히 지켰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어라한 게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선포했습니다.

 

광야에서의 축복은 예수님을 확실하게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의 축복은 예수님을 붙잡고, 의지하며,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십니다(14:6). 예수님은 어두움과 저주와 심판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분으로서,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아버지께로 나아올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무덤 가운데 머물러 계시지 않고 살아나셔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생명이시기 때문에,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 아끼지 않고 순교하면서까지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과 이야기하다가 얼마 전 <바울, 그리스도의 사도>(Paul, Apostle of Christ)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저도 2년 전쯤 봤는데, 그분은 제가 잊어버리고 있던 마지막 부분의 바울의 대사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의심을 갖고 있는 것을 위해 죽지 않는다.” 가짜를 위해 죽을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사도 바울은 죽기 얼마 전에 그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죽는 것은 진리이신 주님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기꺼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가짜였다면 누가 목숨을 버리겠습니까? 진짜이기 때문에 순교하면서까지 모든 것을 다 희생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그분을 예배합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다시 붙잡아야겠습니다.

 

우리 중에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는 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그분을 믿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믿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기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고 안 되는 것만 주님께 부탁하는 그런 믿음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그분을 믿는다면 우리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정말 주님을 믿고 있는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예가 뭔가 하면 바로 기도생활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전적으로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제대로 기도하지 않고 있다면 그게 무엇입니까? 주님을 안 믿고 있다는 겁니다. 나를 믿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기도한다면 정말 주님을 믿는 것, 기대는 것이 됩니다. 주님께 기댄다면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고, 주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다면 기도를 안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생활이 바뀌어야겠습니다. 기도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기대는 표시입니다. 특히 우리의 중보기도(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사랑의 표시입니다. 내가 어떻게 저 형제를, 저 자매를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겠습니까? 말로 사랑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를 위해 기도할 때 정말로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정말 믿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다 믿지만, 정말 예수님을 전적으로 기대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2)  내가 서 있는 광야에서 모든 주권을 예수님께 내어드리라

 

둘째로, 세례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는, 예수님을 믿는(기대는) 자라면 자신의 삶의 주권을 주님 앞에 내어드린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서 네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1:20) 하고 대답했습니다. 요한은 오직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만을 유일한 생명의 구원자로 믿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믿으면서 또 동시에 예수님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것이라도, 예수님보다 더 주인 된 어떤 것이라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1-2)

 

여기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모든 주권을 내어 드리라는 메시지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고 표현했습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오랫동안 다른 나라들의 지배를 받아온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시리아에게 망하고, 남 유다도 BC 587년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그러니까 700년 이상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나라를 다 빼앗기고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시리아, 이집트, 이제는 로마의 지배를 700년 이상 받으며 나라 없이 살아온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정말 갈급히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때 제발 그 보내주신다던 메시야를 보내주십시오.’라고 하는 메시야 대망 사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정말로 원했습니다. 그러한 영적 갈증을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요한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외치니까, 그들은 모두 광야로 몰려나간 겁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러한 영적 갈급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나의 왕이시며 나의 주인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한 신앙고백이 선포되는 자리가 예배의 자리입니다.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지난 주일에 예배를 한 곳도 있었지만 닫은 곳도 있었습니다. 가톨릭이나 불교도 닫았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당에서 모이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주는 괜찮지만, 그 다음 몇 주 동안 계속 그렇게 되고, 만약 몇 달 동안 그렇게 계속된다면, 사람들 마음속에 예배를 향한 갈급함이 생깁니다.

 

지금은 매일 새벽기도 있고, 수요예배 있고, 금요예배도 있고, 주일에도 몇 번씩 예배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예배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일이 있으면 안 나갑니다. 그런데 예배를 못 드리게 되면 사람이 다급해지고 갈급해집니다. 사실은 그런 일이 좀 필요합니다. 너무 흔해서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못 드리는 상황이 될 때 사람이 갈급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사태 때문에 막혀서 예배를 못 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제가 요즘 보면 그 동안 내가 제대로 안 했으니까 이제 제대로 해보자라고 하는데 눈이 안 보여서 성경을 못 읽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이제 좀 신앙생활을 해볼까 했는데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하여 예배당에 갈 수 없는 일이 생깁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면, 나중에는 정말로 못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라는 고백은 나는 생명이 아닙니다.”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십니다.”라는 고백은 예수님 없이는 제게 능력이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소망이십니다.”라는 고백은 예수님이 안 계시면 저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라는 고백은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라는 뜻과 함께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러한 고백을 하나님 앞에 드릴 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중 대표적인 구절이 바로 이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12:1-2, )

 

우리가 광야 같은 인생에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예수님 외에는 다른 것을 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혹시 내 삶에 예수님보다 더 높아진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세상의 흐름과 풍조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혹시 그렇게 이 세상을 따라가는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일 2:15-16, )

 

이 말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잡고, 그 말씀이 진리임을 고백하고, 자신의 삶에서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모든 욕심과 욕망과 음란과 탐욕과 교만을 다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점점 더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에 초점을 맞추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이 땅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긍휼과 사랑으로 그 땅을 덮어 주시며 그들의 삶을 돌보아주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4)

 

이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짓고 하나님 앞에 봉헌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은 이스라엘을 말하는 동시에, 지금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가리킵니다. 성도인 우리의 삶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악한 길에서 떠나 자기 삶의 주인 되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은 대신 회개가 중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온 세계를 위해 대신 회개하며 중보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세례 요한이 외쳤던 메시지가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세상도 함께 믿어서는 안 되고, 내가 주인으로 삼았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따라야 합니다.

 

 

3)  내가 서 있는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라

 

셋째로, 세례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1:3-4)

 

광야로 몰려든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보았고, 그가 선포하는 메시지를 들었으며, 그의 삶도 보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삶은 언제나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광야로 나갔고, 거기서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27-28)

 

이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세례 요한은 약속된 메시야의 오심을 선포한 마지막 선지자이자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하나님 나라가 위대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언제 임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임했습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면, 세례 요한은 위대한 인생을 살았지만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에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사건을 경험한 위대한 영적 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이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 나라에 직접 참여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초림하신 예수님의 공생애를 준비했다면, 우리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며, 언젠가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듯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날과 때는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지만, 우리에게는 회개의 세례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면서 제자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28:19-20).

 

 

[나가는 말]

 

우리는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한 세례 요한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겠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외친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고, 모든 주도권을 예수님께 드리며, 그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지금 삶 속에서 무엇에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인 광야에서, 자신의 삶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어디에 관심을 둔 채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고 있습니까?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을 보고 있습니까?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사람을 보고 있습니까?

 

지금 세상은 참으로 복잡하고 흉흉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인생의 한 순간이라도 중요하지 않은 일에 허비하거나, 세상의 허망한 일만 보면서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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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아사: 하나님을 놓고 대신 붙잡을 것은 없다 (대하 16:1-14) - 누가 나의 왕인가 4 (2/1/23) admin_p 2023.02.02 234
361 여로보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열심ㅁ을 버리라 (왕상 12:25-33) - 누가 나의 왕인가 3 (1/25/23) admin_p 2023.01.26 202
360 솔로몬: 세상에 보험 들지 말라 (왕상 11:1-11) - <누가 나의 왕인가> 2 (1/11/23) admin_p 2023.01.12 380
359 사울: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무너뜨려라 (삼상 15:7-23) - 누가 나의 왕인가? 1 (1/4/23) admin_p 2023.01.05 543
358 어린양의 혼인 잔치 (계 19:1-10) - 송년 메시지/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27 (12/31/22) admin_p 2023.01.01 247
357 거짓 교사를 분별하라 (유 1:1-10)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26 (12/14/22) admin_p 2022.12.15 149
356 축복의 정석 (요삼 1:1-8)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25 (12/7/22) admin_p 2022.12.08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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