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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0일 수요예배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2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야고보서 413~17)

 

1.   영생이 있느냐는 중대한 질문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시리즈의 두 번째 시간으로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14)라는 두 번째 영적 질문을 던지십니다. 하나님의 이 질문은 너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느냐?”라는 뜻입니다.

 

우리 각자는 이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오셔서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느냐?”라고 물으시면 , 저는 이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답을 해야 하는데, 바로 그 이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에서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돈도 중요하고, 성공도 중요하고, 높은 자리도 중요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최고로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얻었는데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돈을 엄청나게 벌었는데 바로 죽어버리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엄청나게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데 바로 즉사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8:34-37, )

 

처음에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몇 년 동안은 디트로이트 교회의 청소년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한 해는 그 교회의 청소년 전도사님이 학생들을 그룹으로 나누어서 각 그룹마다 크리스천 복음성가를 가지고 뭔가를 하게 했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때 노래들 중 하나가 “Lose My Soul”이라는 노래였습니다. 토비 맥(Tobi Mac)이라는 크리스천 가수가 부른 곡인데, “내가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는 천하를 얻고 생명을 얻는 것이 싫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넉넉지 못하게 삽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병들어 약하게 삽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의 높은 위치를 가지고 살고, 어떤 사람은 아주 낮은 위치에서 삽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살고, 어떤 사람은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아서 별 지식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요즘 사회에서 많이 문제가 되는 것이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갈등이고, 또 인종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심지어 성간의 갈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가장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떵떵거리며 살아도,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아무리 성공해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그러고 나서 지옥에 떨어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옥으로 가는 인생이 과연 성공한 인생이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4)

 

이렇듯,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많이 살아야 80, 90년인데, 또는 100년 이상 산다고 해도,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주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 인생은 아주 잠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잠깐 보이다가 금방 없어지는 안개와도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안개가 끼었을 때 보면 자욱하고 넓게 퍼져 있습니다. 사방 몇 블록을 덮는 안개를 병에 담는다면 겨우 반도 안 차는 양의 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굉장한 것 같은데 별 게 아닌 것이 안개입니다. 굉장히 보이지만 별 것이 아닌 게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없어진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바로 죽음을 뜻합니다. 야고보는 우리 인생에서 아무리 자랑하고 그래보아야 안개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안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여러 사도들처럼 목이 잘려 죽든, 베스도와 드루실라처럼 폼페이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불에 타 죽든, 자동차 사고로 죽든, 비행기 사고로 죽든, 테러 공격으로 죽든, 암에 걸려 죽든, 아니면 편안하게 침상에서 자는 것처럼 죽든, 사람이라면 반드시 죽습니다. 우리도 다 죽습니다.

 

그런데 죽음으로 우리 삶이 끝나는 것입니까? 성경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알려줍니다. 죽음으로써 우리 생명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당연히 알고 있지만, 정말 기억하며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만약 죽고 그냥 끝나는 것이라면 이 땅에서 마음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끝나지 뭐가 또 있느냐?’라고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며 살아갑니다. 증명될 수 없는 것인데도 죽으면 다 끝난다고 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안개같이 사라지는 인생이지만 사라져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고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27)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심판이 있고 안 믿는 사람에게도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심판이라기보다는 판단입니다. ‘무슨 상을 줄까에 대한 판단입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심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만 부활하는 게 아니라 안 믿는 사람들도 다 부활한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고 바울도 이야기했습니다(24:15).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5:29, )

 

이것인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선한 일은 착한 일을 조금 하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은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악한 일이라는 것은 테러리스트 같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주인 되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의인도 악인도 모두 다 부활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생명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스스로 택하여 가는 것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지 않는 곳인데,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며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 없이 산 인생이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안 계신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 선택하여 그리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게 아닙니다.

 

 

2.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 오신 예수님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이기에 죽을 수밖에 없고, 또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까? 인간은 원래 창조될 때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로 모든 인간이 죄를 범했습니다. 모두 죄에 빠져 각기 제 갈 길로 갔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질문합니다. ‘아니, 어떻게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그 후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헬라적 사고입니다. 히브리적 사고로는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면 그 후로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히브리적 사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3)

 

여기 모든 사람에는 우리 각자도 다 포함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외 없이 죄인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착하게 살았을 수 있고 조금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살고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똑같이 죄인입니다. 우리가 밑에서는 서로 키를 재며 누가 크다 작다 할 수 있지만,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똑같습니다. 작기가 다 똑같습니다. 하나님 없이 내가 더 의인이다 아니다 다투지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다 모자랍니다. 왜냐하면 죄인의 본질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죄인은 무슨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이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래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이 마음대로 살던 사람들입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3:1-12, )

 

인간을 그냥 가만히 두면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정말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기가 의롭다고 하며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니, 아담이 죄를 지었다고 왜 우리가 다 죄인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것과 상관없이 그럼 죄를 하나도 안 짓느냐?’라고 하면 당연히 죄를 안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를 지어서 우리가 죄인이 된 게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죄가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죄는 죄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심판을 불러옵니다.

 

요즘 가끔 그런 사람들에 대해 뉴스에 나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회사 공금을 횡령한 죄로 잡혀서 재판을 넘겨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재판을 받는데 판사가 보니까 그 사람의 집안 사정이 참 딱하고 불쌍하다고 하며 판사가 무죄라고 그냥 풀어준다면, 그것이 제대로 된 공정한 재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성경을 읽어보면 율법서에서 하나님이 재판을 공정하게 하라고 하시면서, 부자라고 더 유리하게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동시에 가난하다고 또 유리하게 해줘도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불쌍한 것은 불쌍한 것이지만, 죄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야 공의로운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불쌍하다고 무조건 봐주는 것은 결코 공정한 판결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심판을 받습니까?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0-21, 23)

 

죄의 열매, 죄의 삯, 즉 죄의 결과는 사망(죽음)입니다. 죄를 범한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만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영적인 죽음, 영원한 죽음, 영원한 형벌이 있다고 성경은 말해줍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반드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영원히 죽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불편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 후에 영원한 형벌 가운데 놓인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 중에서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 요즘 교회에서 안 좋은 모습들을 많이 보이니까 믿는 사람도 저런데, 심지어 목사도 저런데, 나는 예수 안 믿어도 이렇게 착하게 사니 저 사람들보다 낫다. 그러니 왜 교회에 가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왜 죄인인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저 안 좋은 사람들이나 악한 모습들, 특히 독재자들이나 테러리스트들과 비교해서 나는 굉장히 착하고 저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왜 자기의 모든 것을 다해 헌신한 순교자들이나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들과는 비교하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과 비교해도 자기가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그런 분들도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보다 못한 삶을 살면서도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태도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죽음 후에 영원한 형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3)

 

13절의 첫 단어는 들으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너희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마치 자기가 시간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간에 어떤 도시에 가서 어떤 일을 하겠다고 하는 모든 계획의 주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장래가 자기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죄라고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14)라고 말씀합니다. 시간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우리가 계획은 할 수 있지만, 그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미래는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5)

 

정말 그렇습니다. 이것저것을 하겠지만 주님의 뜻이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겸손히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장 첫 번째 책인 창세기 1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시간도 창조하셨고, 시간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나도 창조하셨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내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내 시간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16-17)

 

여기서 악한 것은 장래가 자기에게 달렸다고 자신만만한 것이고, “이란 장래가 하나님께 달렸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노력하면서 일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일도, 가정의 일도, 교회 일도, 무계획이 아니라 계획을 잘 세우고 준비를 잘하며 철저히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모든 계획과 과정과 결과를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 내가 알아서 계획을 세우고 나아가면 허망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혹시 세상 기준으로는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을 잃어버린 자가 되고 맙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에서 한 부자가 나오는데, 그는 자기 밭에 소출이 아주 풍성해지니까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며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립니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12:18-21, )

 

어리석은 인간은 자기가 자기 생명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자기가 자기 인생에서 마음대로 알아서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실제로 자기가 좋다고 생각되는 대로 모든 결정을 내리며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질문을 하십니다. “오늘 밤에 내가 네 생명을 취하면 네 인생은 어떻게 되겠느냐? 지금까지 네가 세운 계획은 다 어떻게 되겠느냐?”

 

바로 이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도 하시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며 살아갑니다. 직장생활이나 사업이나 학업, 취미생활, 가정생활 등등 많은 것들을 하며 삽니다. 또 언제 어디로 가서 휴가를 하고, 돈은 어디에 투자하고 등등,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웁니다. 바로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너는 많은 계획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데 오늘 밤 내가 네 생명을 취하면 네가 계획한 그 모든 것은 어떻게 되겠느냐?”

 

안개같이 사라져서 영원한 형벌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인생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날 때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 소망 없이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 소망을 얻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성경 전체에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구원해주셨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구원에 있어서 내가 스스로 구원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어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바로 내가 죽었어야 할 십자가에서 대신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써 내 죗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성경의 진리이며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면제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의 심판을 모두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길, 절망의 길로 갔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이미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불평이나 원망을 할 수가 없고, 사실은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크리스천들입니다.

 

 

3.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미 다 이루신 구원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그분의 의가 나의 의가 되고, 영생의 길이 나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다 해놓으셨지만 그것을 내가 선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내 것이 아니라고 거부하면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즉 예수님이 내 죄를 용서해주시는 구세주이심을 믿고,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내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영의 구원, 의롭다 함을 받았고, 지금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받는 구원)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죽어서 세상을 떠나든지 아니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든지, 그때가 되면 우리의 몸까지 변화되며 감격의 구원(받을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분들에게 바로 이 복음을 전하여 그분들도 구원을 받고 우리와 함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요한계시록 7장 큐티를 했는데, 거기 보면 셀 수 없는 무리가 모든 민족과 언어와 족속에서 다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주님을 모르는 저분들도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전도도 하고 선교도 나가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몇 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몇 개월밖에 더 못 산다니까 그 인생이 얼마나 긴급합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사실 우리는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모두가 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인생은 짧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오늘 그런 긴급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바로 지금 해야 합니다. 그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여 우리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섬겨야 합니다. ‘오늘은 좀 피곤하니까 나중에 해야지라고 할 때 그 나중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목장모임을 할 때도 VIP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분들을 초청합니다. VIP가 참석하지 않은 모임은 실패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게 진짜 실패라는 말은 아니고,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삶을 나누고 기도해주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런데 계속 우리끼리만 모이고 있고 전혀 목장에 VIP가 오지 않는다면 거기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의식과 긴급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가? 그 중에 정말로 꼭 필요한 게 얼마나 되고, 하면 좋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닌 일이 얼마나 되고, 또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얼마나 됩니까? 대개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해도 괜찮지만 꼭 할 필요는 없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며 살고 있습니다. 간혹 가다가는 하지 말아야 할 일에 굉장한 에너지와 시간을 쓰기도 합니다.

 

물론 크리스천들이 죄를 짓는 데 최선을 다하며 살지는 않겠지만, 하면 좋으나 꼭 해야 되는 것은 아닌 일에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디 놀러가는 일, 누구 만나는 일, 좋은 음식 먹는 일 등에는 큰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씁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다 하면 좋은 일들인데, 그런 것만 하다가 정말로 해야 할 일, 가장 중요한 일은 계속 미루다가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면 좋지만 꼭 필요한 일은 아닌 것만 하다가, 꼭 해야 할 일인 말씀묵상을 놓치고 기도를 놓치고 예배를 놓치고 안 믿는 분들 전도를 놓친다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우리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는 뭘 하다 왔느냐?’라고 하시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삶의 우선순위를 잘 세우고 생명이 걸린 일에 먼저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생명이 걸린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어 천국에 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여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으십니까? 이 진리를 정말 믿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답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생명이 걸린 일에 먼저 최선을 다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는 것이 목적입니까? 만약 그것이 정말 목적이라면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즉시 바로 죽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땅에서 아직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뭘 하라는 뜻입니까? 바로 저 죽어가는 사람들, 영원한 멸망의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해줄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먼저는 우리가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구원해주신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번 주일이 추수감사주일이고 다음 목요일이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에게 열매를 많이 주셔서 감사한 것도 있지만, 사실은 우리를 구원해주셨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예수님 한 분만으로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기 원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하면 감사를 표현하는 행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내 시간을 드리고 내 물질을 드리고 내 에너지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주님께 드리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도 구원을 받기를 그토록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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