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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E2edA5CCov0?t=1594

 

 

2020715일 수요예배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1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

(고린도전서 126~29)

 

오늘부터 새로운 말씀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원래 수요예배 때는 좋은 책 한 권을 정해서 그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봤는데,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주일에는 계속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라는 주제로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통해 문제 해결 방식을 살펴보고, 이제 수요일에는 책을 정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이전부터 열두 사도에 대한 말씀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최근에 한국의 유명한 목사님들 중 한 분인 이동원 목사님이 <복음으로 세상을 변혁한 열두 사도 이야기>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그래서 그 책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앞으로 수요예배 때 열두 사도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   열두 사도에 대한 이해

 

예수님이 열두 사도를 부르신 것은 한마디로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특별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범한 우리 모두가 품어야 할 꿈이 바로 이 열두 사도의 비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처음 사도들의 모습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존재가 왜 중요했습니까?

 

1)  대표적인 사도들

 

열두 명이라는 숫자는 아무렇게나 나온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숫자입니다. 열두 명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후 죽어서 빠졌을 때, 그들은 열한 명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한 사람을 다시 보충했습니다(1).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제비를 뽑아 선택했는데, 그때 뽑힌 제자가 맛디아입니다. 이렇게 보충해서 다시 열두 명으로 만든 것을 볼 때, 12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라는 숫자는 신약에 와서 예수님에 의해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도 열두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일종의 대표성을 갖는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두 명의 사도는 반드시 그들 열두 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남자였고, 열두 명 중에 여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문화적 상황에서 열두 명 중에 없었던 것이지, 복음서들을 보면 열두 제자와 함께 많은 여자 제자들이 있었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8:1-3)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를 비롯하여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가지고 제자들과 함께 사역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평범한 사람들

 

예수님은 결코 특별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고 뽑으신 것이 아닙니다. 열두 사도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더욱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신학자나 수도자나 웅변가나 뛰어난 지식을 가진 자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평범했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약점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모든 약점들을 잘 아시면서도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만약 주님께서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나 강하고 똑똑한 사람들만을 불러서 쓰셨다면, 우리는 도저히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그들의 모든 약점과 어리석음뿐 아니라 그들이 배신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주님은 가룟 유다의 음흉함과 그가 배반할 것을 다 아시고도 그를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열두 명의 제자들 모두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본능을 가졌고, 우리와 똑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지극히 평범한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3)  믿음의 성장이 느린 사람들

 

제자들은 믿음에 있어서 급속도로 발전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랜 과정을 거치며 믿음의 성장이 아주 느리게 진행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4:25)

 

이 말씀은 부활하신 날 엠마오로 가던 두 명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분인 줄 모르고 있던 그들에게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믿기는 믿는데 더디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성장이 더디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선택하신 제자들이 바로 그랬기 때문입니다.

 

 

4)  믿음이 퇴보했던 사람들

 

그들은 믿음이 아주 천천히 자라갔을 뿐 아니라, 때로는 거꾸로 퇴보했던 사람들입니다. 일시적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위기의 순간에 잠시나마 믿음을 포기했던 이야기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26:56)

 

가룟 유다만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결정적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렇게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런 배신자들을 다시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5)  다양한 배경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

 

제자들은 출신 배경도 서로 달랐고 정치적인 성향도 서로 달랐습니다. 요즘 교인들 중에는 한국으로 하면 여당 지지자도 있고 야당 지지자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미국으로는 공화당 지지자도 있고 민주당 지지자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는 셀롯인이 있었습니다. 영어로는 ‘zealot’이라 하는데 열심당원을 말하는데, 열심당원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던 로마에 대해 투쟁을 선언하고 저항하던 반정부 혁명 세력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시카리라고 해서 칼을 품에 넣고 다니다가 로마 사람이나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유대인을 만나면 푹 찌르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열두 명 중에는 로마의 앞잡이로 먹고살던 제자도 있었는데, 바로 세리 마태(또는 레위)입니다. 세리는 자기 민족에게 악랄하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는데, 정해진 액수보다 더 걷어서 자기 몫으로 챙기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를 제일 싫어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어부가 가장 많았지만, 그들 중에는 세리도 있고, 상인도 있고, 정치인도 있고, 혁명가도 있는 등, 아주 다양했습니다. 반면, 제자들을 출신지로 따져보면 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디입니까? 바로 갈릴리 지역입니다.

 

갈릴리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못지않게 천시하던 북방 지역입니다. 위에 있는 시리아(아람)나 레바논(두로, 시돈)이나 앗시리아 쪽에서 공격해 들어오면 언제나 북쪽부터 먼저 침략을 당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면서 국제결혼도 많았고, 이방인들과 섞인 문화로 인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경제적으로도 가난했던 곳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에서 사역하셨고, 거기서 많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이 대부분이고, 유다 지역의 최남단에서 부름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수도인 예루살렘 출신은 없었습니다. 한국 식으로 말하자면, 서울 강남은 물론 수도권 출신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시골인 갈릴리 지역에서 부르셨고, 거기서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6)  예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고 훈련된 사람들

 

이렇게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평범했고, 믿음의 성장이 느렸고, 오히려 믿음이 퇴보했고, 서로 다른 출신과 별 볼 일 없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고 훈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3년 반 정도의 공생애 중에 대부분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했던 시간은 1년 반 정도였습니다. 물론 2년 반에서 3년 가까이도 함께 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이 훈련을 통해 단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훈련의 과정 속에서도 여러 가지 시련을 거쳤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다듬어지고 준비된 것입니다.

 

그러나 훈련을 마쳤을 때도 사실 그들은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훈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불리하게 되시니까 다 도망가 버린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도 옛날로 돌아가겠다며 비참한 고백을 합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21:2-3)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도 옛날로 돌아가겠다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훈련이 과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내용은 이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6-28)

 

놀랍게도 인생의 패배자였던 사람들이 부활의 능력을 힘입고 성령을 받았을 때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선택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왜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형편없는 인간들을 제자로 선택하셨습니까?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29)

 

그렇습니다. 이 말씀처럼,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의 선택이고 은혜의 부르심이며, 그들이 받았던 훈련 역시 그들 자신의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없고 다만 주님께서 일하셨다고 고백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런 부족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제자는 헬라어로 마떼테스’(mathetes)라고 합니다. 그 뜻은 바로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열두 명의 제자에게 붙은 또 하나의 칭호가 있습니다. 바로 사도입니다. ‘사도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apostolos),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주님께 부르심을 받아 주님에게서 배우고, 마침내 주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았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세상에 나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처음 제자들에게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붙여 주었던 희한한 별명이 있습니다.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17:6)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와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다른 지역을 다니며 했던 일을 가리키면서 그곳 유대인들이 붙여 준 별명이 바로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나쁜 의미로 말한 것이지만, 사실은 좋은 의미도 됩니다. 영어 성경인 ESV는 이 말을 “These men who have turned the world upside down”(세상을 뒤집어놓은 사람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들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세상이 뒤집어졌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습이 사도들의 인생이었고, 그러한 모습은 이후의 제자들에게도 주님께서 여전히 기대하시는 모습입니다.

 

 

2.   예수님의 부르심의 과정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실 때 그들은 네 개의 단계를 거쳤습니다.

 

1)  회심으로의 부르심

 

첫 번째 부르심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부르심, 곧 죄를 떠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회심에의 부르심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첫 번 제자들이 바로 그런 회심을 경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들었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그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희생의 제물이 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다! 그를 믿음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바로 이것이 복음이며, 우리는 이 복음의 소식을 들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자가 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면, 무엇보다 죄 사함의 확신이 없이는 아무도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사역으로의 부르심

 

누가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이 그들을 사역으로 부르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를 부르시는 내용인데, 사실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을 만난 상태였습니다. 4장을 보면 예수님이 열병에 든 그의 장모를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안드레가 자기 형제 시몬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게바라는 별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와 다른 제자들은 여전히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누가복음 5(1)에서 다시 주님을 만납니다. 밤새 고기를 못 잡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은 후 자기를 죄인이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또한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뭍에 댄 뒤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5:10-11, 새번역)

 

베드로는 그물을 버려두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적 사역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열두 명의 제자는 이 두 번째 단계를 경험했습니다.

 

 

3)  사도로의 부르심

 

우리는 마태복음 10장이나 누가복음 6장에서 열두 제자의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따라오는 사람이 열두 명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전도를 위해 따로 세우셨던 70명의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들 가운데서 열두 명을 특별한 팀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6:12-13)

 

예수님은 열두 명을 부르시고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사도들은 초대교회의 핵심 리더들이고, 바로 이들을 기초로 초대교회를 세우시게 됩니다.

 

 

4)  순교로의 부르심

 

열두 명의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순교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물론 가룟 유다를 빼고 그의 자리에 들어온 맛디아도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열한 명은 모두 순교하는데, 순교하지 않은 한 사람은 바로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은 약 95세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살았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유배지인 밧모 섬에서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를 접하고 요한계시록을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는 순교를 안 했어도 살아 있는 순교자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예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환상과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마지막 천국의 모습을 보여 주시는데, 바로 이 천국은 열두 개의 보배로운 기초석 위에 세워진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그 열두 보석에는 누구의 이름이 있었습니까?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21:14)

 

또한 사도들은 천국의 기초석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20)

 

예수님은 모퉁잇돌이시고, 모퉁잇돌에 연결된 기초석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퉁잇돌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을 중심으로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 옆에 붙은 기초석의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의 사도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바로 그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주님의 교회는 이 열두 사도의 헌신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어느 날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함께 교회를 이룬 그 터 위에서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후대를 위해 그러한 기초석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편안하고 성공적으로 살 것인지, 신앙생활도 내가 은혜 충만하고 성령 충만하게 살겠다고 하면서 그냥 나에게서 끝난다면 참된 복의 근원의 삶이 아닙니다. 참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삶이 아닙니다. 나도 은혜와 성령과 능력이 충만하지만, 후대 사람들이 나를 통해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우리를 위한 기초석이 되었듯, 우리도 다른 형제자매들과 후손들을 위한 기초석이 되어 나아가는 놀라운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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