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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nWt7gkALQfs?t=1915

 

 

202071일 수요예배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15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 경험한 은혜

(다니엘 313~27)

 

[들어가는 말]

 

인생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그렇고 우리가 경험한 바로도 그렇고, 인생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우리 인생이 쉬워질 수가 있습니다. 인생이 힘들어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인생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는 온갖 어려움을 만나게 마련인데,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며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1978년에 처음 출간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아직도 가야할 길> 책이 있습니다. 저자인 스캇 펙(M. Scott Peck)은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전체적인 과정에 있다... 삶의 승패는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스캇 펙은 자기가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게 된 것이 사실은 자신의 고통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겪었던 정서적 장애가 그로 하여금 신경정신과 의사가 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고난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했고 사명을 발견하는 축복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고난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만이 고난을 변장된 축복으로 받아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피할 수 없는 고난을 환영하며, 고난이 주는 고통을 기꺼이 견뎌냅니다. 그리고 고난을 자신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기회로 만듭니다.

 

오늘 다니엘 3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지혜는 고난이 닥쳤을 때 빛을 발했습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에게도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것도 예상치 못할 때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리 고난에 대해 지혜롭게 반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마치 고난이 찾아올 것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지혜롭게 반응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지, 또 고난에 어떻게 반응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지 배우기 원합니다.

 

 

1.   고난에 대해 담대한 믿음으로 반응하라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포로로 끌려와서 살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큰 금 신상을 세워놓고 모든 관리들로 하여금 낙성 예식에 참여하여 그 금 신상 앞에 절하게 합니다.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5-6)

 

당시 왕들은 자신을 신격화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왕은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한 왕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닥칠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 닥친 고난에 대해 지혜롭게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고 왕에게 고발하자(12), 느부갓네살 왕은 분노하며 그들을 끌고 오라고 명령합니다(13). 그들이 오자 느부갓네살은 그들에게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게 사실이냐고 물은 다음,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고 하면서 말합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5)

 

지금이라도 절을 하면 살려 주겠지만 계속 절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당연히 절한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정말로 두려운 이 상황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한 번만 눈 딱 감고 금 신상 앞에 절하면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딱 한 번만 절한 다음에 나가서 자신들의 하나님을 계속 섬기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바벨론에서 좋은 위치를 계속 지키며 신앙생활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뭐라고 대답합니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6-17)

 

이것이 고난 앞에서 하나님만 신뢰하며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는 믿음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자기들을 능히 건져내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고백이며 담대한 믿음의 선언입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러한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렇게 담대해질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담대하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진정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강해집니다. 하나님을 알 때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았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을 때 다니엘과 함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 즉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과 포도주를 먹지 않기도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대신 채식을 하며 물만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열흘 후에 보니까 그들의 얼굴이 다른 소년들보다 더 나았던 것입니다(1:15).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따라 역사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믿음에 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지식을 주시고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셔서 왕을 모시게 됩니다(1:17). 또 그들의 지혜가 어떤 마술사나 주술가보다 10배나 나은 줄을 왕도 알게 됩니다(1:19-20).

 

그들의 용기는 하나님을 체험하여 아는 사람의 용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어떻게 역사해주셨는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상황이 어려울수록 이전에 하나님을 체험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용기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2)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이 담대하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능력을 알고 기도의 응답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무슨 꿈인지 기억을 못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모든 마술사, 주술가, 점쟁이, 점성가들을 불러 자기가 꾼 꿈을 알아내고 해석하라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합니다. 술사들은 꿈을 알려주면 해석하겠다고 하지만, 느부갓네살은 자기가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면서 그것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며 꿈이 뭔지도 말하고 그 해석도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때 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임금님께서 아시고자 하시는 그 일을 임금님께 알려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일찍이 그 어떤 위대한 왕이나 통치자도 마술사나 주술가나 점성가들에게, 이와 같은 일을 물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물으신 것은 너무 어려워서, 육체를 가진 사람과 함께 살지 않는 신들이라면 몰라도, 아무도 그 일을 임금님께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2:10-11, )

 

무슨 말입니까? 왕의 꿈이 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은 분노하며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합니다(2:12). 그 소식을 들은 다니엘은 자기에게 기한을 주면 왕의 꿈을 해몽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 다음에 다니엘은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고, 그 친구들에게 말하였다. ‘너희와 나는 다른 바빌론의 지혜자들과 함께 죽지 않도록, 하늘의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이 비밀을 알게 해주시기를 간구하자.’” (2:17-18, )

 

다니엘의 요청을 받은 세 친구는 합심해서 기도했고, 그들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밤에 은밀한 것을 다니엘에게 보여주셨습니다(2:19). 다니엘이 왕의 꿈을 알아내고 해석해주자,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고(2:47), 다니엘을 높여서 바벨론의 온 도를 다스리도록 하며(2:48), 다니엘의 세 친구도 다니엘의 요청에 따라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합니다(2:49).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입니다. 문제가 생겼는데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참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더 안타까운 사람은, 어려움이 올 때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정작 자기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 역시 참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장 불행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려움이 생길 때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바울이 교회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그들에게도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할 때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18:19, )

 

목장에서 기도제목을 내고 합심해서 기도할 때, 또 중보기도실에 기도카드를 내고 함께 기도할 때, 놀라운 기도 응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담대하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두려워할 대상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9:10)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정말로 강한 사람이고, 지혜 있는 사람이 참으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지만, 주님을 의지하면 안전하다.” (29:25, )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다른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순위에 둔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것을 말합니다(honor, respect).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담대해집니다.

 

 

4)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담대하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고난이 닥쳤을 때 믿음으로 반응했고, 또한 사랑으로 반응했습니다. 이것이 더욱 감동적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18)

 

그들은 하나님이 풀무불 속에서 구원해주지 않으시더라도, 다시 말해 놀라운 기적으로 자기들을 살려주지 않으시더라도, 바벨론의 신들을 섬기거나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말합니까? 하나님을 진짜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한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일 4:18, )

 

사랑은 부드러운 것 같지만, 사실 사랑만큼 강한 것이 없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그들에게 닥친 고난을 통한 두려움을 내어 쫓았습니다.

 

우리도 힘든 순간이 닥치면 두려움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이 강렬해지면 두려움은 쫓겨나고 사라집니다. 어려울수록 더 기도하고, 더 말씀을 묵상하고, 더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에 염려와 불안이 있을 자리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온전히 사랑할 수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정말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바벨론에서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을 향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했을 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켜주지 않으심으로 풀무 불에 타서 죽임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자신들의 생명을 여기서 구해주시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 그대로 죽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거기에도 분명히 선하신 주님의 뜻이 있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죽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신뢰할 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심지어 생명까지 맡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는 쉽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고난 후에 예비하신 축복을 못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심합니다.

 

초대교회 교부인 성 이그나티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깊은 행복을 원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정말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전 존재를, 생명까지도 맡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할 제목을 찾아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2.   고난에 대해 거룩으로 반응하라

 

고난의 신비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을 안 주실 것 같은데, 하나님은 반대로 하십니다. 오히려 고난을 경험하게 하시는데, 그것도 극렬한 풀무불 속으로 던져 넣으십니다.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19-2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말을 들은 느부갓네살은 엄청나게 분노하여 화덕을 보통 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여 세 사람을 거기 던져 넣으라고 명령합니다. 풀무 불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들고 불 속으로 던져 넣는 사람들까지 다 태워 죽일 정도였습니다(22).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사람, 더욱 귀하게 쓰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난의 풀무 불에 들어가게 하신 사람을 부르셔서 그 길을 형통하게 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먼저 고난의 풀무 불에 집어넣으십니다. 그 뜨거운 불 속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부드럽게 하시고, 성숙하게 하십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그토록 신뢰하며 사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풀무 불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이제는 다 끝난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살아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라, 바로 이 고난의 한 가운데 주님의 기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4-25)

 

분명히 풀무 불 속에 들어간 것은 세 사람이었는데, 느부갓네살이 보니까 한 사람이 더 있는 겁니다. ‘신들의 아들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세 사람을 보호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갑자기 북극의 찬바람이 불게 하셔서 풀무 불을 끄신 게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세 사람을 풀무 불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토네이도가 불어서 세 사람을 데리고 다른 데 떨어뜨려 피하게 하신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극렬한 풀무 불 속에서 함께 하시며 보호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엄청난 은혜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극렬한 풀무 불을 통과하고 계십니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삶이 꼬이고 힘들어졌습니까?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고통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나의 이 고통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를 불로부터 보호하고 계십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뭔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도와주실 것입니다. 고난의 풀무를 통과하고 있는 분들에게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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