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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16 수요예배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14

믿음으로 나아가다 불신으로 끝난 아사

(역대하 14 1-5, 16 7-10)


 


1.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아사

 

다윗과 솔로몬은 각각 40년 동안 왕으로 다스렸는데, 유다와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다스린 왕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르호보암부터 남 유다 19명의 왕들 중 40년 이상 왕위에 있었던 왕들은 단 4명이고, 여로보암부터 북 이스라엘 19명의 왕들 중에는 단 1명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사는 그 흔치 않는 왕들 중 한 명으로서, 41년을 다스렸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을 제외하고,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뉜 후 5명 밖에 없는 중의 한 명입니다. 이 아사는 지난주에 살펴본 아비야의 아들로서, 아비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 (14:1)

 

아비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상대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후 악행을 저지르다 3년 만에 죽습니다. 그런데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사는 무려 41년이나 왕으로 다스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왕상 15:9-10)

 

성경은 아사가 41년 동안 다스렸다고 언급한 후 바로 그의 어머니가 마아가임을 밝힙니다. 그런데 아버지 아비야의 어머니 역시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라고 되어 있습니다(왕상 15:2). 이것은 ‘어머니’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옘’이 할머니를 지칭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일찍 죽고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아사에게 할머니 마아가가 거의 어머니의 역할을 하며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할머니는 선한 영향력이 아니라 악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마아가는 아세라 신을 섬기는 것을 온 나라에 퍼뜨린 장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영적으로 힘든 환경에서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사 왕은 왕이 된 초기부터 결심하고 하나님의 길을 가기로 작정합니다(14:2-5). 이 점에 대해 열왕기서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줍니다.

 

“아사는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그는 성전 남창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고, 조상이 만든 모든 우상을 없애 버렸다. 그리고 그는, 자기 할머니 마아가가 아세라를 섬기는 혐오스러운 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자기의 할머니를 왕 대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아사는, 할머니가 만든 혐오스러운 상을 토막 내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왕상 15:11-13, 새)

 

아사는 솔로몬 말년에 시작되어 그 후 계속 행해지던 우상 숭배와 이방인의 악한 풍습들을 완전히 없앴습니다. 심지어 할머니 마아가가 만든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도 파괴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 태후 마아가를 폐위시키면서까지 우상을 없앴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아사 왕의 개혁을 향한 결심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약한 부분이 자기 가족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아사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마 10:35-37)

 

이것은 부모나 자식과 불화하고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헌신은 가장 가까운 집안 식구로부터도 박해와 외면을 당하는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날 한국에도 많았고 지금도 있으며, 이슬람권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결국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2.   믿음의 사람에게 주신 승리

 

바른 일을 행한 아사에게 하나님은 귀한 복을 내려주시는데, 먼저 평안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14:6)

 

유다는 지정학적으로 볼 때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기에 딱 좋은 위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확실히 의지할 때 평안을 주셨습니다. 내가 뭘 잘해서, 내가 착해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평안을 누리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아사 왕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14:7)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이 평안을 주셨다고 해서 그냥 가만히 있던 것이 아닙니다. 아사는 백성들을 격려하여 성읍들을 요새화시킵니다. 그리고 58만의 대군을 양성하여 국방을 튼튼히 합니다.

 

“아사의 군대는 유다 중에서 큰 방패와 창을 잡는 자가 삼십만 명이요 베냐민 중에서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이십팔만 명이라 그들은 다 큰 용사였더라” (14:8)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빠져나가지 않고 충분히 우리의 삶에 흐르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준비와 노력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준비와 노력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 그것을 받는 그릇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고 게으르고 무책임한 태도로 나아가서는 안 되고, 은혜를 받아 누릴 그릇을 늘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기로 작정한 것을 시험하기라도 하듯, 구스 왕 세라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해 옵니다.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 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14:9)

 

말이 100만이지, 이것은 정말 엄청난 숫자입니다. 작은 나라인 유다로서는 싸울 엄두도 못 낼 정도의 엄청난 군대인데,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우상 숭배에 익숙한 국민들의 원망을 무릅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개혁을 실행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전쟁이니, 백성들이 뭐라고 했겠습니까? “우리가 왕의 말을 들어서 우상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니까 돌아오는 게 이런 거냐?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택하니까 신들이 노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

 

이것은 실제로 주님의 뜻대로 나아가고자 애쓰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초라하거나 재앙일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느 정도 평안을 누리다가도 갑자기 엄청난 대군과도 같은 시련이 몰려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영혼 구원하여 주님의 제자로 만들자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애쓰지만,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큰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교회이든 개인이든, 어려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일이 잘 풀리고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꼭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그런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 아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아사가 마주 나가서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전열을 갖추고” (14:10)

 

“아사가 마주 나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다를 침략하여 몰려오는 구스의 100만 대군과 싸우려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한 용기입니다. 58만의 병력을 준비해서 나갔지만, 적들은 훈련된 100만 대군입니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300대의 전차군단이 선봉에 서서 오기 때문에,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객관적으로는 절대 열세인 상황에서, 패배가 곧 자신과 병사들과 온 국민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이 상황에서 아사라고 왜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상황에서 아사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처럼 리더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두려워도 담대히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용기가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우리도 다 두려움이 있습니다.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정말 믿고 신뢰하면 두려운 상황 앞에서도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적은 수의 적도 무섭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엄청난 적 앞에서도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크기입니다.

 

이때 아사 왕은 군사 전략을 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아사의 기도를 보십시오. 이 기도의 내용을 보면, 정말 강렬한 기도입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14:11)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모든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만 걸고 매달립니다. 이런 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아사도 엄청난 적군을 보고 기가 질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것은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말입니다. 놀랍게도 아사의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의 손이 구스의 대군을 치십니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의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 (14:12-13)

 

어떻게 치셨는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하나님이 치시니까 구스 군대가 도망합니다. 그러자 아사의 군대는 그들을 추격하여 공격했고, 결국 구스 군대는 엄청난 전사자들을 남기고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추격한 아사 군대는 구스 군대의 보급 기지 역할을 했던 그랄 지역까지 다 휩쓸어, 엄청난 노략물까지 얻게 되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그랄 사면 모든 성읍 백성을 두렵게 하시니 무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치고 그 가운데에 있는 많은 물건을 노략하고, 또 짐승 지키는 천막을 치고 양과 낙타를 많이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14:14-15)

 

여기서 우리는 절망적일 때 리더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도 어려울수록 리더들이 함께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수요예배, 새벽기도의 자리를 리더들이 채우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무조건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아사처럼 마음과 행동이 하나님 중심으로 확실히 서 있는 사람의 기도에 파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행하는 사람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해주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리더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시 32:6)

 

 

3.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과 아사의 계속되는 개혁

 

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아사에게 하나님은 선지자 아사랴를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15:1-2)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주시는 타이밍은 기가 막힙니다. 아주 정확합니다. 지금 막 구스의 100만 대군을 무찔러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아사의 군대에게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뜨끔한 말씀을 주십니다. 이것은 승리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도움을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환난을 당해서야 하나님을 찾았는데,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의 고난의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오래 되었으나,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 그 때에 온 땅의 모든 주민이 크게 요란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하지 못하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 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고난으로 요란하게 하셨음이라” (15:3-6)

 

그러니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만 힘을 쓰라는 뜻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 (15:7)

 

아사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아사 왕은 놀랍게도 그 즉시 말씀에 순종합니다. 외부의 적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내부의 우상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단을 다시 세우는 일을 적극적으로 펼칩니다.

 

“아사가 이 말 곧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들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없애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도 없애고 또 여호와의 낭실 앞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고” (15:8)

 

그러한 아사 왕 주위에 인재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또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를 모으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에서 나와서 저희 중에 머물러 사는 자들을 모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음이더라” (15:9)

 

이것을 보면 많은 백성들이, 심지어 북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사 왕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사 왕의 개혁과 그의 행동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다들 확신을 얻었습니다. “정말 이 아사 왕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구나.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지혜와 능력이 나올 수 없고 저렇게 올바른 일을 할 수가 없지. 대단하다. 나도 저분과 같이 일하고 싶다.”

 

이렇게 되어 아사는 자신을 돕는 사람들을 많이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라 전체에 거룩한 생기가 흐르며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무리가 큰 소리로 외치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여호와께 맹세하매,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15:11-15)

 

리더가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서니까 온 국민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고, 축제를 벌이며 거룩한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사방에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아사 왕 35년까지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가 계속됩니다.

 

 

4.   아사의 안타까운 추락

 

그렇게 순식간에 25년의 세월이 흐르는데, 안타깝게도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던 아사 왕이 말년에 이르러서는 순종의 삶에 실패하고 맙니다. 아사 왕 때에도 유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마침내 아사 왕 36년에 이스라엘의 바아사가 유다를 침공합니다.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16:1)

 

이것은 분명히 나라의 위기 상황이지만, 아사는 25년 전 이미 구스의 100만 대군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간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아사 왕이 믿음의 방법이 아니라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해결 방법을 택하게 됩니다.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다메섹에 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16:2-3)

 

아사는 아람의 벤하닷에게 막대한 뇌물을 보내며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막아달라고 합니다. 원래 아람은 이스라엘과 우방 사이였는데, 아사가 뇌물을 써서 아람이 이스라엘을 배신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사의 뇌물을 받은 아람 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의 성들을 공격했고, 이에 놀란 이스라엘 군대가 철수함으로써 유다는 일단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들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 공사를 그친지라” (16:4-5)

 

하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아사의 인간적인 술수는 일단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대적의 위협 앞에서 인간적인 술수나 이웃 나라의 군사력이 아닌, 오직 그들의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하나님을 찾던 아사는 이번만큼은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그분께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술수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던 아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성경은 자세한 정보를 주고 있지 않습니다. 아주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25년 동안의 오랜 평안의 기간이 그의 뜨거웠던 신앙을 느슨하게 한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또 모든 것이 잘되고 있으니까 교만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오랜만에 닥친 위기 앞에 그는 지극히 인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여기서 깨닫는 것은, 신앙의 길이라는 것은 한두 번 잘했다고, 아니 오랜 기간 동안 잘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충성하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하는 것도 깨닫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들려오는 유명 목사님들의 무너지는 소리가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잘하던 분들이 말년에 세습, 횡령, 배임, 성문제 등으로 무너집니다. 요즘은 심지어 어느 단체에서 가장 최악의 목사가 누구인지 설문조사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아사의 불신앙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즉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니가 아사에게 와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16:7-8)

 

하나니는 아사가 왕이 된 초기에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했을 때는 구스의 100만 군대도 그의 손에 붙이셨다는 것을 지적합니다(8). 그런데 이제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람의 도움을 끌어들임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장차 더 큰 화가 될 아람을 멸할 기회를 놓쳤다고 말합니다(7). 이 말 그대로, 나중에 아람은 유다를 공격하고 괴롭히게 됩니다. 이어서 하나니는 결정적으로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리더십의 비밀을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16:9)

 

사람들이 올바른 지도자를 찾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 즉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찾으십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만 그 마음이 100% 헌신된 사람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19:2)

 

사람도 자기만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서 사랑하고 결혼합니다. 사랑은 집중력입니다.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최고로 사랑해. 그 다음은 미스 김이고, 그 다음은 미스 리고, 그 다음은 미스 박이야.” 또 아내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최고로 사랑해. 그 다음은 미스터 김이고, 그 다음은 미스터 리고, 그 다음은 미스터 박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그러십니다. 하나님만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하는 사람을 오늘도 애타게 찾으시며, 그런 사람을 보실 때 능력을 베푸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사는 이것을 잊고 “망령되이”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게 행동하며 죄를 범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가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아사가 왕이 된 초기에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하고 그분을 전심으로 찾았을 때, 하나님은 유다에 평안을 주시고, 또 엄청난 대군이 몰려온 전쟁에서도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보다 작은 위기 앞에 온전한 믿음에서 떠나 하나님을 저버리자, 하나님도 그를 버려 계속된 전쟁으로 고난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먼저 버리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린 인생에게는 하나님이 보호막을 거두어가시고,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인생에 평화가 없어집니다. 아무리 강하고 세상에서 잘되고 돈을 많이 벌어도, 평생 전쟁 같이 살아갈 뿐입니다. 늘 염려와 불안이 그 삶을 지배하고, 삶의 전쟁을 치르느라 늘 지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아사는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불 같이 화를 낸다는 사실입니다.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16:10)

 

아사가 위기를 당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을 의지한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죄를 책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더 화를 내며 그 말씀을 전한 선견자를 감옥에 가두고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는 몇 사람들을 학대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죄를 범하는 것도 나쁘지만, 그것을 지적하고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더욱 나쁜 일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죄를 짓지 않는 사람과 죄를 짓는 사람의 차이가 아닙니다. 사실 의인도 죄를 짓고 악인도 죄를 짓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한 명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의인입니까? 책망 받을 때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입니다. 반면 악인은 하나님의 책망 앞에서 더욱 마음을 강퍅하게 하며 더 그릇된 길로 나갑니다.

 

이것이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차이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통곡했습니다. 회개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는 다윗도 보십시오. 그는 결코 죄를 짓지 않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이 책망하시자 그 즉시 깨닫고 회개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죄를 알려주십니다. 특히 설교를 통해 마음을 불편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혹시 설교를 통해 나 자신의 죄를 알려주십니까? 그럴 때 화내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아사처럼 괜히 하나니에게, 또 몇 백성들에게 분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제가 설교할 때 마음에 찔림을 받으신다고 저를 미워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회개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죄를 지적하시는 것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즉시 깨닫고 회개할 때 회복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아사에게 더욱더 안타까운 점은, 그가 재위 39년에 목숨이 위태로운 병이 들었을 때 그렇게 병이 중한데도 끝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16:12)

 

그렇게 2년 동안 심하게 앓다가 결국 그는 41년에 죽음을 맞습니다. 사람이 늙고 병이 들면 신앙이 없다가도 하나님을 찾는 것이 보통인데, 왕이 된 초기에는 그토록 하나님을 찾으며 살던 아사가 왜 말년이 이토록 하나님을 거부했는지 참으로 이상하고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 실패하고 강퍅해진 아사는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하나니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을 때 하나님에게 상처를 받았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상처를 주신 게 아니라 스스로 불순종으로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꾸짖었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섭섭한 감정을 품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를 지적하셔서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에게 삐지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집권 초기에 너무나 아름답고 순수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던 아사 왕은, 말년에 그 초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을 거부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해야겠습니다. 지금 잘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끝까지 잘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믿음의 경주는 100미터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 경주입니다. 첫사랑을 잊지 말고 끝까지 완주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시작도 아름답고 중간도 아름다우며 끝은 더욱 아름다운 신앙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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