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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3 수요예배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1

히스기야의 영적 개혁

(역대하 29 1~36)


 

1.   히스기야가 가장 먼저


리더의 자리에 앉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가 부실 경영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을 , 최고 경영자의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은 굉장히 어려운 자리에 오르는 겁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갚아야 빚이 있고 해결해야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상황입니다.


새로 유다의 왕이 히스기야가 바로 그런 처지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하스의 16년에 걸친 악정으로 너무나 쇠약해진 나라를 이어받았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성전을 폐쇄했던 아버지 아하스 왕의 악행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다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계속된 침공으로 수많은 군사들이 죽고 재물들을 빼앗겼습니다.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도움을 요청한 앗수르에게서도 배신을 당하여 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이 25세의 청년 히스기야가 물려받은 나라였습니다(1).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히스기야는 불평하지 않고 일어나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뛰어난 사람은 상황과 처지를 불평하지 않고, 지금 갖고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 최고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상황이 어렵다고 불평만 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고만 있다면, 스스로 명필이 아니라 없는 사람이라고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리더는 상황 때문에 불평하지 않습니다.


유다 역사상 최악의 왕들 하나인(Top 2) 아하스로부터 히스기야는 최악의 상태였던 나라를 물려받았지만, 그는 결코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믿음으로 일어나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곳부터 먼저 개혁을 해나갑니다. 많은 심각한 문제들 속에서도 그가 가장 먼저 손을 것은 성전의 정화와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그의 신실하고도 지혜로운 선택으로 인하여, 쓰러져 가던 유다는 회복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25세의 젊은 히스기야는 처음부터 벌써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인격이 갖추어져 있는 것을 봅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2)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든 왕들은 다윗과 비교가 되었는데, 그래서 가장 잘했다는 극찬이 바로 ‘다윗과 같았다’는 말입니다. 다윗이라고 해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다윗과 같았다는 말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윗이 그런 평가를 들을 있었던 것은 그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심한 (간음죄, 살인죄) 범했을 때에도, 나단이 찾아가 지적했을 그대로 회개하고 나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죄의 결과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윗처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내가 원하는 것에 하나님의 뜻을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히스기야가 다윗처럼 정직하게 행했다고 평가한 것은, 히스기야가 어릴 때부터 다윗과 같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성경은 히스기야가 어떻게 그렇게 믿음의 사람이 있었는지, 그토록 악한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이토록 훌륭한 왕이 나올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윗과 같았다고 간단히 설명합니다.


히스기야는 어릴 때부터 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찾고, 자기 아버지를 위해서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져도 불평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붙들면서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부터 뭔가 묵묵히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훌륭한 리더는 우선순위를 파악하며,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뭔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것부터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리더십의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제한된 시간과 자원으로 모든 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집중해서 해결할 곳을 제대로 파악하고 찾는 것이 리더십에서 중요합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고 보니 나라의 형편이 정말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라는 것을 그가 확실히 겁니다.


그가 왕이 되자마자 이렇게 것을 보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언젠가 왕이 텐데 왕이 되면 이렇게 것이다.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파악한 유다의 죄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나오고 예수님도 강조하셨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읽으면 읽을수록 관계로 모든 것이 풀어진다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잘못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악한 왕이었던 아버지 아하스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우상을 숭배한 것뿐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닫아버린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때라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용서받고 회복될 있는데,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어려울 어떻게 했습니까?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28:22)


고난이 인간을 반드시 성숙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없이 고난을 당하게 되면 악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하스가 보여줍니다. 아하스가 곤고할 더욱 하나님께 범죄했는데, 그것은 다른 나라들이 군사적으로 강한 이유가 그들의 때문이니까 자기들도 그들의 신에게 제사드리며 섬기면 그들처럼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원했던 대로 되었습니까?


자기를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신이 아하스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28:23)


하나님의 사람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이 절대 가만히 놔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우상숭배에서 걸음 나아가 성전의 기구들을 끌어다 버렸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까지 막아버려서 아무도 들어가게 했습니다(8:24). 그러니까 나라 전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아예 막아버린 것입니다.


이런 악한 짓을 했으니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있었겠습니까? 결국 그러한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것은 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왕이 되어 가장 먼저 부왕이 닫아 버렸던 성전 문을 열었습니다(3). 드디어 예배가 회복될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2.   성전 정화를 위한 레위인들의 소집


히스기야는 본격적으로 성전을 정화하기 위해 성전에서 사역을 담당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소집합니다(4). 영적 개혁의 중심은 역시 리더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직분을 맡았다는 것은 영적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레위 사람들을 부른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성전 정화를 해야 하는지 일깨워줍니다. 그런데 원래 이런 말을 누가 해야 합니까? 제사장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 지도자인 히스기야 왕이 합니다. 그러니 제사장들이 얼마나 당시 영적으로 타락해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히스기야는 비장한 결심이 담긴 연설을 하는데, 그의 말의 핵심은 우선 이제껏 성전이 더렵혀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 리더들이 스스로를 성결케 하고 성전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5)


아하스가 성전 문을 닫아 버린 동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도 무기력하지 자신들을 방치해 버렸습니다. 일이 없어지니까 타락한 세상과 차이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부터 먼저 회개하고 스스로 거룩하게 되돌려야만 했습니다. 거룩한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혁하려는 리더들 자신부터 개혁되어야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개혁해야 한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그게 되는가 하면, 개혁을 하는 사람부터 개혁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개혁을 하다 보니까 불완전한 개혁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개혁을 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성전 안의 더러운 것들을 청소해야 했습니다. 아하스가 통치하던 지난 16 동안 방치되었던 성전 내부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이제 레위 사람들이 스스로를 먼저 성결케 하고 성전을 깨끗이 청소해야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이 이처럼 더렵혀진 것이 조상들의 때문이라고 합니다(6-7). 조상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성전을 더렵히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중단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하여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을 히스기야는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예배를 폐한 유다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서, 대적들의 침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포로로 잡혀가는 끔찍한 결과가 일어났다고 합니다(8-9). 한때 다른 나라들의 조공을 받던 강력한 나라였는데, 이제는 유다가 다른 나라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하는 뼈아픈 자기 진단을 것입니다.


사실 히스기야가 이런 말을 것은 상당히 하기 어려운 고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들이 바로 히스기야 자신의 아버지인 아하스가 저지른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아버지의 죄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나 남의 탓을 하는 아니고 자기 자신도 거기에 포함시킵니다. 리렇게 공개적으로 아버지의 죄를 드러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정직한 자기 진단을 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잘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남에 대해서는 너무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지적을 하는데, 정작 자기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나 선후배가 관련되면 눈이 흐려지고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한국 뉴스만 봐도, 벌어지는 온갖 비리 사건들이 대부분 그런 겁니다. 힘들어도 정직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정의가 실천이 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그렇게 것은 아버지에게 전부 책임을 떠넘기고 불평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실은 자기 안에도 흐르고 있는 죄의 피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도 회개하며 주님께로 돌아가자고 하기 위함입니다. 회개하며 돌아오면 주님께서는 언제나 용서해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분임을 그는 믿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뼈아픈 과거의 실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과거에 연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워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마음이 내게 있노니” (10)


히스기야는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패역한 민족에게 임한 하나님의 진노를 떠나게 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리더의 결심이 정말 중요합니다. 사람은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하기 때문에, 악하고 어리석은 결심이 아니라 거룩하고 지혜로운 결심을 해야 합니다. 특히 리더가 사람 사람 눈치만 보고 갈피를 잡으면 곤란합니다. 같은 목회자나, 당회원, 위원장, 목자, 교사 모두 사람의 눈치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하고 지혜로운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바른 결심을 하겠습니까? 평소에 말씀과 묵상을 통해 준비하면 됩니다. 평소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준비가 되면 됩니다. 히스기야의 올바른 통치의 시작은 아버지가 악행을 저지르고 있을 관계를 세운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세운 확고한 결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어 개혁을 했습니다.


지금의 인생을 돌아보며 ‘내 인생은 이렇게 어렵냐?’라고 한탄할 때가 있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오늘 인생이 지금까지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모여진 결과입니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린 것들이 합쳐지면서 지금 인생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평하거나 남을 원망할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우리 모두 바로 지금 거룩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히스기야는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함께 실천에 옮기자고 초청합니다.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앞에 서서 수종 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11)


여기는 별로 산이 없지만 한국 같은 데는 동네 뒷산들이 많습니다. 동네 뒷산 정도는 얼마든지 혼자 산책하듯이 오를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와 같은 산은 절대로 혼자 오를 없습니다. 전문 산악인들이 열심히 훈련하고 팀이 같이 가고, 현지에서 고요한 셀파들과 같이 올라갑니다.


나라의 영적 개혁이라는 사명은 히스기야 혼자서는 결코 감당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그들의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유다의 영적 상태가 이렇게 처참하게 것은 악한 아하스의 책임이 크지만, 영적 리더인 당신들의 책임도 있다.”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라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상태를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성전을 정화하는 동참하라고 촉구합니다.


너희는 이제 게으르지 말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라고 너희를 택하셨다!” 여러분, 히스기야의 도전이 그들에게만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인 믿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이러한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너희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사명을 잊어버리고서, 나태하게 살고 섬기는 것도 적당하게 최소한만 하는 사이에, 교회가 이토록 영적으로 황폐하고 위기에 처했다. 사회가 어지럽다. 회개하자. 깨어나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너희를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유가 이런 아니지 않느냐? 일어나 다시 손을 잡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자. 교회가 영적으로 다시 회개하고 성령의 불이 붙을 있도록, 사회가 변화될 있도록 함께 힘을 합하자!”


 

3.   성전의 정화와 예배의 회복


히스기야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불은 전염성이 있어서, 열정적인 리더는 잠자던 사람들을 깨워 움직이게 합니다. 레위 사람들 가운데 14명의 리더들이 일어나서(12-14), 형제들을 모아 성전 정화를 시작합니다(15).


이들은 모든 더렵혀진 기물들을 깨끗하게 하고 황폐해진 성전 내부를 수리하며 청소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히스기야의 성전 정화에서 발견하는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에 시간과 과정이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한꺼번에 달라붙어서 아무 데다 마구 정화한 것이 아니라 순서와 법대로 했습니다.


첫째 초하루에 성결하게 하기를 시작하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첫째 십육 일에 이르러 마치고” (17)


성전을 정화하는 일이 1 1일에 시작해서 16일에 끝났으니까 모두 16일이 걸렸습니다. 첫 8일 동안은 성전 낭실, 입구까지 깨끗하게 하고, 다음 8 동안은 성전 내부를 성결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은 제사장들만 들어갈 있기 때문에 성전 내부 정화는 제사장들이 감당했습니다(16-19).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영적 개혁이라고 해서 함부로 하는 아닙니다. 악한 조상들이 하나님의 전을 황폐하게 하는 일은 무질서하게 함부로 했지만, 성전을 다시 정결하게 하는 일은 함부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하고,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해야 했습니다. 영적 개혁을 하고 성전을 깨끗하게 한다고 아무나 들어가면 됩니다. 제사장들만 들어갈 있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했습니다.


16 동안 더렵혀진 성전을 정화하는 데에는 적어도 16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차근차근 하나님의 법대로 모든 것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했기에, 무조건 밀어붙였던 것이 아닙니다. 더렵혀진 성전 기구들을 깨끗이 돌려놓을 , 무너져 있는 성전 안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더럽다고 불평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울면서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을 제대로 못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이렇게 되었구나.’ 하고 울면서 통회하며 회개하면서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영적 개혁입니다.


성전을 정화한 다음,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제사가 다시 행해집니다. 히스기야는 아침 일찍 일어나 귀인들과 리더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갑니다(20). 그리고 히스기야는 먼저 속죄제를 드립니다.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 일곱 마리와 숫염소 일곱 마리를 끌어다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삼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명령하여 여호와의 제단에 드리게 하니, 이에 수소를 잡으매 제사장들이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고 숫양들을 잡으매 피를 제단에 뿌리고 어린 양들을 잡으매 피를 제단에 뿌리고” (21-22)


속죄제는 고의성 없이 무지하여 범한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원래 속죄제는 드리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제물의 종류가 달랐습니다.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는 수송아지, 족장은 숫염소, 보통 사람은 암염소나 암양을 바치게 하셨는데, 그것은 계층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아버지 아하스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해 히스기야는 각각의 제물들을 7마리씩 바치는데(21), 이것은 그들의 죄가 너무나 컸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에 속죄제물로 드릴 숫염소들을 왕과 회중 앞으로 끌어오매 그들이 위에 안수하고, 제사장들이 잡아 피를 속죄제로 삼아 제단에 드려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 (23-24)


여기에 보면, 속죄 제물로 드릴 숫염소에 안수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죄를 짐승에 옮기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 대신 짐승이 흘리며 죽임당하는 것을 보면서 죄가 이토록 무섭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기는 것입니다. 속죄일 당일에 모든 사람은 하루 종일 금식했고, 해지기 전까지 모든 사람과 화해했습니다. 사람과 화해하지 않으면서 주님께 속죄제를 드리는 위선이라 여겼습니다.


속죄제를 드린 다음에는 번제를 드렸는데, 번제는 희생 제물 전체를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유일한 제사로서, 희생 제물 전체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사장이 항상 번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항상 하나님 앞에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번제가 드려지는 동안 레위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으며, 회중은 경배했다는 사실입니다.


왕이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전에 두어서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게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 레위 사람은 다윗의 악기를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서매, 히스기야가 명령하여 번제를 제단에 드릴새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다윗의 악기를 울리고, 회중이 경배하며 노래하는 자들은 노래하고 나팔 부는 자들은 나팔을 불어 번제를 마치기까지 이르니라” (25-28)


번제는 온전한 헌신과 찬양의 삶이 함께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때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합니다.


제사 드리기를 마치매 왕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엎드려 경배하니라.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29-30)


회개는 뼈를 깎는 것처럼 힘들고 어렵지만, 진정한 회개를 하고 나면 주님의 용서를 깊이 체험하게 되어 엄청난 기쁨이 몰려오게 됩니다. 말로 표현할 없을 정도의 감격과 기쁨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게 예배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예배 이런 감격과 기쁨을 체험하십니까? 만약 이런 감격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원인이 무엇입니까? 다른 있지 않습니다. 진짜 마음이 예배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드리며 예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경하러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을 드리며 예배해야 합니다.



제사를 마친 히스기야는 백성들에게 감사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합니다.

 

“이에 히스기야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제 스스로 몸을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하니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도 가져오니” (31절)

 

제대로 된 예배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제물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헌신의 표현입니다. 예배의 은혜는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받는 것만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받기만 하고 드릴 줄 모르는 사람은 예배자가 아니며, 예배의 감격과 기쁨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제물을 드리고 헌금을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히스기야가 액수나 분량을 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각자 알아서 가져왔는데, 그러고도 더 드리고 싶은 사람은 번제물까지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 돈이나 시간이나 재능으로 헌신할 때는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받은 은혜가 충만하여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의 권고에 따라 백성들이 즐겁게 드린 헌물의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32-33). 그래서 그 제물들을 처리할 제사장들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34절)

 

여기 보면 제사장들의 수가 부족해서 레위 사람들이 도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제물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우상숭배에 참여했던 제사장들이 영적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고 하는데, 이 ‘성심’이라는 말은 진실함, 성실함, 참됨이라는 뜻입니다.

 

우상숭배를 하고 세상적으로 살았던 제사장들 중 상당수가, 이때까지 아직 제대로 회개하고 영적으로 새롭게 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자격이 없어집니다. 직분이나 위치가 영적 권위를 주는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 앞에 새롭게 되는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전 정화와 예배 회복이 순조롭게 이루어짐으로 그날 왕과 온 백성이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번제와 화목제의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들이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35-36절)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째, 히스기야의 결심에서 예배의 회복에 이르기까지의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히스기야의 거룩한 결심과 그에 따른 성전 정화와 예배 회복은, 사람이 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 예비하시고 가능하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쉽고, 순조롭게,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께서 느리고 답답하게 움직이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순식간에 폭풍처럼 움직이셔서 모든 것을 갑자기 이루십니다.

 

셋째, 진정한 예배와 헌신은 축제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백성들은 전에 없는 많은 예물을 주님께 바치고, 그것을 아까워하기는커녕 너무 기뻐합니다. 하나님께 뭔가를 드릴 때, 아까워하고 아쉬워하고 부담스러워한다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얼마나 드릴 것인가를 누군가가 결정해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누가 얼마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릴 감사 제물을 각가 알아서 가져오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사람들이 드리니까 다들 기뻐하면서 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회개, 진정한 예배의 회복은 진정한 헌신과 드림을 낳습니다. 그럴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칩니다.

 

 

[나가는 말]

 

결국 모든 문제의 핵심은 성전에 있었고 예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성전 문을 닫아 버렸을 때 그것은 은혜의 통로를 닫아 버린 것이었고, 그러자 나라는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성경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각자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늘 활짝 열려 있습니까? 나의 성전에서는 날마다 하나님께 살아 있는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까? 진정한 회개가 있습니까? 돈과 시간과 재능의 헌신을 통해 진전한 헌신이 드려집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 마음의 성전을 정화하고 예배를 회복할 때 침체되어 있던 교회에 주님의 영광이 임하고, 더 나아가 주변 사회가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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