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HOME > 설교와칼럼 > 수요예배/특별예배





 

2017419일 수요예배

예수신경 11

예수신경의 이야기 (5)

사도 요한과 사랑

(누가복음 949~56)

 

1.   요한의 불편한 진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걸 떠나서 다른 종교의 경전들이나 다른 훌륭한 전기들에 비하여 성경이 아주 특이하면서도 독보적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사람들에 관해서 항상 진실을 말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나 사울처럼 죄를 범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훌륭한 신앙의 인물들인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다윗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미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일반 전기들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모범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그 사람의 죄나 실수들을 지워서 하나의 소설로 변질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에 관하여 오직 진실만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혹시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라 할지라도 진실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 세례 요한, 요셉, 마리아, 베드로의 진실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성경이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또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사도 요한입니다.

 

사실 요한의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많이 가려져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는 요한의 전체적인 모습을 한 번에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대부분 요한이 노년에 보여준 위대한 사도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사도 요한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직접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가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요한에게 사랑이란 원래부터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요한에 대한 구절들을 다 찾아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극적인 순간들을 예수님과 함께 했는데, 그가 나중에 위대한 사랑의 사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게 만들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성경에서는 요한에 대해 오직 진실만을 보여줍니다.

 

 

2.   요한의 이야기

 

1)  사랑에 대해 배우다

 

우리가 요한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는 사랑하는 것을 배우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요한의 가족 관계를 통해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성경의 몇 구절들을 통해 요한이 예수님의 사촌이었다고 추정합니다.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에 대한 복음서들의 기록을 보십시오.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27:56)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15:40-41)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이모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14:25)

 

막달라 마리아는 위의 세 군데 모두 자기 이름이 나옵니다. 그 외에 야고보와 요셉, 그리고 동일인물로 보이는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녀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라고 생각됩니다. 그들 외에 세배대의 아들들(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세베대의 아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의 세베대의 아내와 마가복음의 살로메와 요한복음의 이모는 동일인물이라는 말이 됩니다. ,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이름이 살로메이고, 그녀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자매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는 갈릴리의 어부였고,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를 도와 어부로 일했습니다. 베드로도 세베대에게 배를 빌려 어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 (1:19-20, )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를 남겨 두고 따라갑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그분에게서 배우고, 그분이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과 같이 지내면서 요한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요한은 그때로부터 한참 지나서 자신이 예수님에게 배운 것들을 설명하는 복음서 한 편과 중요한 편지들을 쓰게 될 것입니다.

 

요한의 글에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일관되게 넘쳐흐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면서 그 모든 것을 요약해주는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4)

 

왜 이것이 새로운계명입니까? 예수님이 예수신경을 가르치셨을 때 유대교의 쉐마이웃을 사랑하라는 구절을 더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더 나아가 자신이 남긴 또 다른 문장에서 예수신경의 두 부분을 서로 연결시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20-21)

 

이것을 요약했을 때, 그는 자신이 사랑에 관하여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배웠다고 반드시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항상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2)  사랑에 대하여 테스트를 받았지만 실패하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사랑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항상 사랑을 실천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의 행동이 그의 말과 일치하는지에 대한 테스트들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 사도는 사랑을 잘 배우고 실천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사랑에 관하여 실제로 테스트를 받았을 때 그는 그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고 그를 비난합니다. 그러므로 세 번 실패한 요한의 모습 역시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가 실패한 사랑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

 

첫째,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에게 다가가 아부하며 청탁을 했을 때입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10:35-37, )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그들의 엄마까지 와서 치맛바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나머지 열 명의 제자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분개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늘 가르쳐주신 것처럼, 사랑이 섬김이라면 요한은 사랑에 실패했습니다.

 

둘째, 요한의 이웃 사랑은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았을 때 사랑에 대한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그 사람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멈추게 할 목적으로 그것을 예수님에게 고자질합니다.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49)

 

46절에 보면 제자들이 누가 크냐하고 싸웠는데, 경쟁심에 불탄 요한이 예수님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서, 또는 또 다른 경쟁자가 나타난 것 같아서 그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그에게 너무나 귀한 대답을 해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0)

 

누구든지 예수신경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귀신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렇게 했고, 또 실패한 것입니다.

 

셋째, 요한은 어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호의를 베풀기를 거절한 것을 보았을 때 또 다시 사랑에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고 박대했습니까?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3)

 

예수님이 자기들의 마을이 아니라 원수인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때 요한과 그의 형 야고보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4)

 

그러니까 요한은 사마리아인들에게 지옥불이 떨어지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아니, 도대체 이게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입니까? 그토록 사랑에 대해 배운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천둥의 아들'을 뜻하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덧붙여 주신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과” (3:17, )

 

요한은 사랑의 사도이기 전에 (요즘 표현으로) 소위 조폭 천둥번개파의 조직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5-56)

 

사마리아인들을 사랑하라는 테스트를 받았을 때, 요한은 바로 실패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후에 사랑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마지막 생애를 보낸 요한이지만, 실제로 자신이 사랑을 온전하게 실천하는 것에 대하여 테스트를 받았을 때 분명히 실패했습니다. 요한은 사랑에 관해서 많이 배우기는 했지만, 젊은 청년 시절의 그는 아주 퉁명스럽고 심술궂은 사람이었습니다. 혈기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갔을 때, 그도 처음에는 숨어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십자가 앞에까지 와서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 안에서 가르침과 실천 모두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그런 형편없는 모습의 요한을 계속해서 사랑하셨습니다.

 

 

3)  사랑 받은 제자

 

사랑을 배우는 데 있어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배울 수도 있지만,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곧 사랑을 아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배웁니다. 사랑을 받을 때 사랑을 알게 됩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통해 사랑이라는 것은 배우는 것 이상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예수신경을 배웠고 그분이 사랑의 삶을 사시는 것을 직접 보았지만,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는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를 둘러싼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요한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선생님이 사랑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깊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모든 일마다 그를 포함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가운데 일어난 몇몇 사건들을 보면, 예수님이 요한을 어떻게 특별히 대우해 주셨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5:37)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17: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26:36-38, )

 

회당장 야이로가 딸을 살려달라고 했을 때 그의 딸을 고치시러 가시면서, 또 높은 산 위에서 변형되셨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특히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다른 제자들은 앉아 있으라고 하시고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더 깊이 들어가셨습니다. 이때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이처럼 솔직한 나눔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그들과 이런 말씀까지 나누십니까?

 

그 정도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챙기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편애를 하신 것입니까? 사실은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 사람이 가장 요주의인물이기 때문에 그들을 따로 훈련하신 것입니다. 너무 불같고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따로 특별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 세 사람, 특히 요한은 그 순간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의 관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이 기록한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13:23)

 

그 외에도 여러 군데(19:26; 20:2; 21:7, 20)에서 요한은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묘사합니다. 그 중에도 위의 구절에 나오는 장면이 가장 극적입니다. 요한이 예수님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자기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고 묘사합니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이 구절은 요한이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요한이 예수님과 관련하여 이렇게 표현한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 (1:18, )

 

여기서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이라는 말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의 말을 하나로 엮어보면, 그가 예수님에게서 경험한 사랑은 성자가 성부에게서 경험한 것과 같은 정도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예수님의 말씀(17)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테스트를 받았을 때 불합격했지만,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품속에서 경험한 사랑이 천둥번개파 조직원의 스토리를 마침내 사랑의 사도의 스토리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4)  이웃 사랑하기를 배우다

 

우리는 요한이 쓴 글들을 통해 이 우레의 아들이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다음 몇 가지 사실들은 요한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첫째, 요한은 자기가 가장 중요한 사도라는 생각을 포기했습니다. 실제로 요한의 자발적인 낮춤과 다른 사람에 대한 섬김은 너무나 깊이 있는 것이어서, 그는 자신이 쓴 복음서에서 자기 정체(이름)조차 밝히지 않습니다. 단지 요한은 자신에게 하나의 별명,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는 말만 붙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운동경기에서 MVP 후보가 평범한 역할을 자처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요한은 우리를 위하여 사랑의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한때는 사마리아를 불로 태우고 잿더미로 만들려했고, 예수의 제자에게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분 나빠했던 젊은 사도가, 이제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셋째, 우리는 몇 가지 단어들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의 편지들은 신약성경의 2%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분량은 신약성경 전체의 20%나 됩니다. 그 말은 그저 습관적으로 사용된 말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수신경에 쉐마를 채택하신 것에 비하여 보면, 요한은 아주 부드럽게 예수신경을 채택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일 3:23, )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를 믿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신경 그대로입니다.

 

 

[나가는 말]

 

이것이 요한의 이야기입니다. 폭력적인 우레의 아들이, 부드러운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꾸며낸 것이 아니라 요한의 삶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의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그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삶에 관한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진실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우리의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잠자고 있는 것들을 일깨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깨어날 때 우리 삶에는 충만함과 풍성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목장입니다. 목장에서 우리는 그럴 듯하게 가리고 멋지게 치장한 가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부끄럽고 괴롭고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진실을 내어 보이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럴 때 파워가 나타납니다. 놀라운 변화의 역사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낼 때 일어납니다.

 

나이가 많이 든 노사도 요한이 말하고 싶은 것은 오직 사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다음 말을 듣고 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오히려 사랑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원래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변화되어 요한처럼 우리도 주님 앞에 갈 날이 얼마 안 남게 되었을 때 사랑의 사도가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5 "어찌하여 우느냐" (요 20:11-18)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8 (1/22/20) kpccoh 2020.01.23 1146
234 "찬양이란 무엇인가" (시 145편 1~9절) - 금요찬양집회 (1-17-20) kpccoh 2020.01.18 1145
233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0-71)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7 (1/08/20) kpccoh 2020.01.09 1759
232 "소망으로 가득한 새해 만들기" (시편 42편 1~11절) - 새해맞이감사예배(12/31/2019) kpccoh 2020.01.01 1290
231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민 11:18-23, 31-35)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6 (12/08/19) kpccoh 2019.12.19 2247
230 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느냐" (마 14:22-33)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5 (12/11/19) kpccoh 2019.12.12 2496
229 "네 이름이 무엇이냐" (창 32:22-32)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4 (12/04/19) kpccoh 2019.12.05 1845
228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18)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3 (11/27/19) kpccoh 2019.11.28 5888
227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약 4:13-17)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2 (11/20/19) kpccoh 2019.11.21 1492
226 "사랑이 모든 것이다" (롬 13장 8~10절) - 금요찬양집회 (11-15-19) kpccoh 2019.11.16 427
225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1-15)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 (11/06/19) kpccoh 2019.11.07 2479
224 "인생 결산을 위한 기도" (딤후 4:6-18)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5 (10/30/19) kpccoh 2019.10.31 1108
223 "소망을 위한 기도" (롬 15:7-13)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4 (10/23/19) kpccoh 2019.10.24 1283
222 "가치 있는 인생을 향한 기도" (골 1:3-12)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3 (10/09/19) kpccoh 2019.10.10 626
221 "거룩을 위한 기도" (살전 5:23-28)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2 (10/02/19) kpccoh 2019.10.03 1301
220 "평화를 위한 기도" (데후 3:6-18)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1 (9/25/19) kpccoh 2019.09.26 412
219 "큰 환난 중에서의 기도" (고후 1:3-11)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0 (9/18/19) kpccoh 2019.09.19 928
218 "제일가는 믿음: 백부장의 믿음" (마 8장:5-10절) - 간증설교 (5/11/19) - 박명효 장로 kpccoh 2019.09.12 171
217 "담대한 전도와 선교를 위한 기도" (엡 6:10-20)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9 (9/04/19) kpccoh 2019.09.05 1162
216 "가족과 민족을 위한 기도" (롬 9:1-5)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8 (8/28/19) kpccoh 2019.08.29 1051


9480 S. Old State Rd, Lewis Center, OH 43035 / Tel: (614) 433-7155 / E-mail: kpcco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