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있었던 이슬람 선교세미나와 콜럼버스 연합부흥사경회 때 여러 귀한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 마음에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기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제가 기도하던 제목들을 보면 성도님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주류를 이룹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제목들은 주로 이런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진로문제가 해결되도록, 건강하도록, 사업 잘되도록, 직장에서 맡은 일을 잘해내도록, 학생이면 공부가 잘 되거나 시험 잘 보거나 논문 잘 쓰도록, 자녀가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물론 섬기는 VIP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나, 협력하는 선교사님들을 강건하게 붙들어주시기를 원하는 기도제목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 또는 자기 가족들이 잘되게 해달라는 것이 주류입니다. 평소에 기도할 때 당연히 위의 제목들을 가지고 기도해왔으며, 그런 내용으로 기도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연합부흥사경회 첫째 날 강사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 제 마음을 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에 처음 복음이 전해졌을 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그저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매일 새벽마다 기도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민족 복음화'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조선 땅에 처음 복음이 전해지고 그리스도인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 개인이 새벽제단을 쌓으며 그런 기도를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저는 그렇게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한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 이슬람 선교세미나 때도, 세계 민족들 중에 한 번도 기도를 받아보지 못한 민족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선교사님의 말씀이 크게 도전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몇 천 년 동안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 중에서 단 한 번도 이름이 언급된 적이 없는 민족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몇 개의 민족을 아시는지 한 번 보십시오.

   

투르크, 우즈벡, 투르크멘, 키르기즈, 카자흐, 타직, 쿠르드, 위구르, 티벳, 페르시아, 체첸, 다게스탄, 코카서스, 다리강가, 투빈, 그로마, 나시, 냥, 은골록, 다우르, 라다키, 라시, 두르베트, 크리미안 타타르, 카라칼팍, 발루치, 둔간, 바쉬키르, 잉귀쉬, 슈그니, 발카르, 아바르, 아바자, 안디, 자트, 출림, 칸티, 칼미크, 쿠미크, 타바사란, 다르긴, 레즈긴, 루르, 마간다라니, 아이막, 차가타이, 하자라, 파샤이, 푸쉬튼, 데이무르, 네네츠, 카라차이, 오세티야, 아브카지아, 칼미키야, 부리야트, 투바, 카카시야, 바슈코트, 디알누케, 마마라세누포, 세나라수누포, 수피레, 베두인, 망가 카누리, 슈와 아랍, 제나가, 얄룬카, 자한케, 투씨, 베르베르....

   

이들은 대부분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터키, 러시아, 북부아프리카 등에 사는 민족들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중에 거의 언급되지 않는 백성들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도해주지 않으면 단 한 번도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이 언급되지 못하는 민족들이 이 땅에 너무나 많습니다. 또 우리 동포들 중에도 우리가 기도해주지 않으면 단 한 번도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그들의 이름이 언급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스케일을 넓혀서 이 민족들과 또 우리 주변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품고, 그들을 주님 앞에 기도로 올려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