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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14 주일예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마가복음 20

열두 제자를 파송하신 의미

(마가복음 6 7-13)

 

[들어가는 ]

 

여러분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전도를 얼마나 해보셨습니까? 그냥 교회 와보라는 정도 말고, 정말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직접 전도한 것이 얼마나 되십니까? 저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소위 ‘모태 신앙’입니다. 그런데 모태신앙인이 ‘못해 신앙’인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도 못해, 전도도 못해, 못하게 변질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전도가 약합니다.

 

저도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직접적인 전도를 적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특히 목회자가 다음부터는 주로 믿는 분들만 만나기 때문에 전도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전도’ 하면 생각나는 사건 가지가 있습니다.

 

번째는 제가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교회에서 전도를 해보라고 해서 착하게 보이는 친구를 정하여 <사영리> 들고 진짜로 전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는 끄덕끄덕 하면서 교회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착한 아니었던지, 퇴학을 당했습니다. 철조망을 자르는 가위 같은 도구를 학교에 가져와 철조망을 자르고 나가서 놀다가 들어오곤 하다가 걸려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릅니다.

 

경우는 제가 한국에서 대학교 기독학생회의 수련회 있었던 일입니다. 수련회 중간에 나가서 전도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와 함께 짝을 지어 주변 동네로 전도 실습을 나갔습니다. 그때 밭일을 하고 계시던 할머니를 발견하고, 친구와 저는 서로 가서 하라고 미루다가 결국 제가 가서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너무나 충격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가 1980년대 중후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예수님에 대해 번도 들어보신 적이 없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복음을 설명하려 했지만 너무나 막막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 그냥 실망해서 돌아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때 저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고는 할머니 대신 밭일을 하던 친구는 지금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전도에 대한 경험들이 있으시리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전도'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교회를 통하여 전도를 나누어하니까 낫습니다. 일단 믿지 않는 분들이 요즘 교회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식사하러 오라고 목장으로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마음을 열리게 합니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면서 교회 예배에도 나오게 하고, <생명의 >이나 “예수 영접 모임”을 통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결단을 하도록 돕습니다.

 

오늘 내용은 전도에 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선교에도 해당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전도와 선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원리들을 함께 살펴보고, 전도와 선교를 어떻게 것인지 함께 나누어보기를 원합니다.

 

 

1.   전도자의 조건: 훈련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7)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을 둘씩 짝지어 전도하게 보내십니다. 사람씩 짝을 지었다는 것은, 율법에 의해( 17:6) 요구되는 증인의 최소 숫자가 2명이며, 혼자 하지 않고 믿음의 공동체로서 함께 사역을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이러한 주님의 원칙을 받아들여서 선교를 위한 파송 이것을 적용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에 나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성령께서 따로 세우라고 하셔서 전도 여행을 보내셨고, 나중에 바울은 실라와 나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때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만 보내셨습니까? 많이 보낼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보내지 않고 열두 명만 보내셨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당시 굉장히 많았습니다. 수천 , 수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때는 오직 열두 명의 제자들만 보내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 3:14-15)

 

첫째, 예수님께서 열두 명을 부르신 것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함께 있으면서 무엇을 하려고 하셨겠습니까? 매일 함께 생활을 하며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보고 배우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전도를 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셋째, 그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려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중심으로 해서 특별한 공동체를 이루었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와 귀신 쫓아내는 사역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며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제자들은 이러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성된 특별한 공동체 안에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문에서 보는 대로, 그들은 처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고 자신들만 따로 밖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게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가르치는 사역, 복음을 전하는 사역, 그리고 병자를 치유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직접 보아왔습니다. 그러니까 부르심을 받은 목적을 위해 그들은 지금까지 주님으로부터 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언제나 수백, 수천, 수만 명이 있었지만, 그들은 열두 명의 제자들처럼 훈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열두 명이 완벽하게 훈련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지금까지 가장 가까이서 자신의 사역을 보며 훈련받은 열두 명을 내보내십니다. 나중에 70명을 둘씩 지어(35) 파송하시는 내용이 나오는데( 10), 교회 전승에 의하면 바나바가 그들 명으로서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이라고 전해집니다. 70명도 역시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전도를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훈련이라는 것을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방금 영접한 사람이 전도를 아주 잘합니다. 금방 믿었기 때문에 성경을 거의 모르고 따로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예수 믿고 이렇게 변했다고 간증하며 전도를 잘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금방 믿었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서 아무에게나 복음을 전하고 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열정이 점점 식어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고,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 대한 훈련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이 소위 ‘제자훈련’입니다. 그들이 무슨 전도 훈련을 따로 받았다기보다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을 옆에서 직접 눈으로 보며 배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 훈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전도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 훈련입니다. 매일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주님과 교제하고, 깨달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해외 파송 선교사를 훈련할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론 현지 언어와 문화와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선교의 역사와 선교 방법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선교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가장 중요한 선교 훈련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선교사로 나가면 주로 무엇을 합니까?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님과 교제해야 하는데, 그것이 기도와 말씀 묵상(QT)입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현지인을 전도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양육과 훈련입니다. 그래서 선교훈련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QT 제자훈련입니다. 단기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훈련을 충분히 받지 않고 나가면 힘들어집니다.

 

오래 섬기던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데리고 멕시코 단기선교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20 명의 학생들 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지 않은 상태였고, 소위 문제아로 찍힌 학생들이었습니다. 애들의 부모님들은 단기선교를 통해 자기 아들이 변화되기를 원해서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색다른 환경과 여행 자체를 흥미롭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마음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단기선교에는 참가자의 신앙에 도전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참가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정말로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는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있어야 하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훈련이 없이 나가게 되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훈련은 다른 아닙니다. 매일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이고, 말씀대로 사는 훈련입니다.

 

 

2.   전도자의 자세: 하나님만 의지함 (8-9)

 

열두 명의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지 사항들을 지시하십니다.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8-9)

 

여기 보면, 크게 가지 명령입니다. 긍정적인 명령이 있고 부정적인 명령이 있습니다. 먼저 긍정적인 명령으로, 가질 있는 것은 지팡이 하나, 신발 켤레, 벌입니다. 반면, 가지면 되는 것으로서 양식, 배낭, 전대의 , 여분의 옷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모습으로 전도를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지팡이 하나와 신발 켤레를 허락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지형 , 산과 광야를 여행할 그것들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필수적인 것들은 가져가되 이상은 가져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갈 의지할 대상은, 돈이나 양식이나 자기들이 가진 물건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서 주신 권세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선교에 동참하려면 가장 먼저는 기도가 필요하고, 동시에 선교비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 단기선교도 가고, 선교훈련도 받고, 선교사님들을 초청해서 말씀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교회들이 돈만 걷어서 보내면 선교라고 생각을 합니다. 단기선교를 때도 보면, 많은 헌금을 걷고 많은 물품들을 모아 가지고 가서 그것을 전달하고 봉사를 조금 하고 오면, 이번에 선교 잘했다고 하며 좋아합니다. 어떤 교회들은, 자기들이 돕는 선교사가 수십 명이고 선교예산이 엄청나다고 자랑합니다.

 

여러분, 선교를 함에 있어서 돈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선교헌금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선교지에서 돈이 필요한 일들을 있게 해줍니까? 그렇습니다. 특히 요즘 달러가 아주 셉니다. 그러니까 선교헌금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면 선교를 수가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교를 돈은 너무나 유용하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할 의지 대상은 돈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래 매스터카드(MasterCard) 광고에 제가 좋아하던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There's something that money can't buy. But for everything else, there's MasterCard.

(돈으로 없는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매스터카드가 있습니다.)

 

말은 맞습니다. 돈으로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돈으로 (house) 있지만 가정(home) 없습니다. 돈으로 최고급 침대는 있지만, 단잠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너무 많습니다. 무엇보다 구원은 결코 돈으로 없습니다. 우리는 전도와 선교를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입니다.

 

7절을 다시 보십시오. 누가 누구를 보냅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 주어 보내십니다. 그냥 나가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 아니라, 권능을 주셨습니다. 권세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나가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 능력으로 전도를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보내셨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영적인 파워를 주셨습니다. 보내신 분은 주님이시고, 제자들은 순종해서 나아가 전도한 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십니다. 내가 혼자 결정하고 나가서 전도하고 선교하는 아닙니다. 주님이 보내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보내시고 나는 순종해서 나가는 것이 전도이고 선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절대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권세와 능력을 주어 보내십니다. 재주나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전도이고 선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런 권능을 얻을 있습니까? 우리가 원한다고 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조종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기도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을 보내는 분이 계심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까? 사실은 믿는 구석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되면 사람에게 가야지, 세이빙에 있는 돈으로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능력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열심히 기도하고 계십니까? 주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으면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표시입니다. 힘으로 없고 오직 주님의 힘으로 있다는 고백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특히 전도를 나가거나 선교를 나갈 먼저 기도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전도할 대상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입술에 사람에게 지혜롭게 얘기할 말을 넣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혼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고 보내고 계십니다.

 

 

3.   전도자의 반응: 영접하면 머물고 거부하면 떠남 (10-11)

 

이제 예수님은 조금 구체적인 전도의 지침을 주십니다.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0-11)

 

제자들을 영접하는 사람과는 함께 머물고, 거부하는 사람에게서는 떠나라고 하십니다. 영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라고 하시는 것은, 말고 다른 좋은 곳은 없나 하면서 두리번거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야 이유는, 제자들이 전도를 나가는 목적이 편안한 여행을 하는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있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제자들이 거절을 당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특히 그들은 배척하는 곳을 떠날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증거를 삼으라고 하십니다(11).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해줍니까? 물론 말씀을 전한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거부한 그들 책임이라는 표시도 됩니다. 동시에 말씀은 복음을 받아들일 사람도 있지만, 또한 거부할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듣기조차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하다가 거절을 당하더라도 놀라거나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해서 인격을 무시했다고 생각해서도 됩니다. “자기가 뭐가 그렇게 잘났어? 내가 특별히 이렇게 찾아와줬는데 감히 나를 무시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가 무시를 당하거나 거절을 당할 우리가 기억할 점은, 예수님도 무시를 당하셨고 거절을 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전도가 되었다고 해서 우쭐거리거나 뭐가 것처럼 행동해서도 곤란합니다. 전도해서 받아들인 사람에 대해 영적인 우월감을 갖거나 지배하려고 해서도 됩니다. 이래 뵈도 내가 전도했다, 나는 이렇게 전도를 잘한다, 하는 태도는 곤란합니다. 전에 신앙서적에 전도왕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 전도왕”, “교수 전도왕”, 그런 식입니다. 물론 아주 귀한 간증이 있는 책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도를 하면서 정말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이 돌려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교를 때도 그곳에서 우리 교회의 이름이나 이름이 높여지느냐, 아니면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여지느냐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선교지에 ‘장로교회’를 세우느냐, ‘감리교회’를 세우느냐, ‘침례교회’를 세우느냐 ‘순복음교회’를 세우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는 ,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4.   전도와 선교의 내용: 복음 전하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 (12-13)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제자들은 나가서 놀라운 사역을 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12-13)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을 기름을 발라 고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사역의 내용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점은 이러한 사역의 순서입니다. 먼저 회개하라고 복음을 전파했고, 다음에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복음 전파와 치유 사역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할 없습니다. 그러나 순서를 따지자면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며, 다음에 계속해서 치유 사역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은사를 받은 분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은사는 아주 소수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귀신 쫓아내는 일과 고치는 일을 오늘 우리 상황에 일반적으로 적용해 보면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전도하고 선교할 정말 중요한 것은, 중에 무엇이 먼저냐 하는 것보다는, 복음 전파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이 동시에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만 전하고 사람들의 필요는 무시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구제와 의료 사역 등만 하고 복음은 전혀 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 우리는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어느 하나만 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전도와 선교가 아니라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분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가는 ]

 

여러분은 언제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까? 때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믿게 데에는,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 역시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다 보면, 결국 복음의 시작은 초대교회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예수님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고,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계속해서 전도의 고리가 이어져, 결국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달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복음이 우리에게서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뻗어가도록 하고,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주님의 제자입니다.

 

오래 전에 ‘사오정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별로 웃기지가 않습니다. 썰렁하기만 한데 유행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허무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사오정의 집에 강도가 들어와서 사오정에게 묻습니다. “손오공은 어디 있냐? “자기 집에 있죠. 강도가 깜짝 놀라며 묻습니다. “삼장법사는 어디 있냐? “자기 집에 있다니까요. 강도가 놀라면서 묻습니다. “그럼 저팔계는 어디 있냐? 그러자 사오정이 짜증을 내며 말합니다. “나는 사오정이란 말이예요!

 

어떠십니까? 하나도 웃기지 않습니까? 도대체 이런 유행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핵심은, 사오정이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관심이 없고 자기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를 말씀드리면, 사오정 1 사오정 2 목욕탕 앞에서 만났습니다. 사오정 1 2에게 말합니다. “아, 목욕탕에 오십니까? 그러자 사오정 2 대답합니다. “아니요. 목욕탕에 갑니다. 그러니까 사오정 1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목욕탕에 가시는 알았습니다.

 

이것도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입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로 통하지가 않습니다. 서로 자기 관점에서만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립니다. 신앙생활도 합니다. 그런데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그냥 흩어져 따로따로 삽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의도하신 교회는 진정으로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삶의 어려움과 실패의 상처도 함께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으로 나아가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공동체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훈련받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하면서 결과는 주님께 맡기며, 복음 전파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을 함께 감당해 나가는 교회와 주님의 제자들이 되어, 마지막 시대에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교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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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의 유익 (요 16:1-11) - 회복하시는 은혜 34 (10/24/2021) admin_p 2021.10.24 517
337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 23:1) - 야외예배 (10/17/2021) admin_p 2021.10.18 758
336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이유 (요 15:18-27) - 회복하시는 은혜 33 (10/10/2021) admin_p 2021.10.10 674
335 순종과 사랑의 상관관계 (요 15:9-17) - 회복하시는 은혜 32 (10/03/2021) admin_p 2021.10.03 802
334 열매를 많이 맺는 삶의 비결 (요 15:1-8) - 회복하시는 은혜 31 (09/26/2021) admin_p 2021.09.26 1511
333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 14:22-31) - 회복하시는 은혜 30 (09/19/2021) admin_p 2021.09.19 1117
332 믿음, 기도, 사랑, 성령 (요 14:12-21) - 회복하시는 은혜 29 (09/12/2021) admin_p 2021.09.12 573
331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요 14:1-11) - 회복하시는 은혜 28 (09/05/2021) admin_p 2021.09.05 794
330 서로 사랑하라 (요 13:31-35) - 회복하시는 은혜 27 (08/29/2021) admin_p 2021.08.29 732
329 배신자도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 (요 13:21-30) - 회복하시는 은혜 26 (08/22/2021) admin_p 2021.08.22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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