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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6 주일예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마가복음 12

좋은 땅으로 결실하는

(마가복음 4 1-20)

 

[들어가는 ]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아주 귀한 책들을 저술한 영국의 지성 에스 루이스(C. S. Lewis)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중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라는 책이 있는데, 삼촌 악령이 조카 악령에게 어떻게 하면 악령으로 성공할 있는지를 편지문의 형식입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영국의 노신사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기독교 서적 권을 읽게 되었고 거기에 감동을 받게 됩니다. ‘맞아, 나도 이제 제대로 믿고 신앙생활을 해야지. 인생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준비를 해야지.’ 그는 이런 도전을 받게 되고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인생 자체가 크게 바뀔 있는 이런 중요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그래,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밥을 먹다 보니까 식곤증도 오고, 다시 생각해보니인생이 거기서 거긴데 내가 무엇이 특별하다고 나이에 인생길을 바꾸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점심을 먹고 나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버스를 타고 그냥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노신사 뒤에서 악마는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단지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시대에 예배당을 채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주일 아침 교회에 와서 예배하며 말씀을 듣다가 어떤 날은 특별히 말씀이 닿습니다. ‘맞아, 나도 새로워져야겠다. 나도 이제는 정말 제대로 믿어봐야지. 그런 생각이 드는 바로 순간에 ‘그런데 오늘은 설교가 기네. 끝나지? 오늘 점심 메뉴는 뭔가? 그러면서 예배가 끝나자마자 가서 식사하며 어느덧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교회에 때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사람 뒤에서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악마의 모습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결국 우리는 말씀을 듣고 행할 때에만 변화되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미 오래 , 예수님께서 그것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지 다른 반응들

 

오늘 본문을 가리켜 소위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씨”(3) “말씀”(14),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시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리고 “씨를 뿌리는 자”(3)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땅에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다르게 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크게 가지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1) 

 

뿌릴새 더러는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4)

 

말씀이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5)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교회에 나오기도 하고 말씀도 듣지만,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깨달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신앙생활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것들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길가와 같은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보기가 힘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처음 번은 교회에 나오다가 그만 나오고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문을 두드리지만 정착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다른 좋아 보이는 것을 따라서 교회를 떠납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고 말씀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다면, 그러한 태도는 길가와 같은 마음이라고 수가 있습니다.

 

지난여름 제가 한국에 나갔을 30 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였습니다. 친구가 고등학교 갑자기 저에게 제가 다니던 교회에 오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라고 하니까 왔는데, 되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다니던 교회에 예쁜 여자 애들이 많다고 하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서 것입니다. 와서 보니 소문과 다르니까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길가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를 그냥 떠나가도록 방치해서는 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것인지 함께 연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기 발로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경우는 명이 될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분들을 목장으로 초청하여 섬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같이 기도하여 응답을 받을 하나님의 능력도 경험할 있게 함으로 주님을 만나게 돕는 것입니다.

 

 

2)  돌밭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5-6)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넘어지는 자요” (16-17)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즉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 때문에, 믿음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뭔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이 들면 신앙생활을 중단하게 됩니다. 교회를 다니더라도 진정으로 주님을 믿기 때문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다니면 뭔가 자기에게 다른 이익이 있기 때문에 다닙니다. 그러다가 이상 유익을 얻든지, 교회를 다니는 때문에 뭔가 손해가 생기면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됩니다.

 

이번에 한국에 갔을 제가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이민 오기 전까지 다니던 교회에서 마침 홈커밍 잔치를 해서 가보았습니다. 고등부 때의 많던 친구들 중에 대학에 가서 교회를 나오던 친구가 있는데, 놀랍게도 지금은 너무나 열심히 하는 집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등부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많은 친구들 중에 지금도 교회에 다니는 친구는 손으로 꼽습니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했는데 언젠 가부터 뜸해지고 멀어지게 사람, 매주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오지 못하고 자기의 상황이나 스케줄에 따라 교회에 오거나 오는 것이 결정되는 사람이 돌밭과 같은 마음이라고 있습니다. 특히 믿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실족하여 믿음을 떠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조심해야겠습니다.

 

 

3) 가시떨기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7)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18-19)

 

가시떨기와 같은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에도 매주 열심히 나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에서의 일들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갈등합니다. 비즈니스나 재산이나 공부나 명예나 세상에서의 성공에 집착해서 기쁨이 없고, 하나님을 믿지만 동시에 세상의 유혹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매주일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듣고, 정기적으로 성경공부나 여러 모임에도 참여하고, 수련회나 특별 부흥회에도 참여합니다. 잘한다는 설교자들의 설교를 찾아서 열심히 듣기까지 합니다. 성경 지식도 많고, 교회 사역에 참여하고, 직분을 맡아서 봉사도 하고, 큐티도 합니다.

 

그러나 삶에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보지만, 동시에 세상의 다른 것을 또한 사랑하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은 것입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사람이 겉으로는 신실한 크리스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반대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합니다. 성경에서 뭐라고 말씀하는지를 너무나 알지만,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자기에게 손해가 같으면 말씀대로 따르지 않고 반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진리대로 살지 못하고 유혹에 빠져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주님을 제대로 믿어보려 애쓰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삽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품은 생각은 이것입니다. ‘언젠가는 믿어야지. 그런데 ‘언젠가’가 오지를 않습니다.

 

혹시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매주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생활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까? 요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말씀 들을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아직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도 들을 없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말씀을 접할 있는 환경에서 삽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듣는 것이 아닙니다. 듣고 실천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일단은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는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들은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듣고 행하는 자라야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들었는가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대로 행하는가 입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바로 이것을 하나님은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듣기만 하고 실천이 없는 크리스천은 결실하지 못하는 가시떨기와 같다고 있습니다.

 

 

4)  좋은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8)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20)

 

말씀을 듣고, 깨닫고, 실천에 옮기는 삶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삶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2.   결실하지 못하는 이유

 

비유에 나오는 뿌리는 자는 하나님이시고, 뿌려진 씨는 같은 종류의 씨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똑같습니다. 똑같이 완벽한 품질의 씨를 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로 드신 종류의 땅에는 모두 씨가 떨어졌습니다. 씨가 뿌려져서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씨는 뿌려졌습니다.

 

그러니까 종류의 사람들 모두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각각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씨가 잘못되어서, 말씀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각각의 토양, 사람들의 마음 밭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면서 신앙생활을 해보려 노력하는 사람은 가나 돌밭은 아닙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가시떨기와 좋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들은 성실한 크리스천입니다. 매주일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해서 예배도 열심히 드립니다. 찬양도 열심히 합니다. 여러 사역에서 충성 봉사합니다. 교사로서 말씀도 가르칩니다. 수련회와 부흥회 때는 앞자리에 앉는 사람들입니다. 단기 선교도 갑니다.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좌절하고, 몸부림치고,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자기는 좋은 땅과 같이 열매를 풍성하게 맺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문제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죄입니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 로마서 7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나는 속에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 7:15, 17-18, )

 

이제 2015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가 시작할 아마 우리 거의 대부분은 새해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연초에 세운 계획대로 100% 실행한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결코 좋은 일을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좋은 의도로 스스로 말합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거야. 이제는 절대로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거야. 다이어트를 하는 분이라면 ‘이 디저트 조각이 내가 지구상에서 먹는 마지막 디저트가 것이다. 근처 Gym 끊어놓고는 ‘이번에는 반드시 아침운동에 성공할 것이다.’라고 다짐하지만 실패합니다. ‘올해는 내가 반드시 성경을 번은 읽을 것이다.’라고 해놓고 읽지를 않습니다. 어떤 습관에 대하여 3개월만 지나면 나는 습관을 고치게 것을 확신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매일 자신 안에서 이러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데 힘이 부족합니다. 제대로 말씀에 비추어 살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성경말씀에 비추어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합리화일 뿐입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아침마다 하루를 향한 좋은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오늘은 뭔가 다르겠지. 좋은 하루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그러나 하루를 마치며 일이 없거나 실패해서 실망하는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모두는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 7:24, )

 

바울의 이러한 고백이 무슨 뜻입니까? ‘나는 모든 것을 시도해봤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나는 지금 마치 절벽 끝에 있는 같은 기분입니다. 나를 위해 뭔가 있는 사람이 정말 없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를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말에 거하면 참으로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8:31-32)

 

우리가 변화되는 비결은 자신의 의지력이 아닙니다. 무슨 건강식품 약을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이나 새해 계획을 짜는 것도 아닙니다. 맹세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변화의 비결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패배하게 만드는 모든 행동의 뒤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거짓말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 또는 성공이나 실패, 아니면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대한 거짓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저것을 하면, 저것만 있으면 나은 삶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만일 진정으로 변화되기 원한다면, 우리는 현실을 바로 보고 우리의 마음을 바꿔야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변화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좋은 땅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크게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실제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방법입니다.

 

첫째, 문제의 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요일 1:8, )

 

변화하고 싶어도 변화하지 못할 ,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살지 못할 ,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뭔지를 모르겠다고 희미하게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패배하게 만드는 모든 행동 뒤에는 반드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문제의 뿌리입니다.

 

그렇다면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죄를 짓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에게 죄가 무엇입니까? 사실상 죄는 어떤 행동이나 습성이 아닙니다. 죄는 바로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뭐든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 순간만큼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거예요. 나는 내가 옳다고 느끼는 대로 행동할 겁니다. 내가 자신의 주인입니다. 내가 하나님이에요. 당신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구원을 빼앗길 염려는 없습니다. 그러나 죄는 우리가 삶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때문에 바로 자신이 문제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가 영어로 SIN인데 가운데 말이 무엇입니까? "I," 그렇습니다. 바로 내가 문제입니다. 죄는 우리의 모든 문제의 뿌리가 됩니다. 모든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우리 인간은 죄를 짓는 것이 자기의 본성이라고 인정하기를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죄는 언제나 자신을 속이도록 만듭니다. 죄를 범하고 있는 바로 순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상 패배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이상 자신을 속이기를 중단해야 합니다.

 

사실은 상당히 문제인데도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것들은 없습니까? 혹시 스스로를 속이면서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까? ‘이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 나는 이것을 언제든지 그만 있어. 나는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이것을 중단할 수가 있어. 나는 가끔 남에 대해 험담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진짜 모습이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조금 하니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문제입니다. 조금 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중독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빠져드는 원인은 대개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할 때까지는 결코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변화가 일어날 있습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이것이 누가 삶의 주인이냐는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명예나 돈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없어지면 삶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상담 전문가들이 가장 문제는,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러 오기까지 너무 오래 동안 기다리고 망설인다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곧바로 해결하지 않고 질질 끌어서 불필요한 고통을 겪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자신을 속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죄는 언제나 중독성이 강합니다. 죄는 잠깐 동안의 쾌락을 위해서 오랜 시간을 고통당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때문에 바로 자신이 문제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실을 인정해야 변화가 가능합니다. 다른 , 다른 사람 탓을 하면 변화되지 않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변화시키실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7:24-25, 새번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자유하게 주십니다.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안에 없는 능력이 주님 안에는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을 붙들 거기에 해결책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다스리시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는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깨달아야 합니다. 듣기만 한다고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씨름하고 고민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항상 묵상해야 합니다. 그럴 깨달음이 옵니다. 깨달을 때에 열매를 맺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이 치열한 영적 전투장입니다. 중동에만 전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힘으로는 승리할 없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의 뜻을 깨달아 그것대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가는 ]

 

11세기 영국에 헨리 3세라는 유명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그는 노릇 하기가 피곤해졌는데, 가만히 보니까 수도사가 가장 부러웠습니다. 수도원에서 하루 종일 기도하고 말씀 보는 수도사가 부러워져서 수도사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당시 유명한 리처드라는 수도원장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나를 수도사로 받아 주십시오.” 수도원장은 가만히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글쎄요. 수도사가 되려면 중요한 규칙 하나가 있는데, 그것을 지키실 수가 있으실는지요?” “뭔데요?” “수도원의 생명은 순종입니다. 왕의 자리에 있던 분이 같은 사람에게 철저히 순종할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철저히 순종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번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지키시겠습니까?” “.” “, 이것이 명령입니다. 당장 왕궁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맡긴 백성들을 제대로 이끌며 섬기십시오.”

 

예수님은 오늘의 천국 비유를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 백성이 되기를 도전하십니다.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 밭이 아니라, 좋은 땅과 같이 천국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성장시켜 30, 60, 100배의 수확을 누리는 천국 백성들이 되기를 도전하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하나님 나라가 약속하는 은혜의 세계로 강권하여 초청하고 계십니다.

 

이르시되 들을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9)

 

사실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마음으로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우리도 그렇습니다. 정말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실제로 예배가 많습니다. 주일예배도 있고 수요예배도 있고 새벽기도도 있습니다. 모두 참석을 한다면 1년에 도대체 설교를 듣는 겁니까? 그런데 아무리 설교를 많이 들어도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때는 열심히 하고 은혜도 받는 같은데 조금만 지나면 언제 배웠느냐는 , 잊어버립니다.

 

듣기만 하고 끝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가지 토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지 하나, 좋은 땅만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좋은 땅은 저절로 좋은 땅이 것이 아닙니다. 좋은 땅도 원래는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과 같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를 삽으로 파고 곡괭이질을 하고 해서 갈아엎은 땅입니다. 그런 수고와 아픔을 겪은 땅이 좋은 땅입니다. 그러고 나서 거기에 씨가 떨어지니까 자라서 열매를 맺게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좋은 땅이 되어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100, 60, 30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고 결실하는 새해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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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복음 전파의 열매와 억울한 투옥 (행 16:11-24)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9 (2/24/2019) kpccoh 2019.02.24 1588
197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복음 (행 16:1-10)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8 (2/17/2019) kpccoh 2019.02.17 1634
196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에 관한 진실 (행 15:30-41)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7 (2/10/2019) kpccoh 2019.02.10 6548
195 이방인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행 15:12-29)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6 (2/3/2019) kpccoh 2019.02.03 1448
194 역사적인 예루살렘 공의회 (행 15:1-11)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5 (1/27/2019) kpccoh 2019.01.27 2808
193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행 14:19-28)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4 (1/20/2019) kpccoh 2019.01.20 2095
192 루스드라에서의 치유와 그 후의 혼란 (행 14:8-18)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3 (1/13/2019) kpccoh 2019.01.13 2437
19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 (골 3:9-17) * 새해 메시지 (01/06/2018) kpccoh 2019.01.06 5902
190 송구영신 메시지: 어떤 땅으로 살 것인가 (막 4:13-20) * 새해맞이감사예배(12/31/2018) kpccoh 2019.01.01 867
189 담대히 선포한 은혜의 말씀 (행 14:1-7)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2 (12/30/2018) kpccoh 2018.12.30 1814
188 왕께 경배하기로 작정한 사람들 (마 2:1-12) * 성탄주일 메시지 (12/23/2018) kpccoh 2018.12.23 995
187 이방인에게로 향하는 복음의 빛 (행 13:44-52)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1 (12/16/2018) kpccoh 2018.12.16 1817
186 무엇을 믿고 살 것인지 결정하라 (행 13:26-43)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0 (12/9/2018) kpccoh 2018.12.09 2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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