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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3 성금요일 예배

성금요일 메시지

누가 나의 왕인가?”

(스가랴 11 1-17)

 

1.   장차 임할 심판 (1-3)

 

스가랴서는 성경 통독할 읽기는 하겠지만, 크리스천들이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책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멸망에 관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1-2절을 보면, 레바논, 백향목, 잣나무, 바산의 상수리나무, 무성한 숲이 나옵니다. 모든 것들은 인간의 교만을 상징합니다.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3)

 

여기서는 목자들이 망하여 울부짖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유다의 악한 지도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오늘 본문에서 스가랴는 악한 목자들과 다윗 집에서 나오는 참된 목자 사이를 대비시킵니다. 그러면서 참된 목자이신 메시야를 백성들이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2.   선한 목자를 거부하는 백성들 (4-14)

 

4-14절을 보면 메시야를 대하는 문제에 관한 답을 제시해줍니다. 그럼에 있어서, 스가랴는 장차 오실 메시야, 왕의 운명이 어떻게 것인지에 대해 자신이 역할을 맡아서 흉내내는 역할극을 함으로써 그것을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본문 내용이 역할극(role play) 내용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떼를 먹이라” (4)

 

여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당시 유다의 지도자들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차서 자기의 이기적 만족을 위해 백성들을 이용했습니다. 스가랴는 그러한 당시 상황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5)

 

여기 보면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양을 사들인 자들, 양을 자들, 그리고 목자들입니다. 양을 사들인 사람들은 양을 마구 잡아 도살하고도 죄가 없다고 합니다. 양을 돌봐줘야 마땅한 자들은 양을 팔아서 이득을 얻고는 그것으로 자기가 부자가 되었다고 하며, 심지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송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양을 치는 목자들마저도 양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사람들을 각각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6)

 

하나님은 진노하시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을 구해주지도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다음을 보십시오.

 

내가 잡혀 죽을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떼를 먹일새” (7)

 

목자인 하나님의 메시야는, 잘못된 지도자들에게 고통을 당하며 괴로움을 겪는 백성들을 “가련한 양들”이라고 부르시며 불쌍히 여겨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또한 흩어지고 나뉘어 있는 떼를 연합하여 다시 하나로 묶어 주십니다. 7절에 언급된 은총과 연합이라는 막대기는 에스겔 37장에 나온 막대기와 비슷한데, 그것은 장차 세계를 다스리실 통치자, 메시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메시야는 또한 악한 지도자들을 끊어버리십니다.

 

동안에 내가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8)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메시야, 세상을 다스리실 왕을 결국 배척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다스리시는 분을 미워하고 거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0)

 

그들이 그렇게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은총(Favor)이라는 막대기를 꺾어버리십니다.

 

"내가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14)

 

연합(Union)이라는 둘째 막대기도 꺾어버리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은총과 연합이 백성들로부터 끊어졌음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게 결정적인 동기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오늘 핵심 구절입니다.

 

당일에 폐하매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안지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삼십 개를 달아서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1-13)

 

유다 백성들은, 특히 유다 지도자들은, 은총의 막대기가 꺾인 ,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총이 끊어진 것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환영합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스가랴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뭔가 하면, 이제 백성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게 되었으니까 품삯을 계산해서 달라고 하십니다(12). 쉽게 말하면 퇴직금을 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들은 사실 이렇게 나와야 마땅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도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십니까? 어떻게 우리를 버리십니까? 아닙니다. 거두어주십시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우리를 계속해서 다스려주십시오.'

 

그들은 이렇게 주님 앞에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당연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정말 돈이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지금 정말로 돈을 계산해서 달라고 하시는 아니라 마음을 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님께 삼십을 달아서 드립니다.

 

삼십이라는 액수는 출애굽기 21 32절을 보면 자신의 소가 다른 사람의 종을 받아서 죽었을 죽은 종의 주인에게 갚아야 하는 액수입니다. 자신의 소가 남의 종을 죽였어도 삼십만 주면 계산이 끝난다는 말입니다. 이상 사건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책임이 끝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잘됐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돈으로 계산하려 합니다. 돈으로 주님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종을 다루듯이 메시야를 다루려고 합니다. 자기들이 그분의 종인데도 마치 그분이 자기들의 종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은 돈으로 있는, 자기 맘대로 조종할 있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자기 맘대로 고용하고 싶을 고용하고, 싫을 얼마든지 퇴직금 주면서 정리할 있는, 그런 종과 같은 메시야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하나님을 조종하려 합니다.

 

삼십을 가리켜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나를 헤아린 삯”(13)이라고 하십니다. 말씀은 “그들이 내게 알맞은 삯이라고 생각해서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를 돈으로 환산해서 삼십이나 쳐주니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정도다.’라고 비꼬며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을 값으로 매길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혹시 값을 매긴다고 해도 하나님이 겨우 삼십 밖에 되십니까?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삼십으로 해결할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13절에서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그런 돈은 토기장이에게 던지라고 하십니다.

 

말씀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보다 470-480 전에 스가랴를 통해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말씀이 마태복음 26장과 27장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삼십을 달아 주거늘” ( 26:14-15)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대가로 대제사장들이 가룟 유다에게 삼십을 줍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메시야가 삼십에 거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어쩌다 보니 우연히 삼십이 것이 아닙니다. 예언의 성취입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 27:5-7)

 

가룟 유다는 돈을 대제사장들에게 도로 갖다 주는데 그들이 받지 않자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나가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그것이 값이니 성전 금고에 넣으면 된다고 하면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우연히 토기장이의 밭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언의 성취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오늘 스가랴 본문의 말씀이 너무나 정확하게 성취가 것입니다.

 

너무나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것은 사람으로서 일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그냥 아무렇게나 대충 대할 있는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3.   선한 목자를 거부한 무서운 결과 (15-17)

 

결국 하나님의 메시야,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한 목자를 거부한 떼는 어떻게 됩니까?

 

보라 내가 목자를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굽을 찢으리라” (16)

 

여기 보면, 목자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양을 잃어버리고도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흩어져 잃은 양을 찾지도 않습니다. 상처를 입은 양을 고쳐 주지도 않습니다. 튼튼한 양을 먹이지 않아서 야위게 만듭니다. 오히려 살진 양을 골라서 살을 발라 먹고, 발굽까지 갉아 먹습니다. 선한 목자를 거부한 백성은 이런 악하고 우매한 목자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악한 목자도 결국 비참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있을진저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17)

 

주님을 거부한 백성이 맞이하게 되는 운명이 바로 이렇게 비참한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평화와 안전과 번영과 축복과 공동체의 연합을 가져오실 메시야를 원했고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메시야,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로 오셔서 떼인 자기들을 돌봐주려고 하실 , 그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미워해서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삼십으로 계산해서 처리해버렸습니다.

 

그랬습니까? 그토록 고대하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도 그렇게 행동했습니까? 이유는,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이유와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자신들을 다스리시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왕과 주인이 되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기 삶의 왕이요 주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메시야이시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계명을 전하시고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인간은 다른 법이 자기 삶을 다스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일 3:4)

 

죄는 “불법”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불법’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원어로 ‘아노미아(anomia)’입니다. ‘아’는 ‘무’라는 뜻이고 ‘노미아’는 ‘법칙’이라는 뜻이니까, ‘아노미아’는 ‘무법’입니다.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불법’은 ‘무법’이며, ‘무법’이 죄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법’이 무엇입니까? ‘무법천지’라는 말도 있고 ‘무법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법은 법이 없다는 아닙니까? 그러면 무법자는 법이 없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무법자도 법이 있습니다. 뭐가 법입니까? 무법자는 자기가 법인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무법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무법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자기가 법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를 원하여 삼십을 주고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자기 맘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은 불편하니까 자기가 주인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유롭고 즐겁게 있을 같지만, 주님을 거부한 결과는 너무나 무섭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9)

 

이것이 바로 주님의 다스리심을 거부한 모든 시대와 사회와 개인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죽고, 망하고, 싸우면서 서로 잡아먹으려고 으르렁 거립니다. 증오와 범죄와 전쟁과 테러와 불의와 악독과 탐욕으로 서로의 살을 먹으려고 눈을 부릅뜨며 살벌하게 싸웁니다.

 

이러한 모습이 메시야를 거부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사회와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됩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그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그냥 죄에 내버려두십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장 무서운 심판은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맞아 죽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주 유럽에서 비행기 부기장이 고의적으로 산에 비행기를 추락시켜 150명이 죽었는데, 그런 것이 무서운 심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테러리스트에게 잡혀서 죽거나 폭발 테러로 인해 자리에 있다가 맞아서 죽는 것도 무서운 심판이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심판은, 아무리 죄를 지으며 살아도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도 아무 일이 일어난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두려워해야 합니다.

 

삼십을 주고 주님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자기 맘대로 살도록 그냥 두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의하면, 그런 식의 자유는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 도리어 멸망과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사람들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골짜기를 향해 언덕을 내달리는 자동차로 달리면서 자기는 이렇게 빠르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 가면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텐데 말입니다. 그럴 막아주는 것이 축복이지, 그냥 두면 멸망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거부하는 사람은 멸망의 길로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나가는 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라]

 

여기 있는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도 실패하고 죄를 짓고 잘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어서가 아닙니다. 분명히 믿습니다. 믿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삶이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물에 빠졌는데 누가 과감히 물속에 들어와 허우적거리는 나를 구해주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사람은 죽어가던 나를 살려준 구세주입니다.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감사하면서 매일 전화하고 찾아가서 인사합니다. 명절 때마다 선물을 들고 찾아가서 감사를 표현합니다. 달러, 달러나 되는 선물을 사서 드릴 약간 아까운 마음이 때도 있지만, 생명을 구해준 분이라고 생각하며 선물을 드립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뭐라고 하겠습니까? “야, 사람 인간성이 너무 괜찮다. 아무리 물에서 구해줬다고 저렇게 잘할 수가 있을까? 사람이 정도는 돼야지.

 

그분 때문에 내가 살아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물에 빠져 죽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그토록 감사하면서 선물도 드리고 감사를 표현합니다.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근사하게 차려 대접도 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집에 손님일 뿐입니다.

 

나는 그분의 기준대로, 그분의 말대로, 그분의 생각대로 내가 살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이 집의 실내장식을 이렇게 바꾸라고 한다 해서 그대로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참고만 하면 됩니다. 나는 단지 나를 구해준 그분에게 선물을 사드리고, 찾아가고, 초대해서 대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나는 방식대로 삶을 계속 살아가면 되는 것이고, 그분은 그분 방식대로 살면 됩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식으로 예수를 믿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매일 감사 기도도 드리고, 때에 따라 십일조 헌금, 주일 헌금, 감사 헌금, 부활절 헌금, 추수감사절 헌금, 성탄절 헌금, 건축 헌금, 선교 헌금, 여러 지정 헌금 등을 열심히 드리면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 일도 시간 나는 대로 합니다. 예배에도 열심히 참석합니다.

이런 식으로 교회 생활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아주 신앙이 좋다고 칭찬해줍니다.

 

물론 모두 아주 귀한 일들이고 우리가 해야 일들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들을 하면서도 삶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여전히 생각과 판단인 것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보십시오.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하십니까?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결정을 내리십니까? 아닙니다. 전부 주관과 판단으로 결정합니다. 자기가 좋은 대로 결정합니다.

 

그러니 나를 다스리시는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삶에서 손님일 뿐이고 내가 삶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참고만 하면 되는 것이지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아니라 ‘내가복음’입니다.

 

물론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삼십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청산하는 악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매순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않는 , 우리의 인생은 죽거나 망하거나 피차 살을 먹는 것과 같은 삶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9).

 

인생이 피곤합니까?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집니까? 교회생활이 즐겁지 않고 예배 참석은 부담이 되며 사역은 짐이 됩니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까?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다스리기 때문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기준대로 살려고 애쓰기 때문은 아닙니까?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막대기 개가 있는데, 하나는 은총이며 하나는 연합입니다(7). 진정으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 삶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을 ,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며 있습니다. 동시에 주님 안에서 다른 지체들과 참된 공동체를 이루어 연합을 누리며 있습니다.

 

개인의 삶의 풍성함과 아름다운 공동체의 연합은, 오직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총과 연합을 누리며 살게 하시기 위해 땅에 오셔서 섬기셨고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오늘 사실을 기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과 아름다운 연합을 누리며 나아가는 우리 개인과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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