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HOME > 설교와칼럼 > 주일설교방송

 

설교 동영상: https://youtu.be/vVcL0rhRv_g?t=1575

 

 

2020118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5

함께 하시며 모두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

(창세기 3133~42)

 

[들어가는 말]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오래 전에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거짓말들을 모아놓은 글을 보고 재미있어 적어놓았습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 주사 맞으면 아플까봐 무서워서 우는 아이에게 간호사: “이 주사는 하나도 안 아파요.”

- 수석합격생들: “잠은 충분히 잤고, 교과서 위주로 학교 공부에만 충실했습니다.”

- 미스코리아: “외모보다는 내적인 미가 더 중요합니다.”

- 웨딩사진사들: 신부를 보고 제가 본 신부들 중에 가장 아름다우세요.”

- 중국집: “왜 이렇게 안 와요?”라고 하면 예예, 5분 전에 출발했습니다.”

- 남대문 시장 상인: “이거 정말 밑지고 파는 거예요!”

- 정치가: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 약장수: “이 약 한 번 잡솨 봐! 팔 다리 어깨 허리 간장 위장 소장 대장 다 시원해져!”

- 학교 조회 때의 교장선생님과 설교 때 목회자의 공통점: “이제 끝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슬픈 거짓말도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엄마는 아까 먹어서 배불러. 그러니까 많이 먹어.” 그런 의미로 나온 노래도 있습니다. 오래 전 유명한 그룹 지오디(g.o.d.)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거짓말인데, 알고도 속는 게 있고, 정말 모르고 속는 것도 있습니다.

 

 

1.   라헬에게 속는 라반

 

지난번 살펴보았듯이, 야곱은 20년 동안 종살이를 하던 라반의 집에서 탈출해 나왔지만, 라반은 야곱을 결코 그냥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야곱을 다시 종으로 삼거나 그게 안 되면 해코지하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그를 쫓아왔고, 야곱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문턱에서 따라 잡혔습니다. 그때 위기에 처한 야곱을 누가 구해주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밤에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에게 경고하시고 야곱을 지켜주셨습니다.

 

쫓아온 라반은 야곱에게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데, 왜 자기 드라빔을 도둑질했느냐고 따졌습니다. 사실 그것을 훔친 사람은 라헬이었지만 야곱은 그것을 모르고, 누가 훔쳤든지 그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까지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라반은 야곱의 가족들의 짐을 샅샅이 뒤집니다.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33)

 

라반은 먼저 야곱의 장막을 뒤지고, 거기 없으니까 그 다음으로 레아의 장막과 두 여종(빌하, 실바)의 장막도 뒤집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 찾습니다. 이제 라헬은 자기가 훔친 드라빔이 발각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합니까?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34-35)

 

그러나 라반은 라헬에게서 드라빔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라헬은 자기 장막에 라반이 들어와서 발각되기 직전에 낙타 안장 밑에 드라빔을 감추고 그 위에 앉아서 마침 자기가 월경 중이기 때문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그렇게 사이즈가 큰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 사람들은 생리 중인 여성이 접촉한 것을 만지거나 거기에 닿는 것을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에, 라헬은 그것을 이용해서 아버지를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라헬이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서 배웠겠습니까?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라반은 그것이 라헬의 거짓말인 줄 모르고 깜빡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라반이 누구입니까? 속임수로는 아무도 당할 자가 없을 정도로 속임수에 능한 사람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사기꾼 중의 사기꾼이고, 누구보다 더 약삭빠른 사람입니다. 그 동안 야곱에 대해서도 얼마나 많이 속였습니까? 본문에서 야곱이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수없이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라반이 라헬에게 속고 맙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이고 도망쳐 온 사람입니다. 그렇게 속이고 도망 왔는데, 속이고 온 사람이 라반에게 계속해서 속임을 당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라반은 그 동안 자기 위치를 이용하고 또 아무것도 없는 야곱의 처지를 이용해서 자기 마음대로 야곱을 속여가며 아무 때나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바꾸어가며 이득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좋은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입니다.

 

그러던 라반이 이제 자기 딸 라헬에게 어이없이 속아 넘어갑니다. 사실 라반이 이렇게 쉽게 속는다는 것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남을 잘 속이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의심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남을 속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자기를 속일까봐 조심하고 의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라반이 이렇게 어이없이 속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가리신 것입니다. 잠깐 일어나보라고 할 수도 있고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냥 갔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야곱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이곳까지 따라온 라반을 하나님이 막아주셨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왔다가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고, 라반은 또 라헬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이렇게 남을 속이면 자기도 언젠가 속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것은 불교의 업보사상 같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성경의 원리입니다. 사람은 뿌린 것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그런 이치로 만드셨습니다. 사과를 심었으면 사과가 나는 것이지, 거기에 수박이나 바나나나 다른 것이 나지 않습니다. 쌀을 심으면 쌀이 나는 것이지, 거기에 보리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심은 대로 나는 것인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주변에 유익을 끼치고 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잠시는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볼 때는 일이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유익을 얻고 복을 얻게 해주십니다.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자기 이익을 위해 남들을 속이고 살살 빼먹는 사람, 남들을 등쳐먹는 사람이 당장은 잘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다 보시고 언젠가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씨를 뿌리고 있는가를 잘 점검해야겠습니다. 제일 중요하다고 하신 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나는 어떤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이렇게 나와서 예배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또 열심히 성경을 묵상하고 읽고 기도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하나님을 붙들고 나아가려 애쓰는 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혹시 뿌리는 게 없는 건 아닙니까?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좋은 것을 뿌린다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고, 나쁜 것을 뿌린다면 나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악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엉망으로 하면서 원망과 불평만 하고, 또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미움과 증오로만 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어쩌다 그럴 수는 있지만 대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뭐냐 하면, 좋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나쁜 씨를 뿌리지도 않고, 아무 씨도 뿌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더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요한계시록에서 덥든지 차든지 하라. 미지근하면 토해버린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뿌린 게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혀 거두는 것이 없게 됩니다.

 

 

2.   라반이 야곱에게 저지른 일

 

왜 라반은 야곱을 여기까지 쫓아왔습니까? 그것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마디로 말해서 라반은 야곱을 도로 자기 밑에 두고 싶었던 겁니다. 지난 20년 동안 라반이 겉으로는 야곱에게 아주 잘해주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야곱을 꽉 옭아매면서 숨이 막히게 대했고 그렇게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야곱이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지 못하게 방해를 한 겁니다.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그의 삶의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자신의 삶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은 겁니다.

 

야곱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입니까? 야곱이 추구하며 나아가야 할 삶의 길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결코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그의 진짜 모습이 될 수 없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계속 종살이하며 양이나 염소를 치는 것도 아닙니다.

 

야곱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삶의 방향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예배자의 삶입니다. 그는 도망오던 길에 하나님을 만났는데,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모습이 야곱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기게 되는 역사를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진짜 모습을 찾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양 치는 사람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물론 실제로 목축을 했지만), 진짜 목적은 그를 통해 모든 민족을 복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원래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바로 그러한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는데(“너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얻을 것이다.”), 그 부르심이 그 아들 이삭으로 내려가고 또 이제는 야곱으로 이어지도록 믿음의 조상으로 야곱을 부르셨습니다.

 

에서도 충분히 그 길로 갈 수 있는 장자였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세상길로 가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그 길을 부족한 가운데 붙들었던 야곱에게 그 흐름이 넘어가게 된 겁니다.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며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는 삶이야말로 야곱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을 방해한 사람이 라반이었다는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이 그렇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막았습니다. 아마도 라반은 자기가 그렇게 야곱이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데 바빠서 야곱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훼방꾼이 되고 말았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가진 재능을 오직 자기를 위해 쓰도록 그를 이용하면서 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나쁜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 뒤에 누가 있었겠습니까? 바로 사탄이 있었습니다. 라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이용을 당한 겁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야곱을 이용하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사탄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었던 겁니다.

 

사탄은 야곱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 즉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게 되는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려고 라반을 이용한 겁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고 그 밑에 열두 지파로 내려가면서 죽 내려가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시지 않습니까? 바로 그러한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사탄이 라반을 이용하여 방해공작을 편 것입니다.

 

대개 영화 같은 데 보면 사탄이 어떻게 나옵니까? 입에는 피가 묻어 있고, 이빨이 뾰족하고머리에 뿔이 달려 있고, 음흉하고 무서운 모습이 아닙니까? 조금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이 빨간 옷을 입고 삼지창 들고 꼬리가 달린 정도입니다. 그렇게 괴물 같고 징그러운 모습으로 나오지만, 만약 사탄이 정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면 모를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믿는다면 오해입니다.

 

마귀는 절대 그런 혐오스럽고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아주 달콤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때로는 아주 인자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옵니다. 말만 하면 다 들어줄 것 같은 인자한 산타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그렇게 잘해줄 수 없는 다정다감한 오빠의 모습으로, 아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또 정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정의의 사도의 모습으로, 아주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유혹합니다.

 

마귀라고 해서 우리가 느끼기에 악한 일만 하고 해만 끼치는 것이 아닙니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마귀도 사랑을 줄 줄 압니다. 그런데 마귀가 주는 사랑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분명히 잘해주기는 잘해주는데, 상대방을 자기 밑에 들어오게 해서 철저히 자기를 의존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의 종이 되게 하여 자기를 완전히 의존하고 말을 잘 듣게 되면, 그때부터 그 인생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제가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신 예수님에게 사탄이 제안한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4:9).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이 자기의 소유인 것처럼 말하는데, 바로 그것이 속임수입니다. 어떻게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마귀에게 절하며 충성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영국의 문학가이자 크리스천 지성인이었던 씨 에스 루이스(C. S. Lewis)는 많은 책들을 썼습니다.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나니아 연대기>와 같은 책을 썼습니다. 그가 쓴 책들 중에 아주 특이한 책이 있는데, 바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입니다. 루이스는 이 책을 <반지의 제왕>의 작가이자 친구인 톨킨(Tolkien)에게 바쳤습니다.

 

이 책은 악마인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인 웜우드에게 보내는 31통의 편지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루이스는 마귀가 가진 목표와 전략과 전술을 낱낱이 파헤칩니다. 마귀의 입장에서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를 아주 잘 썼습니다.

 

각 악령이 관리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환자인데, 웜우드의 환자가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때 스크루테이프는 조카 웜우드에게 그의 환자와 그의 어머니 사이의 관계를 잘 이용하라고 충고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환자의 어머니를 맡고 있는 글루보즈 동지와 긴밀한 연락 관계를 유지하면서, 날마다 아픈 데를 찔러가며 상대방의 신경을 긁어대는 돈독한 습관을 그 집안에 들여 놓아라. 두 인간이 오랜 세월 함께 살다 보면 서로 거슬리는 말투나 표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너는 그 점을 노려야 해. 너의 환자는 어머니가 눈썹을 치켜 올리는 표정을 어렸을 때부터 몹시 싫어했으니까, 바로 그 표정을 네 환자의 의식 속에 최대한 부각시키면서 그게 얼마나 꼴 보기 싫은지를 일깨워주어라. 그리고 자기가 그 표정을 싫어한다는 것을 어머니가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고 믿게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살살 두 사람의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사탄의 사랑의 특징은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줄 테니 나만 따르면 돼.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꾸 우리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하여 바른 분별력을 잃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말하는 것을 남들이 들으면 궤변인데 자기는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탄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고 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말만 듣게 해서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점점 우리를 속박하고 억압하는 가운데 관계를 깨뜨립니다. 그래서 자꾸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어떤 생각이 들 때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각인지, 아니면 사탄의 유혹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의 특징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자꾸 세워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입니다.

 

반면에 사탄이 주는 생각은 관계를 깨는 겁니다. 하나님과 자꾸 멀리 하게 합니다. 뭔가 잘 풀리고 바쁘게 해서 하나님과 자꾸 멀어지게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는 것,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깨는 것이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더욱 무서운 것은,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탄의 특징은 이기심입니다. 철저히 자기 이익만을 챙깁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물리면 이기적이 되고, 자기 밖에 모르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깨어져 갑니다. 자꾸 바빠지고 할 일이 있고 그러면서 점점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하고 싶지 않고 자꾸 빠지게 된다면, 지금 사탄의 유혹이 임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과 자꾸 만나는 것이 귀찮고 섬기기도 싫고 모임에 나가고 싫다면 지금 마귀의 유혹이 임하고 있는 겁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 펀드(fund) 열풍이 불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요즘은 더 심하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펀드에 열광하며 너도나도 다 가입을 합니까?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결국 그것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겁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지금 세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라는 우상에게 먹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릅니다. 별로 느끼지 못하고, 그것이 좋은 것인 줄 착각합니다. 자기가 돈을 버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자기가 돈의 노예가 되고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마귀는 겉으로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우리를 억압하여 우리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하게 해서 잘못된 관계에 자꾸 빠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잘 분별하면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이것이 누구의 음성인지 분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귀는 자기에게 절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예수님을 유혹한 것처럼, 우리도 유혹합니다. ‘지금 네가 한 번 뒤쳐지면 영원히 낙오자가 될 수 있으니까 빨리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챙기고 바쁘게 움직여야지, 언제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 보고 이웃 사랑과 섬김을 언제 하느냐? 그런 건 나중에 하고 지금은 이것을 빨리빨리 챙겨야지!’

 

바로 그런 것이 야곱에게 라반이 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귀의 속임수였습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점점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애쓰는 사회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시대정신을 거슬러,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복을 나누어주는 주님의 목적을 이루도록 인도해주십니다.

 

지금 점점 자기밖에 모르는 세상 속에서 잠깐 시간을 내어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이 바로 희생이고 사랑의 실천입니다. 엄청나게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작은 실천입니다. 그냥 시간을 내어주는 것, 그리고 어려움을 당한 VIP나 지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 역시 이웃 사랑의 실천이 아닙니까?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원하시는 일이고, 우리에게서도 원하시는 일입니다.

 

 

3.   야곱의 분노와 그의 결론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36-37)

 

이걸 보면, 야곱이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드라빔이 아무에게서도 나오지 않자, 라반에게 화를 내며 책망을 합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이런 식으로 라반에게 감히 대든 적이 없습니다. 그 동안은 자신의 모든 것이 라반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히 대들지 못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라반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내들과 아이들을 다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고, 품삯을 받았지만 라반의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지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야곱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빈손으로 이곳까지 왔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은 라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했던 겁니다.

 

그래서 아무 소리를 하지 못했던 야곱이 지금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야곱은 무엇을 믿고 이렇게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까? 지금 성질대로 화를 내는 겁니까? 그것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라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크신 분, 즉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점이 있고 아롱지고 검은 양과 염소가 하나도 없는 데서 그런 것들만 계속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돌보시는구나.’ 하는 것을 정말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라반이 자기를 해치러 왔는데 하나님께서 막아주셨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서 욕심을 따라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자기를 지켜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앞의 11~13절에 보면 야곱이 꿈을 꾸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 그 꿈을 꾸기 전까지는 그래도 라반 덕에 이 정도라도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똑똑하고 괜찮은 사람이니까 저렇게 지독한 라반 밑에서 이 정도라도 견디며 많은 양 떼를 얻은 것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라반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이 있으면서도 미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에는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신 거구나. 라반 때문에 이 정도라도 된 것이 아니었구나.’ 자기가 똑똑하고 잘나서 이 정도 부자가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알고 보니, 깨닫고 보니, 모든 것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38-40)

 

야곱이 울분을 토하는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라반이 샅샅이 뒤졌지만, 자기는 그의 물건을 하나도 훔치지 않았다고 외칩니다. 오히려 찢겨 죽거나 도둑맞은 양이 있었으면 자기의 것으로 보충하라고 라반이 요구했기 때문에 자기가 했다는 겁니다. 그것을 알지 않느냐고 지적을 합니다. 또 야곱은 자기가 재산을 모은 것에 대해 라반이 의심을 품은 것 같은데, 그러면 어디 한 번 따져보자고 말합니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1)

 

그러니까 20년 동안 라반의 집에 있었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년쯤 지났을 때 요셉이 태어났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42)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주셨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면서 나를 착취하고 힘들게 했지만,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시면서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셨고 나를 보호해주셨다.’라는 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매순간 나와 함께 하시며 모든 것을 다 보시며 나를 도와주고 지켜주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깨닫기 전에는 어떻습니까? 일이 잘되면 내가 잘나서 그런가 보다. 똑똑해서 잘되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미국에 와서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내가 그래도 잘나서 미국까지 와 좋은 직장에 다니며 성공했다.’ 또는 내 머리가 좋아서 재테크를 잘해서 집도 장만하고 돈도 많이 모았다.’ ‘내가 자녀교육에 일가견이 있어서 아이들이 잘 크고 공부도 잘한다.’ ‘내가 인격이 훌륭해서 아이들이 말을 잘 듣고 가정도 평안하고 이웃과 관계도 좋다.’ ‘내가 믿음이 좋아서 교회생활도 잘하고 봉사도 잘한다.’ ‘내가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고 열심히 운동을 해서 이렇게 건강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정말 잘나서, 괜찮은 사람이라서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여러분, 내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돈을 잘 벌고 잘 사는 겁니까? 직장에서 윗사람 눈에 들었기 때문에 인정을 받는 겁니까? 내가 머리를 잘 돌려서 투자한 것에 이익을 얻고, 자녀들도 잘 자라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솔직히 한 번 돌아보십시오.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이 인도해주지 않으셨다면, 이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무사히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동안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며 지금도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자녀만 해도 그렇습니다. 자녀가 학교에 가기 위해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스쿨버스를 타는 순간, 운전하기 위해 차에 타는 순간, 우리 손을 이미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안전하게 지금까지 잘 지냅니까? 이게 어떻게 다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성공한 사람들 중에 크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열심히 해서 다 이렇게 됐다.’라고 끝까지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내가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 힘으로만 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정말 솔직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만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뭔가 신이 역사하셔서 된 것 같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솔직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게 자기 힘으로만 됐다고 한다면 솔직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자기 힘으로만 됩니까? 어느 순간 이게 꼭 되어야 하는데 갑자기 누구를 탁 만나는 것, 또 내가 어떤 직장을 원하는데 그 순간 오프닝이 나는 것이 어떻게 자기가 하는 일입니까? 어디서 갑자기 전화가 오고 갑자기 연락이 와서 일이 잘 풀리는 것이 어떻게 내가 잘나서 되는 일입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잘 모를 때에도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왜 그렇게 해주십니까? 빨리 삶의 바른 자리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벧엘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참된 예배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누구인지를 깨닫고, 철저히 이기적인 자신의 삶을 중단하고, 참된 복의 근원으로서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나누어주는 사명자의 삶을 살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역대 대통령이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인데,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40대 이후에는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실제로 사람의 삶의 태도와 자세가 일에서 나타나는데, 일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얼굴과도 같습니다. 사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내면의 상태가 얼굴로 드러나지 않습니까?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남들이 보면 무슨 일 있어요?’라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나타나는 겁니다. 또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싱글벙글 웃고 있습니다. 자기는 모릅니다. 그래서 기분 좋은 일 있어요?’라고 옆에서 물어봅니다. 실제로 얼굴이라는 말은 영혼(soul)을 뜻하는 과 호흡함(breathing)을 뜻하는 이 합쳐서 된 단어입니다.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나타내는 창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삶의 풍성함은 우리 영혼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안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가져본 사람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가 솔로몬인데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건강하면 아무리 몸이 아프거나 상황이 나빠도 풍성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영혼이 건강하면 그것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 반대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영혼이 건강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며 자기 삶의 진정한 사명과 목적을 바로 알고 그 길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살 때 우리는 풍성함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배가 바다 위를 떠가는데, 항해하는 배와 표류하는 배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목적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배 한 척은 가기로 예정된 항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배는 길을 잃어버리고 아무런 기약 없이 그저 물길을 따라 이리저리 떠다니는 겁니다. 항해는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지만, 표류는 목적지가 분명치 않게 그냥 정처 없이 떠다니는 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둘 다 물 위를 가고 있으니까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릅니다.

 

여러분, 내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항해 중입니까, 아니면 길을 잃고 표류 중입니까? 표류하는 배는 아무리 거대하고 모든 것을 다 갖춘 초호화판 배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많이 있는 것에 달린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 즉 목적지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사명이란 복의 근원으로 지금 있는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복을 누리고 감사하는 가운데 그것을 나누어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참된 복의 근원으로서의 삶을 살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풍성하게 누리고 또 그 복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9 똑똑하게 보이지만 어리석은 자 (눅 12:13-21) - 예수님의 비유 13 (04/21/2024) admin_p 2024.04.21 82
468 그 간청함을 인하여 (눅 11:5-13) - 예수님의 비유 12 (04/14/2024) admin_p 2024.04.14 86
467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25-37) - 예수님의 비유 11 (04/07/2024) admin_p 2024.04.07 98
466 울고 있나요 (요 20:11-18) - 부활절 메시지 (03/31/2024) admin_p 2024.03.31 118
465 겸손한 왕으로 오신 예수를 따르라 (마 21:1-11) - 종려주일 메시지 (03/24/2024) admin_p 2024.03.24 121
464 청함을 받은 자인가, 택함을 입은 자인가 (마 2:1-14) - 예수님의 비유 10 (03/17/2024) admin_p 2024.03.17 144
463 순종으로 인한 고난은 실패가 아니다 (마 21:33-46) - 예수님의 비유 9 (03/10/2024) admin_p 2024.03.10 247
462 맏아들인가, 둘째 아들인가 (마 21:28-32) - 예수님의 비유 8 (03/03/2024) admin_p 2024.03.03 193
461 천국 상은 자기 공로 때문이 아니다 (마 20:1-16) - 예수님의 비유 7 (02/25/2024) admin_p 2024.02.25 166
460 용서할 줄 모르는 자의 최후 (마 18:21-35) - 예수님의 비유 6 (02/18/2024) admin_p 2024.02.18 214
459 최고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마 13:44-46) - 예수님의 비유 5 (02/11/2024) admin_p 2024.02.11 212
458 겨자씨 한 알과 누룩 같은 천국 (마 13:31-33) - 예수님의 비유 4 (02/04/2024) admin_p 2024.02.04 174
457 곡식에 섞여 있는 가라지 처리법 (마 13:24-30, 36-43) - 예수님의 비유 3 (01/28/2024) admin_p 2024.01.28 238
456 좋은 땅으로 사는 길 (마 13:1-9, 19-23) - 예수님의 비유 2 (01/21/2024) admin_p 2024.01.21 256
455 만족이 없는 세대 (마 11:16-19) - 예수님의 비유 1 (01/14/2024) admin_p 2024.01.14 360
454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신 4:32-40) - 신년 메시지 (01/07/2023) admin_p 2024.01.07 324
453 양인가, 염소인가 (마 25:31-46) - 새해맞이감사예배/영원을 준비하는 인생 5 (12/31/23) admin_p 2024.01.03 268
452 착하고 충성된 종인가, 악하고 게으른 종인가 (마 25:14-30) - 영원을 준비하는 인생 4 (12/31/2023) admin_p 2023.12.31 241
451 작은 베들레헴에서 나올 위대한 통치자 (미 5:2-6) - 성탄절 메시지 (12/24/2023) admin_p 2023.12.24 171
450 미련한 자인가, 슬기 있는 자인가 (마 25:1-13) - 영원을 준비하는 인생 3 (12/17/2023) admin_p 2023.12.17 271


9480 S. Old State Rd, Lewis Center, OH 43035 / Tel: (614) 433-7155 / E-mail: kpcco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