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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20일 수요예배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6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걷는 축복

(이사야 556~13)

 

1.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길을 보라

 

삶이 어려울 때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은 길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의 탓, 사회 탓, 나라 탓, 시대 탓, 정치인들 탓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남 탓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길이 없어서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시각이 너무 좁아서 그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보려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7:7, )

 

문을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문이 열릴 것이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우리가 두드린 그 문이 아니라 다른 문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나 선입관을 보리고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하며, 그렇게 되면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길,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신 비결이 기도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내시는 새로운 길이 보이게 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6)

 

여기서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은 그냥 대충 찾는 게 아니라 필사적으로 찾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필사적으로 찾는 것입니다. 기도의 핵심도 하나님을 갈급해하며 간절히 찾는 목마름입니다. 응답을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다는 안일한 태도로 하는 것은 진정한 기도가 아닙니다. 물론 평소에는 하나님과 데이트를 하며 즐겁게 대화를 하지만, 간절히 외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응답해주시면 좋고 안 해주셔도 좋다는 식으로 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러면 언제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까? “만날 만한 때에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놓치지 말고 그분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항상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특히 나의 인생을 바꿀 만한 어떤 전환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순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지고 내 인생에 놀라운 일이 될 수 있는 때는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닫히게 됩니다. 그 전에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하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마음에 탁 와 닿는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이며 하나님을 붙잡을 때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타이밍입니다. 성경은 은혜를 받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때가 있고 날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때가 지나면 다시 안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있어 타이밍이 아주 중요합니다. 부흥의 때, 은혜의 때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실 때가 있는데, 그때 딴 짓을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는 그때 믿음으로 반응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한 달 후에 반응하기를 바라셨다면 한 달 후에 말씀을 주시지, 지금 주시지 않습니다. 말씀을 주시는 그때가 바로 말씀에 반응해야 할 때입니다. 믿음으로 결단하며 나아갈 때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않습니다. 이미 주신 구원의 능력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신자들 중의 다수가 사실은 하나님을 그렇게 찾지 않습니다. 요즘 신앙생활이 참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여행을 가보면 더욱 그런 것을 느낍니다. 여행을 가면 자기가 다니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주일이 되어 근처의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끔 우리 교회에도 여행이나 방문을 와서 주일에 오는 분들이 있는데 참 귀한 분들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소한만 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일에 한 시간 정도 왔다 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한국이나 대도시의 대형교회들을 보면 사람이 많다 보니까 주일예배가 1, 2... 7부까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파킹을 할 곳이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마음껏 예배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봐 가면서 예배를 하다가 조금 길어지면 그냥 자르고 끝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 예배에 온 사람들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 집중하고 찾으며 나아가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또 요즘 세상에서 주는 재미와 쾌락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락거리가 너무 많습니다. 스마트폰만 하나 있으면 앉은 자리에서 이것저것 척척 하고, 뉴스도 보고 드라마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재미있는 게 너무 많다 보니까 교회가 별로 재미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별로 찾지 않고, 또 자기 일에 바빠서 하나님을 별로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주여, 주여라고는 하지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정말 믿는 사람이라고 하신 겁니다. 그래서 구원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고, 안 믿는 사람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구원을 받았다고는 하는데 그 구원의 능력을 맛보지는 못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최고의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이 주는 시시한 즐거움 정도로 만족하겠습니까? 만약 세상이 너무 재미있고 예배하며 교회에 오는 것보다 다른 데서 노는 게 더 재미있다면, 진정한 신자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정말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정말 맛본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지만,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맛본 사람이라면 세상의 재미에 계속 취해서 살 수 없습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했는데, 부르라는 말은 큰소리로 절박하게 부르짖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부르되,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 때 부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지만 특히 하나님이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다고 내가 느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가까이 계십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를 놓치지 말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더 개인적으로 기도와 큐티와 말씀 읽기에 힘쓸 뿐 아니라, 주일예배를 비롯해서 새벽기도와 수요예배 등 공적 예배를 통해 계속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길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한다는 것은 간절하고 절박하고 부지런하게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가까이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멀리 느껴진다면, 기도의 불이 식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 시들해졌다면 바로 그것이 기도의 불이 식었다는 표시가 됩니다. 물론 교회에 나오기만 한다고 기도의 불이 뜨거운 것은 아니지만, 성령 충만하여 기도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 사람은 교회, 즉 주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오는 것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같이 예배하고 같이 교제하고 서로 봉사하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곧 이웃 사랑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불이 붙은 사람은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기도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혼자도 기도해야 하는데, 혼자 기도하다가 힘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형제자매들이 손을 잡아주고 함께 기도해줄 때입니다. 잘 보십시오. “너희는”(6)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면 중간에 지쳐도 다른 사람들의 기도가 받쳐 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공동체가 필요하고, 그래서 주신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혼자 하는 신앙생활이란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간절하고 강력한 교회 공동체의 합심기도를 통해 이 힘든 시대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불같은 합심기도에 특별한 응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18:19-20, )

 

 

2.   회개할 때 보이는 하나님의 길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올 때 한 가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7)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악인의 길불의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악인의 길은 죄의 종이 되어 죄에게 순종하던 옛 사람의 생활방식, 세상적인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불의한 생각은 세상 속에 살면서 물들기 쉬운 그 도시의 음란하고 폭력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그런 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얼마나 세상의 사고방식에 물들고 전염되어 돈이나 인맥이나 거짓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까? 그렇게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올 때 하나님이 기적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원하며 응답을 간구하지만, 죄를 지닌 채로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죄를 끌어안은 채 하나님의 길을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죄를 버리느냐 안 버리느냐, 이것이 영적인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알더라도 죄를 끌어안고서는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행위로 나타나기 전에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의 뿌리가 되는 생각부터 손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고 용서하시지만, 죄를 끌어안고 버리지 않는 사람을 그대로 두지는 않으십니다. 그것을 버리고 따르게 해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주일예배 첫 곡의 가사와 같이 내 모습 이대로나를 받아주시고 사랑해주십니다. 그렇지만 내 모습 이대로 왔다가 그대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변화되어 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의 길을 가고 있다면 돌아서야 하고, 불의한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18:31-32, )

 

죄를 버리지 않으면 죽을 것이고 마음과 영이 새로워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길을 가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는 버리고 채우는 것입니다. 죄를 버리고 은혜를 채우는 것이며,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채우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 용서하시고 죄가 씻겨나갈 것을 약속해주십니다. 회개가 없으면 회복도 위로도 없습니다. 회개 없는 새 역사는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할 때 새 역사가 열립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부어주십니다. 첫째, 긍휼히 여겨주실 것이고, 둘째, 너그럽게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복을 잘 모르거나 믿지 못해서 사람들이 회개를 망설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미 용서하셨고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회개하라고 하시는 것은 심판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초심을 다시 찾는 길입니다.

 

 

3.   하나님이 내시는 길의 특징

 

1)  우리의 길과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길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8-9)

 

남 유다가 망하면서 바벨론으로 끌려와 포로생활을 하던 유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런 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을 배신한 자기들의 죄를 하나님이 절대 용서해주지 않으실 것 같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다 무너지고 성전이 다 무너진 것, 또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다 보았기 때문에, 이제 다 끝났다고 느껴졌습니다.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더라도 막강한 바벨론이 무너질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또 바벨론이 무너지고 새 제국이 일어나도 포로인 자기들을 풀어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길이 안 보였습니다.

 

사실 인간의 상식으로는 그들의 의심과 염려와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신가 고민하고 염려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하나도 고민이나 염려를 안 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 대신 걱정을 해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수준의 답을 갖고 계십니다. 길이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볼 때 없는 것이지, 하나님의 차원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수백, 수천, 수만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박한 상황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어떻게 살려주시고 풀어주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못 보는 수가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이 펼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성숙한 사람, 소위 믿음이 좋다는 사람의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자기 생각보다 차원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삶이 풀리지 않아도 결코 섣불리 낙담하거나 좌절하거나 다른 길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계획한 대로 척척 다 된 것이 얼마나 됩니까? 처음부터 나는 콜럼버스에 사는 것이 내 비전이다.’라고 하며 오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여기 살고 있습니다. 미래도 똑같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풀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되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저렇게 되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저렇게 되는 게 이렇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 생각에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반드시 열려야 하는데 닫히고, 이때는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서 괴로움을 겪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과 내 계획보다 훨씬 더 높은 길을 이미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장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답답하고 괴로울 수 있지만, 세월이 지난 다음에 보면 바로 그것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선하고 은혜로운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꾸준히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다 보면, 신실하게 가다 보면, 놀랍게 인도하신 것을 깨닫게 되고 축복을 받으며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슬람권 선교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 지역에는 선교사님들이 선교사 비자로 있는 분은 없습니다. 모두 다른 비자를 받고 들어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여전히 어려운 사역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중동 지역에서 직접 선교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의 수보다 필리핀 가정부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의 수가 더 많다는 겁니다. 누가 이런 것을 이전에 생각할 수 있었습니까?

 

또한 유럽 나라들에 이슬람 세력이 커지고 무슬림 인구가 확산되는 것에 대해 많은 크리스천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아파의 중심인 이란 같이 철옹성과 같은 이슬람 국가 안에 지하교인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독일에 이민을 온 이란 사람들이 매년 수천 명씩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세례를 안 받고 있는데, 무슬림이던 이란 사람들이 수천 명씩 세례를 받으니, 그것이 독일 사람들에게 충격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무너지지 않고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단순히 다른 게 아니라 차원이 전혀 다르고 엄청나게 높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의 길이 틀렸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대신 우리는 항상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다면 항상 제 것을 없던 걸로 해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해주십시오.’

 

 

2)  말씀이 성취되는 길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10-11)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적셔서 식물을 자라게 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를 회복시키고 부흥시키기 위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우리는 그 말씀이 우리 삶에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지금의 상황이 어둡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을 동원하셔서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그냥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의 눈으로 보고 있으면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어요?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교회 일도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어떻게 제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환경이 혼란스럽고 힘들더라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상황을 자기 눈으로만 보고 함부로 미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높은 계획이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내가 처한 상황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 상황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3)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길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12)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받은 사람들,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변화된 사람들, 또 기도의 응답을 받고 회복된 사람들은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12절의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너무 충만해서 온 세상이 노래하고 춤추며 손뼉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별로 기쁠 일이 없습니다. 큐티를 할 때 기록을 해놓는데, 몇 년이 지나면 같은 본문으로 큐티를 하게 됩니다. 그럴 때는 이전에 뭐라고 썼는지 볼 때가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 지금은 너무 불경기다.’라고 썼습니다. 몇 년 후 또 같은 본문이 되어서 보면 또 지금은 너무 불경기다.’라고 썼습니다. 최근에 또 같은 본문을 쓸 때도 다시 지금은 너무 불경기다.’라고 씁니다. 그러니까 항상 불경기입니다. 뉴스를 보면 항상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는 이야기입니다. 또 욕심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어서 우리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 받고 날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초가삼간에도 만족하고, 병든 몸으로도 찬양하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삶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3)

 

가시나무와 찔레는 심판과 고통을 말하고, ‘잣나무와 화석류는 축복과 평안을 의미합니다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때, 이전의 고통과 두려움은 깨끗이 사라지게 됩니다. 대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하늘의 기쁨과 평안과 복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변화된 성도들의 모습이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영원히 드러내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이 내시는 길로 걸어가라!

 

우리는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동지들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이 길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과는 다른 길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사실 편하고 좋은 길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기를 원치 않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반드시 가야 하는 거룩한 길이고 진리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7:13-14)

 

지금 제대로 믿는 사람이 너무 소수인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넓은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시는 이 길은 사명과 섬김의 길이고, 순종과 희생의 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계속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이 길을 가는 동안 때로는 외롭고 지쳐서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함께 가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고 붙잡아주며 함께 이겨내면서 가는 것입니다.

 

이 길이 쉬운 길은 아니지만,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며 복을 주시는 길입니다. 오직 이 길만이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입니다. 다른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넓은 길, 편한 길, 쾌락의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을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이 길이 비록 좁은 길이라 해도, 이 길에서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은혜의 돌파구가 여기저기서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길이야말로 영적 승리의 길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길 끝에 누가 서 계십니까? 주님이 서 계십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어서 와라하시며 우리를 안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함께 서로 사랑하며 기도로 하나 되어서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다 같이 담대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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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나라와 민족을 위해 드리는 기도" (신 4:1-8)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2 (5/09/18) kpccoh 2018.05.10 1957
147 "비상 기도 네트워크 활용하기" (시 20:1-9)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1 (5/02/18) kpccoh 2018.05.03 1171
146 "영적 대각성을 통한 승리" (삼상 7:1-14)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0 (4/25/18) kpccoh 2018.04.26 3739
145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사람" (막 1:32-39)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9 (4/18/18) kpccoh 2018.04.19 1280
144 "십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 (눅 23:32-49) - 성금요일 메시지 (3/30/18) kpccoh 2018.03.31 1315
143 "지속적인 기도의 능력" (렘 29:11-14)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8 (3/21/18) kpccoh 2018.03.22 6113
142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기도하라" (벧전 1:13-17)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7 (3/14/18) kpccoh 2018.03.15 1722
141 "기도의 영을 부어주소서" (스가랴 12장 10절)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6 (3/07/18) kpccoh 2018.03.08 2949
140 "고통을 낭비하지 않고 축복으로 만드는 비결" (시편 119편:65-88)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5 (2/28/18) kpccoh 2018.03.01 1729
139 말씀이신 메시아 예수 (요 1: 1-3, 2:11) - 일일선교집회 (2/21/18) kpccoh 2018.02.22 287
138 "행복합시다" (살전 5:16-18) - VIP와 함께하는 말씀잔치 1: 최영기 목사 (2/16/18) kpccoh 2018.02.17 436
137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나아가기" 2 (고전:2:9-16)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4 (2/07/18) kpccoh 2018.02.08 1897
136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나아가기" 1 (고전:2:9-16)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4 (1/31/18) kpccoh 2018.02.01 2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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