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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8일 수요예배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5

고통을 낭비하지 않고 축복으로 만드는 비결

(시편 11965~88)

 

1.   고통을 통해 주어지는 영적 축복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어느 순간이든 고통스런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피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오늘의 눈물이 변하여 내일의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내용물은 좋은데 포장이 나쁜 선물과도 같습니다. 그 포장은 추하지만, 포장지를 하나씩 벗겨낼수록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과 인도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71)

 

우리는 평소에도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배우지만, 고통의 순간을 통해서 제대로 깊이 있게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이론에 머물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에는 하나님의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빨리 지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교훈을 제대로 배우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원망하며 불평만 하다가 고통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고생만 하고 고통을 낭비해버리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뒤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는데, 대다수의 백성들은 불평하고 원망만 하다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놀라운 영적 진리와 축복들을 알아야 합니다.

 

1)  고통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며 반드시 끝이 있다

 

하나님이 내시는 길이라고 해서 언제나 평탄대로만 있는 게 아니라 힘들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깜깜하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 하고, 가파른 오르막길도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길을 갈 때는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힘들었던 그 길이 오히려 더 빨리 가고 더 멀리 가게 되는 축복의 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의 순간도 하나님이 내시는 길의 일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통의 시간은 통과하는 것이지, 계속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NIV)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닌다는 말이 그냥 보면 계속 고통의 골짜기 안에서 이리저리 헤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걸어서 통과한다라는 것입니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가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괴롭지만, 미로처럼 그 안에서 계속 갇혀 헤매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그 골짜기를 통과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고통이 영원할 것 같이 느껴지게 하여 절망을 심어줍니다. 그러나 결코 속아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할 날이 옵니다. 아무리 가장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간다고 해도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만 꽉 붙잡고 가면 그분의 능력과 사랑으로 반드시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손을 붙잡고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본 사람은 뭔가가 다릅니다. 말과 행동에서 교만과 과장과 거품이 싹 사라지고, 마음에 잔잔한 평안이 있습니다. 그 태도가 겸손하고 진지하며, 어떤 상황이 닥쳐도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늘 배려하고 친절하고 따뜻하고 이해심이 깊습니다. 삶이 늘 편안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배신도 당해보고, 실패와 좌절과 고독과 오해의 순간들을 겪었지만, 그런 시간들을 은혜로 통과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은 따뜻하고 성숙한 인격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고통을 낭비하지 않고 영적 성장의 기회로 만든 사람입니다.

 

 

2)  고통 속에서 절대 포기하지 말라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대부분 탈진하게 됩니다. 그런데 건강이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도 힘들지만, 가장 힘든 고통은 사람을 통해 오는 고통일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악한 자들의 지속적인 공격에 시달리면서 너무 지쳐버린 것을 봅니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82)

 

지금까지 자신이 형편을 주님께 간절히 아뢰며 버텨왔는데, 아직 구원이 임하지 않으니 이렇게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라고 할 정도로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때일수록 완전히 주저앉아서는 안 됩니다. 시편 기자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1)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87)

 

악한 자들의 공격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그는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서커스 단원들이 공중그네를 타며 과감한 묘기를 펼치는 것을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부단한 노력이 있어서 된 것이지만, 사실은 그들의 밑에 안전그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실패해서 떨어지더라도 죽거나 다치지 않도록 그물이 쳐져 있다는 것을 알고 보기 때문에 그토록 과감한 묘기를 시도할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안전그물과 같은 분이십니다. 너무 힘들어도 우리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막아주십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88)

 

이 구절을 비롯해서 시편 119편 전체가 사실은 기도입니다.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장으로도 유명하지만,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을 따라 각 알파벳마다 여덟 절씩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주 문학적으로 놀라운 시입니다. 여덟 절씩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되어 있으니, 정말 문학적으로 뛰어납니다. 그리고 그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기도의 형식으로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고통을 견디는 중요한 힘은 말씀에 근거한 기도에서 옵니다. 그냥 푸념식의 기도가 아니라 말씀에 근거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시선이 우리의 고통스런 상황으로부터 하나님으로 옮겨집니다. 고통 속에서도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모든 기도의 용사들은 고난이라는 용광로에서 빚어진 사람들입니다.

 

시편은 찬송시이면서 동시에 기도문인데, 그 시편의 반 이상을 다윗이 썼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편안한 왕궁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불같은 고통 속에서 나왔습니다. 죽음의 위협 아래 도망을 다니는 가운데 수많은 기도들이 나왔고 시편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 고통의 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3)  고통 속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위의 시편 23:4에서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이라고 했는데,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I will fear no evil”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악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고통의 순간을 지날 때 고통 자체로도 힘든데, 마귀는 그 틈을 노리고 공격해옵니다. 고통을 확대 해석하게 하고 분노에 불을 지르는 겁니다. 실제 고통은 1인데 10으로 보이게 합니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옛날의 상처가 생각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오해하며 미워하게 하고, 심지어 이럴 거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납고 폭력적인 말이 터져 나오고,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놀랄 정도로 과격하고 파괴적인 행동이 나오며, 어리석은 결정들을 하게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은 고통 속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지, 우리의 정상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그럴 때 정신 차리고 사탄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당장 물러가라!” 하고 외치며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을 붙들 때 하나님은 우리를 마귀의 공격에서 지켜주실 것이며, 우리의 고통을 더 큰 재앙으로 몰고 가려는 마귀는 물러갈 것입니다.

 

지금 삶 속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면, 용기를 내십시오. 가진 것을 다 잃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더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조차,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고 힘을 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을 때에도 사실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고 계십니다. 그분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사실 주님은 이미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그분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2.   고통 속에 숨어 있는 축복

 

우리는 흔히 고통을 가리켜 변장된 축복이라고 하는데, 남들이 고통당할 때는 그런 말을 해주기 쉽지만, 막상 나 자신이 고통을 당하면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축복이라는 말입니까?

 

1)  고통을 통하여 회개하고 죄를 버리게 하신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우리가 잘못 살아온 옛 사람의 죄들을 회개하게 하십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7)

 

이 말씀은 자기가 잘못 살았는데 고난이 닥치고 나서야 그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며 억울해 합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남에게 전가합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고통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년 내내 시험을 볼 때마다 제대로 점수를 못 받은 학생이 있다고 해보십시오. 첫 번째 시험을 치렀는데 점수를 낮게 받았습니다. 왜 시험을 못 봤느냐고 하니까 선생님이 제대로 안 가르쳐줘서 그렇다고 합니다. 두 번째 시험을 봤는데 또 못 봤습니다. 왜 그랬냐고 하니까 이번에도 또 선생님이 제대로 안 가르쳐줘서 그렇다고 합니다. 1년 내내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제대로 안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같은 고통이 자꾸 반복된다면 그 고통의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속에서 그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잘못된 것이 있었음을 깨끗하게 인정합니다. 67절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회개란 어떤 것입니까?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는 고백을 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통할 때에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역경을 통해 깨닫게 해주십니다. 물론 형통할 때 받는 교훈도 있지만, 고통 속에서만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지 않고는 결 변하지 않는 못된 부분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욱하는 성격일 수도 있고, 남의 말을 함부로 하는 습관일 수도 있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독소들을 하나님께서 고통을 통해 드러내어 제거해주십니다.

 

 

2)  고통을 통하여 새로운 지혜를 배우게 하신다

 

우리는 고통을 나쁘다고만 생각해서 아이들이 조금도 고생을 안 하게 해주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때로는 고통이 축복의 계기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고통이 인간을 좌절시킬 수도 있지만,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잠재력이 폭발하도록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고통은 평상시에는 하려고 해도 잘되지 않던 발상의 전환을 하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사람은 완전한 위기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익숙하던 방식을 버리게 됩니다. 고통을 당하고 보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던 인생, 사람을 대하던 방식, 과거에 성공을 주었던 방법들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은 이전 방식으로 계속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고통이 없었다면 뭔가를 새롭게 바꿔봐야겠다는 절박함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것은 좋은데, 이전에 해오던 방식을 하나도 바꾸지는 않으면서 옛날 방식 그대로 더 조급하고 고집스럽게 일하며 버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고통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고통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고통의 순간은 일종의 특별 과외 수업 시간입니다. 과거의 추억을 접고, 새로운 살 길의 지혜를 하나님께 물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이를 악물고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새로운 지혜가 필요합니다.

 

산업화 시대에 회사를 운영하던 방식으로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업계를 대표하는 곳은 스웨덴의 말뫼(Malmo)였습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한국과 일본 등에게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마침내 2002년 말뫼에 있던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으며 도시의 자존심이었던 초대형 코쿰스 크레인이 한국의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리며 해체되었습니다. 그때 모든 말뫼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고, 스웨덴 국영방송은 그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며 말뫼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말뫼의 조선소가 문을 닫자 도시 인구의 10%27천 명이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스웨덴 정부는 실업자들을 신재생에너지와 정보기술(IT),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 집중 투입했고, 지금은 말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태양열과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뫼는 유럽을 대표하는 생태도시로 변화했습니다. 조선업이 망해갈 때 말뫼는 조선업을 더 개발하고 확장해서 후발주자인 한국이나 일본과 경쟁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감하게 옛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친환경 에코시티의 길을 택해서 새로운 미래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새로운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과거의 성공에만 집착하며 왕년에 이래 뵈도를 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6)

 

하나님은 현재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시지만, 이것이 앞으로 닥쳐올 수 있는 더 큰 재앙을 막는 예방주사가 되게도 하십니다. 가볍게 병균을 주입해서 면역을 길러주는 백신의 원리와 같습니다. 고통의 때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새로운 지혜를 배운다면, 나중에 분명히 귀하게 쓰임 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3)   고통은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알게 해준다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69)

 

악한 자들이 시편 기자에 대해 중상모략을 하고 올무에 몰아넣어서 그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고 좌절시킨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악인은 오랫동안 계획했겠지만, 시편 기자는 하루아침에 대책 없이 당했기 때문에 분노와 당혹감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럴 때야말로 불평하고 욕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시편 기자는 뜻밖의 반응을 보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75)

 

악인들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당하며 억울함을 느낄 만한 순간에,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성실하심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인생이 잘 풀릴 때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는 것은 정말 성숙한 믿음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속에서 지극히 깊은 신앙의 세계로 올라선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으로 유명한 데이빗 씨맨즈(David Seamands) 목사님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들이 3살이었을 때 발이 삐뚤게 태어나 정상적으로 걷기 어렵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빠가 30분씩 병으로 아이의 발을 잡고 밀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아프다고 난리를 쳐도 꾹 참고 그렇게 해준다면 나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씨맨즈 목사님은 실제로 그렇게 해보았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아빠 싫어, 아빠 미워! I hate you!”를 외쳐댔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눈물을 머금고 계속 그렇게 병으로 아들의 다리를 밀어주었습니다.

 

십여 년이 흘러 십대가 된 그의 아들은 완전히 회복이 되었고, 건강한 두 다리로 자기 학교의 테니스 선수가 되어 펄펄 뛰어다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당시 아버지를 원망하며 난리를 치던 아들은, 이제 아버지에게 그때 일로 고맙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서 왜 내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 알지는 못해도,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신뢰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기에, 그것을 믿고 감사하며 담담히 고난을 헤쳐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극심한 고통 중에 부르짖으셨을 때, 그것을 들으시면서도 하나님은 예수님이 그냥 죽도록 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이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시지만, 그냥 고통을 겪게 하십니다. 우리가 아직은 알 수 없는,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인류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보여주었듯이,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님의 어떤 선하신 뜻이 분명히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보배라는 것을 깨달으며 고백합니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72)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입의 법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분과 살아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직접 입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귀한 것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고통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말씀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평안과 즐거움도 주시며, 도와줄 사람도 붙여 주십니다.

 

요즘 한국에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늘면서 그런 TV 프로그램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말을 잘하는 어느 외국인이 말하기를, “한국어에는 굉장히 긍정적인 표현이 많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욕을 먹었다’, ‘한 골 먹었다’, ‘한 방 먹었다.’ 영어에는 절대로 이런 표현이 없습니다. 욕을 듣고, 한 골을 허용하거나 잃고, 한 방을 맞는 것이지, 그런 것들을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주 속상하고 기분 나쁜 일이라도 밥 한 그릇 뚝딱 먹는 것처럼 먹었다라고 표현하게 되면 아주 느낌이 달라집니다.

 

뭔가를 먹으면 그것을 소화하면서 더 성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욕이나 비판이나 배신이나 고통도 다 먹어버리면 되는 겁니다. 소화만 잘 시킨다면 그런 것들을 먹음으로 오히려 더 성장하게 됩니다. 물론 내 의지나 노력으로 그런 것들을 먹으려 하면 소화불량에 걸려 탈이 납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들을 녹여버리는 영적 소화액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통 속에서 계속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고통에 담긴 독소들은 다 녹아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만 남게 되어 오히려 나를 성장하고 성숙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의 공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붙잡아야 합니다.

 

교만한 자들이 거짓으로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78)

 

사람들은 자기를 핍박하지만,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말씀에 집중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참 힘들지만, 그것을 묵상하는 게 아니라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때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내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생각할수록 분하고, 잠도 안 오고, 속병이 생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고통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고통스러울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붙들고 묵상할 때 생명수가 흘러나옵니다.

 

 

4)  다른 성도들을 격려하는 도구가 된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74)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고통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말씀을 붙들고 고통을 아름답게 통과하면, 고통을 지나는 다른 성도들을 살리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됩니다.

 

때로는 뜻밖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서 인생이 끝난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을 잡고 고통을 이겨내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는지 모릅니다. 내가 너무 약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그때가 오히려 가장 강하게 쓰임 받을 때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 때문에 주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후 12:9-10, )

 

자신의 고통을 통해 오히려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함이 다른 사람들을 세우는 도구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명품 현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재질이 단단해서 변하지 않고 공명이 좋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물론 값도 아주 비쌉니다. 히말라야나 알프스 수목 한계선에서 세찬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고 자라 자연의 시련을 다 견뎌낸 나무들로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세월이 갈수록 맑고 고운 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연주가들이 이 악기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고 고통을 잘 견디어낸 사람은 이렇게 명품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축복이 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고통을 낭비하지 않고 고통을 축복으로 바꿀 때 그렇게 고귀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바로 그러한 고귀한 인생으로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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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죽음 나누기 (Sharing Death)” (고후 1:3-7) - 홍영락 전도사 (Steve Hong)(5/30/18) kpccoh 2018.05.31 312
150 "찬양으로 승리를 선포하라" (역하 20:13-30)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4 (5/23/18) kpccoh 2018.05.24 2700
149 "크리스천 예절 지키기" (엡 4:29-32)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3 (5/16/18) kpccoh 2018.05.17 1564
148 "나라와 민족을 위해 드리는 기도" (신 4:1-8)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2 (5/09/18) kpccoh 2018.05.10 1962
147 "비상 기도 네트워크 활용하기" (시 20:1-9)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1 (5/02/18) kpccoh 2018.05.03 1172
146 "영적 대각성을 통한 승리" (삼상 7:1-14)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0 (4/25/18) kpccoh 2018.04.26 3744
145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사람" (막 1:32-39)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9 (4/18/18) kpccoh 2018.04.19 1281
144 "십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 (눅 23:32-49) - 성금요일 메시지 (3/30/18) kpccoh 2018.03.31 1315
143 "지속적인 기도의 능력" (렘 29:11-14)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8 (3/21/18) kpccoh 2018.03.22 6121
142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기도하라" (벧전 1:13-17)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7 (3/14/18) kpccoh 2018.03.15 1723
141 "기도의 영을 부어주소서" (스가랴 12장 10절)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6 (3/07/18) kpccoh 2018.03.08 2955
» "고통을 낭비하지 않고 축복으로 만드는 비결" (시편 119편:65-88)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5 (2/28/18) kpccoh 2018.03.01 1730
139 말씀이신 메시아 예수 (요 1: 1-3, 2:11) - 일일선교집회 (2/21/18) kpccoh 2018.02.22 287
138 "행복합시다" (살전 5:16-18) - VIP와 함께하는 말씀잔치 1: 최영기 목사 (2/16/18) kpccoh 2018.02.17 436
137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나아가기" 2 (고전:2:9-16)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4 (2/07/18) kpccoh 2018.02.0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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