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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6일 수요예배

이 시대의 거짓 신들 6

성공의 유혹

(열왕기하 51~14)

 

1.   성공을 부추기는 이 시대의 경쟁 문화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 마돈나(Madonna)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1991년에 성공의 유혹에 대해 <Vanity Fair>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엄청난 의지를 가졌지만, 지금껏 내 모든 의지는 늘 끔찍한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 있었다... 열등감의 주문을 깨면 당장은 특별한 사람이 되지만 다시 무대에 서면 내가 평범하고 재미없어 보인다... 늘 그 반복이다. 내가 살아갈 힘은 평범함에 대한 아찔한 두려움에서 온다. 그것이 늘 나를 몰아가고 또 몰아간다. 이미 대단한 존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내가 대단한 존재임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고민은 끝난 적이 없으며 아마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마돈나에게 성공이란 자신의 중요성과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마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자마자 그것이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다시 복용해야 합니다. 자꾸만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동기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마돈나뿐 아니라, 지금도 소위 성공한사람들이 바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여러 회사들의 고위층 경영진을 상대하는 한 상담가가 이것을 잘 지적했습니다. “성공은 우리 시대의 술이다.” 그런데 요즘 최고의 실력을 갖춘 경영자들이 남용하는 것은 진짜 술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중요한 프로젝트 하나를 잘 마치면 큰 성취감을 느끼며 하늘이라도 날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지속되지 못하고 다시 보통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또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 역시 끝나고 나면 다시 보통으로 내려오지만, 그래도 성공해서 맛보는 행복감이 너무 좋으니까 또 열심히 일해서 성공을 거두고 거기에 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성취감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런 성공 지향적인 삶의 진짜 문제는, 자신의 가치를 외부에서 얻으려고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하면 너무 좋지만, 실패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두려워집니다. 그런데 그것이 반복되면 열심히 일을 진행시키는 동안에도 불안하고, 성공을 거두더라도 크게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더 큰 계약을 따내도 별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지고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성공한 다음에 보통 기분으로 내려갈 틈도 없이, 또 다시 다음 번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고 혈안이 되며 집착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성공 중독 또는 성취 중독이며, 성공 중독자도 다른 중독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실 사회에서의 성공이 인생의 중요한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해주지 못합니다. 이런 질문들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처음에는 행복감이 확 밀려들면서 뭔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만족감은 금방 사라집니다. 그래서 또 성공을 쫓아가고, 그러는 과정에 서서히 망가집니다.

 

개인적 성공과 성취는 다른 우상들보다 더 자기가 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내 안전과 가치가 나 자신이 가진 지혜와 힘과 행위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가장 잘 해내면, 그것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으로 느껴집니다. 성공해서 정상에 오르면 바로 내가 최고인 것입니다.

 

성공을 우상으로 삼았다는 표시들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을 왜곡해서 보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가치가 뭔가를 이룬 성취에 근거하면, 자신의 능력을 부풀려서 보게 됩니다. 성공이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면,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이유로 자기 자신을 모든 분야의 전문가인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온갖 잘못된 선택과 결정이 나옵니다. 그렇게 자신을 보는 눈이 왜곡되면, 현실을 보는 눈마저 멀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우상숭배에 늘 따르는 결과입니다.

 

이방 나라의 우상들은 은덩이나 금덩이일 뿐,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므로,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으로 숨도 쉴 수 없으니, 우상을 만든 자들과 우상을 의지하는 자들은 누구나 우상과 같이 될 것이다.” (135:15-18, )

 

그런데 성공을 우상으로 떠받드는 사람의 가장 핵심적인 표시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분야에서 정상을 지키지 못하면 삶에 대한 자신감을 아예 잃어버린다는 점입니다.

 

성공을 거짓 신으로 만들기 쉬워진 것은 이 시대의 문화의 영향도 큽니다. 유명한 종교사회학자인 피터 버거(Peter Berger) 교수(보스턴 대)에 의하면, 전통문화에서는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예였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사람에게 명예가 주어졌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농부, 목축업자 등, 누구든지 공동체 내에서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은 명예를 얻었습니다.

 

반면, 현대사회는 개인주의적이며 가치의 기준이 존엄(dignity)’에 있습니다. 존엄이란,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과 상관없이 각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각 개인의 성취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도록 큰 압력을 가합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선량한 시민이나 가족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이겨서 정상에 올라야 하고, 자신이 최고임을 보여야 합니다.

 

유년기의 전문화라는 개념이 있는데, 미국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학교가 연합해서 만능 학생을 길러내기 위해 숨 막히는 경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가정도 이제 더 이상 무정한 세상 속의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가정이 성공에 대한 욕구를 최초로 길러주는 온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무조건 높은 성취를 강조하다 보니까, 젊은이들도 거기에 휩쓸려가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주로 의학, 법학, 경영학, 금융, 컨설팅, 컴퓨터 등의 분야로 지나치게 쏠리고 있는데, 그런 분야가 연봉도 높고 성공했다고 인정도 받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더 큰 질문과는 상관없이 돈 때문에 그런 길을 택합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생각하는 질문은 어떤 직업이 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가?’가 아니라 어떤 직업이 내 성공에 유리한가?’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 오히려 그들은 일에 만족을 못 느끼고 깊은 좌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사회의 문화 전체가 우리에게 이 가짜 신을 받아들이라고 잔뜩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헤어날 수 있습니까?

 

 

2.   가장 성공했지만 가장 비참했던 사람

 

1)  핵심 집단에 들고 싶은 마음

 

자신의 시대에 세상 최고의 성공과 권력을 가진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입니다. 그의 삶은 최고뿐이었습니다. 그는 아람(시리아)의 군대 장관이었고, 아람 왕이 국정 공식 석상에서 그의 손을 의지”(18)했다는 것으로 보아 나라의 국무총리나 수상에 해당되는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부자인데다 온갖 훈장과 포상에 빛나는 용맹한 군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위대한 성공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1)

 

성경에서 나병은 여러 치명적인 피부 질환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나병환자는 점점 불구가 되어 가고, 그 모습이 일그러지면서 결국 죽게 됩니다. 당시 나병은 지금의 암과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나아만은 몸이 부풀어 오르고, 살과 뼈가 갈라져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나아만은 사회적 위치, 명예, 재물, 군사력, 백성의 인기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성공에 있어 아주 큰 동기 중 하나는 핵심 집단에 들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다시 말해, ‘내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나아만은 성공과 돈과 권력을 다 가지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나병환자였습니다. 성공과 돈과 권력이 있으면 당연히 완벽한 내부인이 되어서 어떤 특별 모임이나 핵심 집단에라도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나병 때문에 내부인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도 외부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성공했어도 나병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비슷합니다. 자신이 외부인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위해 성공을 추구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성공하면 인생의 문이 열려서 클럽과 사교 모임에도 들어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한 사람들과 연줄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성공은 그것을 약속만 할뿐, 결국 약속을 지키지는 못합니다


나아만의 나병이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성공은 우리가 원하는 만족을 줄 수가 없습니다가장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자기가 외부인인 것 같아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의가 든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하면 그것이 자살로 이어집니다.

 

 

2)  길들여지지 않는 하나님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2-3)

 

나아만의 아내를 섬기던 여종이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를 소개합니다. 그러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는 엘리사에게 치료를 받으려고 이스라엘로 떠나기 위해 왕을 찾아뵙고 사정을 이야기합니다(4). 이에 왕의 허락을 받은 나아만은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5)은 물론,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는 아람 왕의 친서도 가져갑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 왕에게 바로 가서 아람 왕의 편지를 전달하는데, 그 내용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달라는 것입니다(6). 재물과 편지를 보고 이스라엘 왕이 선지자에게 치료를 명령할 것으로 생각했고, 그러면 자신은 깨끗한 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낸 친서에서 치료가 이미 확정되었다고 여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여종은 여주인에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3)라고 했는데, 곧장 가서 선지자에게 치료를 청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간다는 것은 나아만의 신념이나 사고방식에는 맞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엄청난 액수의 치료비와 아람 서열 1위인 왕의 추천서를 받아서 가지고 이스라엘 서열 1위인 왕에게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전혀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7)

 

나아만과 아람 왕은 이스라엘의 종교가 세상 다른 나라들과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종교란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종교의 작동 원리는 신이 착하게 사는 사람에게 복과 형통을 내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당연히 사회에서 가장 성공하고 높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신의 마음을 얻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구하는 대로 받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신은 외부인이나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들을 통해 일합니다. 그래서 나아만도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왕에게 곧장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편지를 읽고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아람 왕은 전혀 알지 못하겠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다른 신이시고, 왕 자신은 나아만의 치료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놀아나는 분이 아니십니다. 돈으로 매수하거나 제사를 통해 비위를 맞출 수 있는 대상도 아니십니다. 다른 종교의 신들은 인간이 하기 나름이어서, 이쪽이 정성을 보이면 신들도 갚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렇게 접근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가짜 신이 아니라 진짜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유일한 참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7)라고 탄식하며 나아만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말했습니다. 나아만은 성공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자신의 성취를 근거로 하여, 자기처럼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가 필요한 것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공과 돈과 권력은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가 없습니다.

 

나아만은 이방인이었지만, 인격도 훌륭하고 실력도 탁월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최고인 사람도 하나님을 찾는 법에는 무지한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서 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을 이용하고,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팔고, 돈을 뿌리며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최고의 실세를 찾아가는 등의 방식이 그것입니다. 그런 것이 다른 중요한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다르십니다. 나아만은 길들여진 신을 원했지만, 그분은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나아만은 뇌물을 먹고 그 대가로 뭔가를 갚아주는 신을 원했지만, 그분은 우리가 아무리 해도 다 보답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아만은 모든 사람의 신이 아닌 자기만의 사적인 신을 원했지만, 그분은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3)  너무 쉬워서 어려운 명령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8-9)

 

이제 엘리사의 집으로 간 나아만은 거기서 보고 들은 것 때문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선지자는 나아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모르는지, 아예 문 밖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대신 사환을 시켜서 말을 전합니다. 두 번째 충격은 그가 전해준 말 자체입니다.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0-12)

 

나아만은 엘리사가 돈을 받고 무슨 신기한 의식이라도 행할 줄로 생각했습니다(11). 그런데 여기서 뭐라고 합니까?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내 생각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돈을 받지 않을 거라면 적어도 자신에게 치료의 값으로 뭔가 큰일을 시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고작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니, 이게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분노하며 떠나갑니다.

 

그는 왜 그렇게 분노하며 떠납니까? 나아만은 인간이 자신의 공로나 노력으로 구원을 얻어내거나 성취하는 줄로 생각했는데, 지금 엘리사의 사환을 통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나아만이 화가 났던 것은 자신에게 뭔가 거창한 일을 시켜서 자기가 그 어려운 일을 함으로써 낫게 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아만은 요단강에 내려가 물장구나 치며 몸을 씻는 것은 어린아이나 바보나 허약한 자나,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겁니다! 구원은 강하든 약하든 상관없이,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상관없이, 권력이 있든 최하층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구원은 우리가 뭔가를 해서 얻어내는 게 아니라 그분의 은혜로 거저 받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기 전까지 나아만은 계속 우상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고, 우상이 줄 수 없는 안전과 의미를 계속 우상을 통해 얻어내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만 그는 자신의 성공도 결국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그 동안 성공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실 그것도 하나님이 그에게 능력과 재능과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살고 있었던 것인데, 그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는 명령은 사실 너무 쉬워서 어려웠습니다. 나아만이 그대로 하려면 자신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인정하고 구원을 값없는 선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기가 노력한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평생 무엇이든 노력해서 쟁취했던 나아만으로서는 이것이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하는 사람은 부족하면 됩니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없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 겸손을 가진다는 것이 의외로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제가 이만큼 열심히 했습니다.’라든지 제가 이렇게 고생한 것 좀 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만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냥 와서 씻기만을 원하십니다.

 

이제 나아만은 자신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해롭게 하는 행위, 즉 스스로 뭔가를 함으로 구원을 얻겠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할 순간에 왔습니다.

 

 

4)  연약과 결핍을 인정하라

 

우상은 쫓아내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에서도 상처는 없앨 수 없고 우리는 평생 상처와 더불어 살지만, 상처의 영향을 더 이상 안 받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뭔가 소중한 대상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특정 대상에 대한 갈망은 떨칠 수 있지만, 그런 욕구 자체를 억압하고 없앨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열등감을 해소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자꾸만 뭔가 큰일을 하려고 듭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3)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아무런 큰일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마침내 깨달으려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해주신 일을 보아야 합니다. 큰일은 예수님께서 이미 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일을 하려고 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가서 씻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이미 다 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다 이루어주신 일을 마음으로 믿고 감사하며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중독이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하려던 욕구가 무너집니다. 마침내 나아만은 바로 그 일을 합니다. 마음을 낮추고 요단강으로 갑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4)

 

 

3.   종이 되어 섬기는 삶의 축복

 

성경의 구원 이야기는 우리가 숭배하는 성공을 철저히 무너뜨립니다. 나아만의 병이 고침을 받는 과정에서 쓰임 받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은 초점이 물론 나아만에게 맞춰져 있지만, 그 나아만의 병이 낫도록 하는 과정에서 쓰임 받은 사람들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나라에서 가장 높은 왕이나 최고 부자나 강력한 힘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이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어린 소녀 종이 있습니다(2-3). 집안이 몰살당하고 잡혀서 끌려왔을 수도 있는 어린 소녀입니다. 그렇다면 원수의 나라인데도 자기 주인을 위해 사랑으로 이야기해줍니다. 그 다음에 엘리사의 집에서 나와 그의 말을 전해준 엘리사의 종이 있습니다(10). 마지막으로 나아만 자신의 종들이 있습니다(13).

 

당시 지체 높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종을 노리갯감이나 노동하는 짐승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종들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아람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던 나아만이 그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답은 왕궁이나 부자의 저택에서 나온 게 아니라 종의 숙소에서 나왔습니다.

 

종이라는 주제의 모범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당시 중심지였던 로마나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로 오신 게 아니라, 로마 제국 내에서도 후미진 식민지였던 유대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왕궁이나 저택에서 나신 게 아니라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성공이나 가진 것으로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할 때 받습니다. 구원은 선행으로 받는 게 아니라, 죄인임을 인정할 때 받습니다. 그 구원은 힘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복종과 섬김과 희생과 죽음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여기에 성경의 위대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전 1:27-31)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것들을 택하여 있는 것들을 폐하십니다.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구원받고 천국행을 보장받은 그리스도인은 받는 구원즉 성화의 과정을 밟습니다. 그래서 넓고 화려하고 높은 성공의 길이 아니라, 좁고 힘들고 낮은 섬김의 길을 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아지려 하고, 많이 가지려 하며, 성공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성공이 우상이 되어, 오히려 그 우상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성공을 했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성공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혹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늘 불안해하고 근심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섬기시고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낮아져서 섬기신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만이 참 구원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20:27-28, )

 

이것은 <새로운 삶> 공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인자는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냥 구원하러 왔다고 하시면 될 텐데, 왜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까? 그러니까 구원과 섬김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섬김 안에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섬기신 것처럼 섬겨보기 전에는 구원이 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그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가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받는 구원’, 즉 성화의 과정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희생하며 섬겨보지 않고서는 구원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고 깨닫지를 못합니다. 섬겨보아야만 구원의 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섬기다 보면 어떻게 됩니까? 희생을 해야 합니다. 섬기다 보면 배신도 당하고,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울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는 과정에서 인내도 배우고, 사랑도 배우고, 조금씩 변해갑니다. 한걸음씩, 한걸음씩,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원이 정말로 무엇인지, 크리스천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과정에서 다른 데서는 얻지 못했던 기쁨과 평안과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섬김 속에 놀라운 비밀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섬겨보기 전에는 그런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그러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토록 섬겨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중에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내일, 아니 오늘 밤에 당장 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되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갈 것들을 준비하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너는 세상에서 뭐하다 왔니?’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재미있게 놀다 왔습니다.’ ‘푹 쉬다 왔습니다.’ ‘편안하게 살다 왔습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다 왔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럴 경우 내가 너에게 준 사명은 어떻게 했니?’라고 하시면 대답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게 붙여주신 사람들을 섬기다 왔습니다.’라고 할 수 있다면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라고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어린 소녀 종과 같이 비천한 형편이라고 생각되십니까? 혹시 남의 일이나 해주는 엘리사의 종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어려운 윗사람의 기분이나 맞추어줘야 하고 그가 화를 내면 가라앉혀주는 일이나 하는 나아만의 종들의 처지 같다고 느끼십니까?


혹시 그렇더라도, 낮은 자를 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낮은 위치에서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는 종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를 이 시간 이곳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나를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뜻이 있으시고 그것이 바로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매일 섬기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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