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5일 주일예배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24

사마리아로 전파된 복음

(사도행전 84~13)

 

[들어가는 말]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지난달 러시아에서 마쳤습니다. 한국 팀은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경기에서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을 20으로 물리치고 이번 대회 최고의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독일이 독일(Germany)’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것이 1994년 월드컵 때부터였고, 그때 미국에서 열렸는데 한국과 독일이 그때도 같은 조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서독동독으로 나뉘어 나왔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에 동독과 서독이 통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99119일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된 인물들이 많았는데, 미국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도 갔고, 또 그 중 하나가 동서냉전을 끝내는 데 있어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더불어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구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었습니다. 그 기념식에서 그는 독일 총리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들었고 모든 독일 국민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기념행사 직후 고르바초프는 민주화 10주년을 맞은 체코로 가서 또 체코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을 받았습니다.

 

당시 고르바초프의 영향이 독일과 체코에만 미쳤던 게 아니고, 동구 공산권의 몰락, 냉전과 이념 대립의 종료, 또한 중국 덩샤오핑(등소평)의 과감한 개방정책을 이끌어냈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젠 등 이전에 구소련에 강제로 편입되었던 15개 국가들의 독립도 이끌어냈습니다.

 

이 모든 20세기 세계 역사의 대 변화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디노스트(개방)를 강력하게 추진한 고르바초프의 영향을 받은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르바초프 자신도 자기 생각과 결단과 행동이 그렇게 엄청난 역사적 변화를 몰고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최선은 다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보아도, 한 사람에 의해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물론 주변의 여러 상황이 잘 풀렸고 미국 대통령과 합의도 잘되면서 그렇게 된 것이지만, 이 한 사람을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록 세계는 이 사실을 몰랐지만, 오늘 본문 속에 바로 그렇게 세계 역사를 바꾸어놓은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빌립입니다.

 

 

1.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한 빌립

 

1)  큰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파하다

 

지난주 살펴보았듯이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몰려옵니다. 1절에 보면 스데반이 죽은 그날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예루살렘에만 크리스천들이 모여 있었는데, 큰 박해가 나니까 사도들과 그 외에 몇 명만 남고 대부분의 교인들은 다 흩어졌습니다.

 

이 교회가 처음에 120명이 기도하다 성령을 받고 시작되었는데, 그 후 3천 명이 교회로 들어오고, 조금 후 또 남자만 5천 명이 하루에 들어오는 식으로 해서, 수만 명이 모이는 엄청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만 명이 다 흩어지고 몇 십 명밖에 안 남은 초라한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수만 명은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4)

 

놀랍게도 이 흩어진 사람들이 괴로워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 않고, 박해를 피해 도망만 간 게 아니라, 또 장사를 하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은 게 아니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면서 가는 곳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18절인데,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미리 말씀해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그 증인의 역할을 감당한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아주 짧게 되어 있지만, 오늘 본문이 사도행전 전체를 보아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만 있었던 복음이, 이제 예루살렘을 넘어서 그곳이 포함된 유대 지역으로 퍼져가고, 또 거기를 넘어서 원수로 여겨지던 사마리아까지 가며, 그 후에는 완전히 이방인들에게까지 가는 시작점이자 전환점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전환점에서 주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도들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렇게 핍박 때문에 사방으로 흩어진 이름 없는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그냥 흩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우리말로 흩어지다라고 할 때 이 단어가 헬라어로는 디아스페이로라는 단어입니다. 바로 여기서 그 유명한 디아스포라가 나왔는데, 이것은 흩어진 사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여기 1절에서 모든 땅으로 다 흩어졌다고 나오는데, 마치 자기들이 스스로 흩어진 것처럼 번역되어 있지만, 사실은 신약이 쓰인 그리스어 원문을 보면 이 동사가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흩어짐을 당했다는 것이고 억지로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섭리에 의해 그들을 흩으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본문 속에 나오는 흩어진 사람들인 이 디아스포라들이 귀한 것은, 자신들을 흩어버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고 가서 그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면 이들은 복음을 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냥 자포자기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패배의식에 갇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적극적으로 가서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흩으시는가?’ 하며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한 것입니다.

 

 

2)  쫓겨 간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전도자가 되다

 

그렇게 흩어진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이름이 나오는 사람이 빌립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5)

 

이 빌립은 6장에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맡기기 위해 일곱 명을 뽑았을 때 그 중 한 명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즉 사도들 중에도 빌립이 있지만 동명이인입니다. 이 빌립은 일곱 명 중 하나인 빌립입니다. 이 사람은 이름을 볼 때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2세나 3세로, 외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 사도행전을 쓴 누가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빌립이 여기서 놀라운 일을 행했다는 게 아닙니다. 사실 빌립은 박해를 피해서 흩어진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나는 다른 데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 하며 예루살렘을 떠나서 온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가해지는 박해를 피해서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이곳저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한 사람입니다.

 

원래 그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이제 박해로 인해 흩어지게 되니까 그제야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받들어 유대인들이 원수처럼 여기는 사마리아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거기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고, 이러한 일을 빌립이 주도적으로 한 게 아니라 그는 등 떠밀리다시피 간 것이지만, 그럼에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사도행전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은 그냥 순종한 것뿐입니다. 자기 비전이 어떻다고 하거나, 10년 계획, 20년 계획을 세운 게 아닙니다. 그냥 가야 되니까 갔는데, 거기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실 빌립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는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의 아주 핵심 리더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일곱 명 중 하나니까 굉장히 핵심 리더입니다. 그 일곱 명은 집사라기보다는 요즘 식으로 볼 때 교회를 이끌어가는 장로 그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컸던 교회가 이제 사도들 중심으로 그저 몇 명만 남고 수만 명은 다 흩어지게 되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씁쓸하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괴로움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가 서너 명 남고 나머지는 다 흩어지게 되었다면, 흩어지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다 괴롭고 씁쓸하고 허탈하고 막막하고 슬플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그런데 그때가 오히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인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방문을 오거나 어디서 훌륭해 보이는 사람을 만났을 때, ‘, 저런 사람이 우리 교회에 오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주 형편없어 보이고, 문제가 많아 보이고, 더러워 보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되도록 저런 사람은 우리 교회에 안 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런 인간적인 생각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찾으면 안 되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분들이 누구이겠습니까? 당연히 주님의 복음을 모르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어떻게든 주님께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훌륭해 보이는 사람을 보고 저런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훌륭한 점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물론 그것도 사용하시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역사하십니다. 인간적으로 훌륭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사용하시는 게 아닙니다.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렇게 등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하더라도, 주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빌립이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 선교의 첫 장을 흩어진 무명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가셨고, 그 중 한 명이 빌립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혼 구원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안 믿는 분들을 주님께 인도해보자고 애를 쓰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하기만 하면 , 믿겠습니다.”라고 하며 바로 믿고 세례를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전혀 교회를 나가보지 않고 주님을 모르던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는 게 평균적으로 7년에서 10년 걸립니다. 이전에는 5년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7~10년 걸립니다. 물론 빨리 되는 분들도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결국 이것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순종할 뿐입니다. 우리가 계획하고 원하고 몇 년 계획을 세워서 전도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보여주시는 대로, 기회를 주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정말 하기가 싫고, 어떤 때는 괴롭고 슬프며, 심지어 이래서 되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한 사람도 저 영원한 멸망(지옥)에 빠지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그렇다면 지금 뻔히 그리로 가는 사람을 보면서 어떻게 나는 천국 가니까 괜찮고, 당신은 그냥 지옥에나 가시오.’라고 하며 그냥 놓아둘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도 참 힘들고 하기가 쉽지 않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니까 하는 겁니다. 어쩔 수 없어서라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뜻을 깨닫고 순종하니까 놀랍게도 우리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놀라운 신비입니다.

 

 

3)  빌립의 사마리아 사역의 놀라운 결과

 

빌립은 사마리아로 가서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6-7)

 

빌립이 순종해서 나아가니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사람들이 듣고, 표적이 일어나며, 사람들이 그를 따릅니다. 또 사람들에게 많이 붙어 있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떠나가는 놀라운 역사까지 일어납니다. 중풍병자가 낫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또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치유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니 그 성이 얼마나 발칵 뒤집혔겠습니까? 이런 역사는 본 적이 없는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것이 빌립 단 한 사람으로 인해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빌립 단 한 사람이 주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여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니까 이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순종한다고 뭐가 될까? 나 한 사람이 주님의 뜻대로 한다고 될까? 그냥 남들 다 하는 대로, 시류대로 따라가면 되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 한 사람이 순종하면 됩니다. 나 한 사람이 순종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문제는, 나 한 사람이 순종을 안 하기 때문에 역사가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라도 순종하고 나아가면 그런 역사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으켜 주십니다.

 

그런데 이 성이 어느 성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전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그 사마리아인지, 아니면 사마리아 중의 한 성인지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사마리아에 있는 성이 복음화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의 배경을 생각하면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사울이 첫 번째 왕이었고, 그 다음으로 다윗이 왕이 되었는데 그는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아주 지혜가 많은 사람이었고, 솔로몬 때 성전도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때 태평성대를 이루었지만, 그때 우상숭배와 여러 가지 물질주의적인 것이 많이 들어오면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다를 이루고, 나머지 10개 지파들은 자기들이 정통성이 있다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렸습니다. 그런데 분단된 북 왕국에서 나중에 옮긴 수도가 사마리아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분단되고 200여 년이 지난 후 역사 속의 앗시리아 제국의 사르곤 대왕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사마리아를 정복한 사르곤 대왕은 북 왕국 지배계급에 속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 27,300명 정도를 국외로 추방해버립니다. 그리고 다른 데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 지역에 살게 합니다. 그래서 민족들 간에 강제로 결혼시키는 혼혈정책을 씁니다. 그것이 앗시리아에 동화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그래야 반역을 못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피가 섞임으로써, 바로 이것이 순수 혈통에 집착하던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하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남 유다는 그 후 바벨론에게 망해서 거기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나중에 돌아왔는데, 돌아와 보니까 거기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섞인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피가 섞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이 섞여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방 신앙 비슷한 우상숭배도 있고 하나님도 섬긴다고 하는 이상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정통 신앙인으로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처럼 취급하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 지역이 있고 북쪽에 갈릴리 지역이 있는데, 중간의 사마리아 지역을 통해서 가지 않고 멀리 동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 당시 그런 갈등이 심했는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시며 거기 있는 한 여인을 만나 전도를 하십니다. 그때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사마리아에 전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수가라는 동네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을 통해 나온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4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상종도 하지 않을 만큼 골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히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사마리아를 콕 집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 껄끄러운 사람들, 원수 같은 사람들,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 사람들에게도 가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성도들은 사마리아를 전혀 생각도 안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너무 좋은 일들이 많으니까 그냥 거기에만 있으면서, 유대까지도 안 나가고 사마리아는 더더욱 안 나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개, 돼지처럼 여겨지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을 통해 복음을 확실히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역사가 그들에게도 임하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14절 이후에 바로 이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리더 중의 리더인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내서 그것을 확정 짓게 합니다.

 

이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스데반의 순교가 일어났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영적으로 아름답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런데 좋은 일이 안 일어나고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다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패배감과 실패했다는 마음 가운데 흩어졌습니다. 그 중 빌립 같은 사람은 사마리아로 갔고, 거기에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나중에 11장에 보면 흩어진 성도들이 더 다른 지역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고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우리는 실패했다. 정말 괴롭다. 우리는 패배했다.’라고 느끼던 상황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고, 오히려 유대인 중심주의를 깨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생각에 갇혀 있을 때는 주님의 뜻대로 쓰임을 받지 못할 수 있는데, 오히려 우리가 실패하고 패배를 맛보는 일들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운 역전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적으로 좋은 것을 갖추어야 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간적인 장점이 아무리 잘나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냥 이 모습 그대로 써달라고 나를 드리면 써주시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만 노력해서 조금 더 훌륭한 신앙인이 되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연약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저 같은 사람도 사용해주시겠습니까?’ 하고 나오면 너무 기뻐하면서 사용해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마리아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니까 그곳 사람들이 뭘 느낍니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8)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냥 기쁨도 아니고 기쁨(great joy)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닌데 과장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큰 기쁨입니다. 이 큰 기쁨의 역사가 일어난 곳이 사마리아 성인데, 사마리아는 지난 천 년간 과절과 절망과 흑암과 한이 맺힌 슬픔의 땅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이때까지도 제대로 취급도 못 받고, 사람이 아니라 개, 돼지로 취급받던 슬픔과 좌절의 역사를 걸어온 땅이 사마리아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큰 기쁨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들의 한이 풀리니까 큰 기쁨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면, 응어리진 한이 있고 절망과 어둠과 눈물이 있는 땅에 큰 기쁨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역사이고 교회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큰 박해로 시작된 이 사건이 큰 기쁨으로 끝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에서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큰 박해가 어떻게 큰 기쁨으로 끝났는가를 보여줍니다.

 

여기 8장에 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1절에 스데반의 순교 이후 그날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랬더니 2절에서 스데반을 장사하는 경건한 사람들이 크게 우는 큰 울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울음 가운데 흩어져 복음을 전했더니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큰 박해가 있고 큰 울음이 있었는데 결국은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큰 박해가 큰 기쁨으로 바뀌는 중간에 큰 울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경건한 사람들의 울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 숨어 있던 악한 귀신들이 떠나고 어두운 세력들이 물러갑니다. 또한 병 고침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조심할 게 있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병 고침을 받는 것이 복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기적과 능력이 일어날 때 많은 사람들이 교만해집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때 기뻐하지만, 그럴 때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뭐가 된 것처럼, 내가 잘해서 됐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일뿐입니다. 어떤 기적이나 성공 자체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교회에서도 뭔가 잘하고 잘 풀렸을 때 그 자체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2.   마술사 시몬의 가짜 회심

 

빌립이 전도했을 때 거기에 아주 크다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시몬이라는 사람인데, 여기 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마술사들이 있는데 이 사람도 마술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9)

 

지금 큰 박해, 큰 울음, 큰 기쁨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자칭 큰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술이라는 것은, 요즘처럼 마술사가 손수건에서 비둘기가 나오게 하고 꽃이 나오게 하는 것 같은 마술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당시는 강력한 악한 영에 붙잡혀 실제 기적과 능력을 일으키는 차원의 마술사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magician이 아니라 sorcerer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전 실제로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주 유명한 부흥사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어느 교회에 집회를 갔다가, 대개 마지막 날 환자들을 위해 안수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지니까, 마지막 날이 되어 안수 받을 사람들은 다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안수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도를 해주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 차례가 되어 나와서는 쳐다보는데 벌써 눈빛이 이상했고 그가 째려보면서 , 까불지 마. 꺼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 부흥사 목사님이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고 합니다.

 

보통은 기도를 해주는 분이 기도해줄 때 넘어지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오히려 부흥강사가 그 말 한마디에 뒤로 넘어졌습니다. 부흥회를 한두 번 다닌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부흥사인데, 어둠의 세력에 휩싸인 이 사람 안의 악한 영의 장난에 의해서 뒤로 넘어졌다는 겁니다. 스스로도 너무 놀랐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로 그 일 이후에 이분이 부흥회를 인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눌려서 그 후로는 더 이상 부흥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가 그저 꽃이 나오고 비둘기가 나오는 정도의 마술이 아니라, 아주 강한 영적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간단히 넘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전부터거기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스스로 큰 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0-11)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즉 천한 사람부터 높은 고관에 이르기까지 다 시몬을 따랐습니다. 심지어 그가 행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시몬은 이게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마술을 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11절에서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다고 하는데, 아주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사람들이 따르며 순종했던, 영향력이 정말 대단했던 사람입니다. 시몬은 큰 능력과 큰 표적과 큰 기사와 큰 기적을 행하는 마술사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이었고, 낮은 자부터 높은 자까지 다 따르며 굽실거렸던 사람입니다. 전부터 오랫동안 이 지역 터줏대감이었고, 그 영향력이 사마리아 마을에 절대적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마술에 놀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빌립이 오기 전까지 사마리아 사람들은 오랫동안 시몬의 마술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기쁨은 없었습니다. 마술을 행하며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보고 체험하면서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기쁨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와서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복음을 접했을 때 드디어 큰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2)

 

박해를 피해 쫓겨 가던 빌립이 사마리아로 왔습니다. 사마리아를 미리 조사하고 여기에는 교회가 없으니 여기서 해야지.’ 하고 온 게 아닙니다. 그냥 쫓겨 가다가 온 사람입니다. 사마리아에 온 빌립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고, 하나님이 역사해주시니까 큰 능력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귀신이 쫓겨 가고 병자들이 낫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시몬의 능력을 5 정도라고 보면 빌립에게서는 100이라는 능력이 나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놀라고 시몬까지도 놀라게 됩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3)

 

다음 번 본문에 나오지만, 13절만 보면 시몬이 정말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해서 구원받고 세례를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18절을 보면 그가 돈을 쓰면서 나도 이런 성령의 능력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걸 볼 때, 그가 진짜 믿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회심은 가짜 회심이었습니다.

 

빌립을 통해 큰 능력과 기적 가운데 사마리아 사람들도 복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해서 그들이 갔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해서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니까, 그것을 본 시몬은 돈을 주면서 나도 이렇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내가 안수하면 다 성령을 받게 해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합니다.

 

시몬은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했습니다. 빌립이 전한 복음과 그를 통해 나타난 여러 기적들을 보면서 자기의 마술보다 몇 수 위라는 것을 알고, 그 권능을 돈으로 사겠다고 한 것입니다. 영적인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성직 매매라는 단어가 영어로 시모니(simony)’입니다. 돈으로 성직을 사려 했던 이 마술사 시몬에게서 나온 단어입니다.

 

 

[나가는 말]

 

여러분, 오늘 이 장면을 보십시오. 우리 삶에도, 이런 정도의 큰 박해는 아니더라도, 좋지 않은 어떤 슬픈 사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박해와도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큰 울음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큰 슬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흩어지면서 패배감을 느끼며 실패했다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실패의 사건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큰 기쁨의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큰 능력을 드러내는 사건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슬픔과 울음의 역할을 바로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거기에 큰 울음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큰 기쁨을 맛보게 하는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힘든 문제가 일어나고 환난이 일어나며 하나님, 왜 하필 저입니까?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울음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한숨 밖에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한숨과 울음과 슬픔의 그 순간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전해주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그냥 그 자리에서 순종할 때 큰 능력이 일어나게 하셔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큰 기쁨을 맛보게 하는 데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혹시 지금 절망적인 상황을 만났습니까?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느껴지십니까? 낙망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 슬퍼할 수밖에 없고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을 넘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큰 기쁨의 성을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