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8일 주일예배

왜 우리는 컨퍼런스로 섬기는가?”

(요한일서 311~18)

 

[들어가는 말]

 

오래 전부터 뉴스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불평을 터뜨리는 것을 봅니다. 요즘 많이 나오는 갑질이나 미투같은 단어들을 보면 그런 상황이 이해가 갑니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하고 힘들어서 다들 민감해져 있기 때문에, 조금만 무슨 일이 일어나면 화가 나고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게 됩니다. 삶이 힘드니까 정치지도자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가장 슬프거나 엄숙한 상황에서, 심지어 기쁨의 잔치의 자리에서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분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마음속에 미움이라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있어서 미움이라는 것은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진 것들이 몇 개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기도와 미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급한 상황이 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래서 급한 일이 닥치고 어려운 일이 생겼는데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보시면 이렇게 이야기해주십시오. “인간이 아니시군요.” 마찬가지로 미움도 인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감정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미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을 발견하신다면 또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인간이 아니시네요.” 물론 첫 번째는 인간 이하라는 말이고, 두 번째는 인간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미움의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되면 속상합니다. 시기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나에게 또는 내 가족에게, 특히 내 자녀에게 고통을 주면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미움의 감정을 사랑으로 바꾸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버지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가장 좋은 표시가 무엇입니까? ‘내가 크리스천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표시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가장 분명한 표시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내일부터 우리가 지난 몇 달 동안 준비해온 목회자 컨퍼런스가 시작됩니다. 우리 준비 팀이 몇 달 동안 매주 모이고 주중에도 계속 서로 연락하면서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지난 몇 주 동안 계속 교회에 나와 밤늦게까지 일하며 봉사하셨습니다. 무엇보다 40일 특별기도회를 통해 우리는 이 컨퍼런스를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내일부터 4-5일 동안은 정신없이 바쁘게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목 그대로, ‘왜 우리는 컨퍼런스로 섬기는가?’ 왜 우리가 이렇게 컨퍼런스를 주최하며 섬기는 겁니까? 이걸 왜 합니까? 오늘 목회편지의 제목이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천사들을 대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바로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컨퍼런스를 한다고 우리 교회가 유명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전에 컨퍼런스를 주최한 교회들을 보면, 그 교회들이 지금 유명하거나, 그 교회 목사님이 아주 떴거나(?),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컨퍼런스를 주최한 이후에 어려움을 당한 교회도 있고 힘들어진 교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것을 왜 하는가?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짧게는 가정교회를 먼저 하신 분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그리고 더 멀리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계속 받기만 하겠습니까? 사랑의 본질은 베푸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베풀 때가 되었고 섬길 때가 되었습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1.  가인의 미움 (11-13)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내용에, 요한일서를 쓴 사도 요한은 의로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의로워야 한다고 하고, 오늘 본문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표시가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10절에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대조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서로 대조되는 말들이 나옵니다. 사랑과 미움, 생명과 사망, 자기희생과 살인이 서로 대조되는 개념으로 나옵니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2:24)

 

여기에서 처음부터 들은 것을 말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1)

 

처음부터 들은 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죽어줄 정도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런 사랑을 원래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죽게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 마음속에 그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였고 나를 감시하고 벌을 주는 분으로 생각되었는데, 이제 하나님이 더 이상 밉거나 두렵거나 멀리 하고 싶지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받게 되면 내가 원래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었던가?’ 하는 깨달음과 감격이 옵니다.

 

자기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은 잘못이지만, 자기를 주님의 눈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과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녀가 서로 사귈 때, 아니면 결혼하고서도, 자기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일단 자기 마음에 기쁨이 없고 평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굉장히 힘들게 합니다. 결혼해서 잘 살 줄 알았는데, 잘 될 줄 알았는데, 더 힘들어지는 겁니다.

 

우리에게 이처럼 악한 본성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우리 안에 엄청난 미움, 마귀적인 미움이 나타날 때 너무 놀라거나 충격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믿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라고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분노하며 말을 내뱉고 나서 조금 후에 보면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럴 때에도 충격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신앙이 신실한 사람도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시기하는 악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옛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솔직히 다른 사람이 잘되기보다는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다른 사람의 자녀보다는 내 자녀가 더 잘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한 가지 의미는, 그런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움이나 시기심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고, 그 대신 사랑하는 마음이 이기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더 크게 하라는 것입니다. 분명 나쁜 마음이나 악한 생각도 있지만, 결국 사랑의 마음이 나타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님 안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이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용합니까? 기도로 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기도로써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마음속으로는 미움이 있으면서 겉으로 사랑으로 대하는 것은 위선이 아닌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리새파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이었는데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을 100% 완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임에도 예수님을 닮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이 앞을 향해 나아간다고 한 의미입니다. 어떻게든 주님의 뜻을 이루어보기 위해 애쓰며 나아갈 때, 어떻게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나아갈 때,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보시며 기뻐하십니다.

 

나는 위선자가 되기 싫으니까 내 감정대로 하겠다. 나는 속에 미움이 있으면 그냥 이야기하고, 싫으면 그냥 이야기한다. 나는 뒤끝이 없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가인과 아벨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12)

 

요한은 미움의 대표적인 예가 되는 사람으로서 가인을 드는데(창세기 4), 그것은 가인이 보여주었던 미움의 모습과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어야 하는 사랑의 모습을 대조해서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형인 가인이 동생을 죽인 살인은, 이후에 언급될 형제자매를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자기희생과 너무나 반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가인은 자기 행위가 악하다는 것과 동생의 행위는 의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그가 분노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죄의 소원이 너의 마음 문 밖에 있다. 네가 죄를 지으려고 하기 직전이다. 그러니까 조심하라. 그것을 물리치라.’ 하고 경고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가인은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을 죄에 넘겨주어 결국 동생을 죽이는 죄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을 통해 자기가 누구와 연결되었는지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그는 악한 자”, 즉 마귀에게 속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움과 증오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 대신에 마귀의 속성인 미움과 살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육신으로는 같은 부모에게서 난 형제이지만 그들의 영적 아버지가 달랐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자녀였지만, 가인은 마귀의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가인은 마귀의 자식이니까 사랑이 아닌 미움을 실천했습니다. 마귀의 속성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결론은 살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처럼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랑 (13-15)

 

결국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 됨의 결정적인 표시는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할지 모르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사랑 밖에 없습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3)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믿지 않는 사람들)이 미워할 때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주 결정적인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15)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신약성경이 쓰인 헬라어에서 계속성 동사입니다. 한두 번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으니까 사망에 머물러 있다거나 가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형제자매를 미워한다면 곧 살인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한두 번 잘못해서 지적하신 아닙니다. 특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을 향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쫓아냈다.’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를 못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반대하고 비난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가리켜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용서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한두 번 넘어질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누가 미워지고 보기도 싫고 그 사람이 온다고 하니까 안 가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쩌다 그럴 수는 있지만, 평생 안 바뀌고 계속 의도적으로 안 바뀌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한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언급할 때 아가페(agape)’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아가페 사랑의 본보기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요한이 말하는 사랑은 결코 십자가 사건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한 사랑이 온전히 드러난 곳이 오직 주님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로마서 5장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5:6-8, )

 

가인은 아벨을 죽임으로써 마음속에 있던 자신의 미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미움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폭발시키면 행복해집니까? 여러분, 분노를 폭발해보셨을 때 너무 행복하셨습니까? 지옥이 됩니다. 상대방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가 죽습니다. 왜냐하면 상대에 대한 나쁜 생각을 끊임없이 마음속에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자기 마음에 있는 다른 감정들이 모두 녹아서 분노의 지배를 받게 되며 마음에 평안이 사라지고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미움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버리면 그것을 받은 상대방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잘못했다며 나옵니까? 아닙니다. 분노하며 복수를 계획합니다.

 

상처 되는 말을 들은 사람은 당장 죽지는 않아도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괴로워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상처들 중에서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상처는 어떤 겁니까? 얻어맞아서 생긴 상처가 아닙니다. 말로 당한 상처입니다. 말로 상처를 받은 게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겁니다. 가장 괴로운 상처는 말로 받은 상처입니다. 미움은 끓는 물과 같아서, 자기 속에 담아두면 자기가 데이게 되고, 남에게 쏟아버리면 상대방이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그 상대방도 물을 끓여서 부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움은 내가 미워하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까지도 미워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별로 이야기한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이상하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또 그와는 반대로, 나와 별 상관도 없고, 나에게 못되게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별로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보면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미워하는 사람과 어딘가 닮은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과 비슷한 머리 스타일을 하거나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도 괜히 밉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까지도 미워하게 되는 것이 미움의 결과입니다.

 

가인과는 반대로, 예수님은 추악하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형제자매로 삼으시기 위해서 스스로 생명을 희생하심으로써 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또 우리로 하여금 이 사랑을 알게 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망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죽으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려 하셨습니다. 정말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 아가페 사랑입니다.

 

거의 30년 전쯤 캘리포니아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미국 가정의 10대 소녀가 가출을 해서 마약을 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백방으로 딸의 연락처를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누가 딸을 봤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LA 어느 지역에서 매춘부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딸의 삶에 대해 충격을 받았지만, 막상 찾으려 하니까 LA 지역이 얼마나 넓습니까?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 떨어진 구슬 하나를 찾는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딸을 찾기 위해서 딸의 사진이 들어 있는 전단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그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전단지를 보면 딸이 얼마나 창피해할까? 나중에 시집가는 데 지장이 있겠다.’ 딸의 마음을 배려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전단지에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넣었습니다. “이 사진 속의 엄마가 딸을 애타고 찾고 있음”. 매춘부를 하고 있다는 내용도 넣어야 했는데, 그래서 자기 사진을 넣었습니다. 그러자 그로부터 3일 만에 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그 엄마도 자기 딸이 창녀 짓을 한다고 광고를 내며 자기 사진을 전단지에 넣을 때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내가 무너지겠다. 창피를 당해도 내가 창피를 당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자기 사진을 넣었습니다. 그랬을 때 드디어 딸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런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무너지더라도 상대방을 세워주겠다.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나는 무너져도 괜찮다.’ 하는 자기희생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아직 먼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심지어 가족이 창피를 당하더라도 나는 안 당하겠다는 마음이 아직도 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우리도 그렇게 살라는 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가인이 증오와 살인의 결정적 본보기였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랑과 생명의 절대적인 모범이었습니다. 가인의 증오는 살인을 낳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희생을 통하여 생명을 낳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을 통하여 우리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3.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인 사랑의 섬김 (16-18)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6)

 

그 유명한 요한복음 316절과 더불어 이 요한일서 316절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는 사랑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는 진실성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행복을 위해 내 것을 내어주고 포기하게 됩니다. 자기희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희생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몸을 사리고 계산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별로 성장하지 않는다고 의아하십니까? 신앙생활에 별로 기쁨이나 평안이 없으십니까?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자기희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 몸을 사리거나 너무 계산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저 내가 편한 대로만 하고, 내가 원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하고, 내 스케줄에 맞을 때만 하고, 그렇게만 하니까 신앙이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어진 그 엄청난 기쁨과 평안을 알지도 못합니다. 자기희생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다른 형제자매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자기 시간도 쓰고 물질도 써 가면서 섬길 때 어떻습니까? 물론 당장은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기쁨이 마음속에서부터 올라옵니다. 참 좋습니다. 이것을 경험하고 있는 분들이 여기에 많이 계시지 않습니까?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 것을 내어줄 때,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섬길 때, 몸은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만 이상하게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마음이 뿌듯하고 참 좋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7-18)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전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본질은 자기희생이기 때문입니다물론 말로도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말로만 하고 끝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행동으로 증명되지 않은 말만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로는 무엇을 못 합니까? ‘말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말도 하고 행동도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게 아니라 손과 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찔립니다. 교회에서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목사입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지만, 말로만 다 하려고 합니다. 그런 경향이 제게 있습니다. 그런데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론 움직이기도 해야 하지만, 사실 목사로서 사랑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제가 기도할 때 그것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실 목사뿐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이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면 몸을 움직여 섬김도 해야 하고, 만나지 못하고 있을 때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학교 다니는 자녀를 두신 분들은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가 24시간 쫓아다니면서 보호해줄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고 있을 때는 사랑으로 섬겨주어야 하지만, 못 보고 있을 때는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기도로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다른 형제자매를 사랑하는데 기도는 안 한다면 그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형제자매를 사랑함의 구체적 실천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지극히 높고 고상한 차원도 있지만, 아주 작고 하찮은 부분, 즉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이웃에게 가서 함께 있는 것도 포함합니다. 큰 것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작은 실천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결코 이론에만 머물러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자기희생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단지 믿는다고 하거나 사랑한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 가운데서 행함으로 그 믿음과 사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서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것을 볼 때 더 큰 기쁨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과 함께 아주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굉장히 비싼 음식을 주문해서 먹으면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싼 것을 사먹을 돈을 조금 아껴서 그보다 좀 덜 괜찮은 곳에 가서 식사를 하고, 그만큼 아낀 돈을 가져다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겁니다.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는 겁니다. 그럴 때 비싼 음식 사먹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이 있습니다.

 

목장으로 집을 오픈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리도 해야 하고, 아이들이 와서 어지럽힐 수도 있고, 몸도 힘듭니다. 그러나 하고 나면 잔잔한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목장에서 선교헌금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할 거 다 하고 나서 남는 돈으로 선교헌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20달러짜리 먹을 것을 아껴서 10달러짜리를 먹고 남는 10달러를 모아두는 겁니다. 10달러짜리를 먹는데 8달러짜리로 먹고 2달러를 아껴서 그렇게 몇 번 아껴서 쌓아놓은 것을 모아서 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이전에 몰랐던 기쁨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위해서 지난 몇 달 동안 컨퍼런스 지정헌금을 하기로 당회에서 결정하고 작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매주 주보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100, $200, $300, $1000 , 매주 컨퍼런스 지정헌금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외부에서 헌금하신 분도 있고, VIP 분까지도 헌금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모은 것이 벌써 만 불이 넘었습니다.

 

그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꾸준히 마음을 모은 것이 감동입니다. 사실 그 돈을 얼마든지 다른 데 쓸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내 아이를 위해서, 또 더 좋은 것을 살 수도 있는데, 한 번 섬겨보자는 마음으로 드리면서 이렇게 모았다는 것이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큰일을 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해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것을 보시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런 최고의 사랑을 경험한 자로서 이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형제자매들을 위해 그렇게 할 때입니다. 일단은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이것을 하라고 부르실 때 과감하게 결단하고 자신의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원하셨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벌써 끝났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잘하면 사랑해주시고 못 하면 사랑을 안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지 다른 이야기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다가도 그 사람이 내게 이상하게 굴면 어떻게 합니까? 본전 생각이 나는 겁니다. ‘나는 자기를 이렇게 섬겨주고 사랑해주었는데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한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왜 사랑합니까?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 사랑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랑을 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원하셔야 했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냥 죽게 내버려두셔도 되었는데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는, 그런 최고의 사랑을 경험한 우리는, 사랑의 동기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장에서 그것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늘 연습해야 합니다. 연습과 훈련 없이 갑자기 되지 않습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아니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 심지어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만나서 섬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게 목장이고 그게 교회입니다. 우리가 서로 가깝게 만나며 지내다 보면 사실 상대방에게 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발견됩니다. 처음에는 좋은 것 같았는데 대화하며 친하게 지내보면 불편한 점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합니까? 도망갑니다. 회피를 합니다. 더 이상 안 만나거나, 교회를 옮기거나, 직장을 옮기거나, 이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도망가고 회피하면 어떻게 됩니까? 가보십시오. 더 강력한 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제대로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제가 오래 전 한국에 나갔을 때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던 샴푸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로 샴푸였습니다. 샴푸와 린스를 하나로 합쳐서 인기였습니다. 20세의 치아를 80세까지 유지하라는 ‘2080치약도 있었는데, 그렇게 여러 히트상품을 만들어낸 분이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에 있는 화장품 회사의 사장으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결코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장군의 꿈을 품고 23세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그런데 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쪽 손을 잃었습니다. 그 후 왼손 하나로 온갖 역경을 딛고 대한민국 최고의 마케터가 되기까지 많은 역경 극복의 치열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고 후에 깨어나니 육군 통합병원이었고, 엄격하고 한 번도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픈 중에서도, 당시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오른손은 없이 몸은 붕대를 칭칭 감아 미라 같은 자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간신히 전화를 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끊었습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병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때 30분 넘게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간신히 아직도... ... 사랑해?”라고 물으니까 여자 친구가 고개를 두 번 끄덕 거렸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기뻤지만, 그는 이건 너무 이기적이다. 이제 그만 이 천사 같은 사람을 보내줘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사랑할 수 없어. 그러니 얼굴 봤으면 됐고, 이걸로 정리하고 끝내자.” 그러자 여자 친구는 눈시울이 빨개지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당신한테 내가 필요 없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부터는 당신 곁에 내가 있어야 해요.”

 

여자 친구는 아예 병원 옆으로 이사를 와서 병간호를 해주었는데, 그때 그 아버지가 나타나 딸을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저항하는 딸에게 아버지와 그 남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때 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약 아빠가 손을 잃었다면, 엄마가 어떤 태도를 보이기를 원하세요? 나는 이 남자의 전부를 사랑한 것이지, 손만 사랑한 것이 아니에요.” 이 여자 친구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결혼해서 아내가 되었는데, 아내를 통해 그분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도 했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평생 이 여자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에 빚진 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의 빚진 자가 되니까, 어떤 수모와 수치도 이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국가유공자로 표시를 하면 오히려 회사들이 안 뽑았다고 합니다. 장애인이어서 취업이 쉽지 않았고 시험마다 떨어졌지만, 그 사랑을 기억하고 이겨냈다고 합니다. 힘들었지만 사랑에 빚진 자가 되니까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종종 자존심이 상해서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자존심이 상한 게 아니라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존심도 내려놓게 합니다. 선교 현장에 가보면, 이유 없는 핍박이 많습니다. 학교를 세우던 선교사님이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계속 안 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정말 자존심 상할 정도입니다. 그라먄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수모까지 당하면서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다고 섬기는데 그래, 섬겨봐, 섬겨봐.” 하고 약을 올리거나 수치를 주면 힘이 듭니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사랑에 빚진 자다.’라는 마음입니다. 사랑에 빚진 자라면 기쁨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에 빚진 자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교만을 떨 수 있겠습니까? 사랑에 빚진 마음에서 헌신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사랑을 모르니까 눈물이 없는 겁니다. 눈물이 없으니까 날카로워지는 겁니다. 하지만 사랑은 장애를 넘고 따뜻하게 만들며, 감사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줍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사랑 때문에 컨퍼런스를 주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자신의 하루 일과를 돌아보십시오. 그 일들 중에 천국까지 가져갈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됩니까? 전부 다 죽으면 다 놓고 갈 것들, 다 끝날 것들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가치를 가진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섬긴 것만이 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어떤 분을 열심히 섬겼더니 그분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럼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천국에 갑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저 천국에 같이 가는 사람이라는 열매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번 컨퍼런스가 왜 영원한 가치를 가진 일인가? 열심히 섬기고 헌금한 것의 결과를 당장은 모를 수 있습니다. 선교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갔더니 전혀 알지 못하는 볼리비아 사람, 파라과이 사람, 한국에서 온 사람이 와서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당신이 누군데요?” “당신이 목회자 컨퍼런스 때 밥을 하며 섬겨주셨는데 그때 그 밥을 드신 선교사님이 와서 복음을 전해주실 대 제가 믿고 여기 오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또 우리가 보낸 선교헌금을 통해서, 나는 몰라도 그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런 섬김이 영원한 가치를 가진 일입니다. 여러분, 나의 삶에 이 영원한 가치를 가진 일을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이번에 이런 귀한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6절과 18절을 다시 읽으며 오늘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