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611일 주일예배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산다 5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기

(야고보서 15~8)

 

[들어가는 말]

 

여기 있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있으십니까? 있다면 어떤 식으로 들으셨고,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들은 적이 없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중요한 결정을 하셨습니까?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교회에서 사역을 맡을 때는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시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만둘 때는 더욱 주님의 음성을 듣고 끝내야 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뭔가를 시작할 때는 기도해보고 시작합니다. 사역을 시작하거나 직분을 수락할 때 기도해보고 합니다. 그러나 그만둘 때는 주님의 응답을 구하거나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마음대로 그만둘 때가 많습니다.

 

직장을 잡을 때나 사업을 새로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많이 기도합니다. 그러나 끝낼 때는 자기 마음대로 끝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헌신의 세 가지 장인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뭔가를 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시작하며 듣고 끝내야겠습니다.

 

특히 직장 관계로 이사를 가거나 교회를 옮기려는 생각이 들 때, 반드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움직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의 방향은 자기 취향이나 계획이나 욕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해주시고 인도해주셔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했다는 것은, 자기가 예수님의 종이 되고 예수님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선교 대장정 팀이 와서 24세 밖에 안 된 형제가 너무나 귀한 도전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우리의 왕이시라면 예수님이 뭔가를 하라고 하실 때 주님, 그거 안 됩니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된다고 거부하면 나의 왕이 아니신 겁니다. 어떻게 종이 왕에게 안 된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이처럼 종이 주인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종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자칫 하나님의 뜻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위험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몇 가지 성경 구절들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은 성경적으로 근거가 있으며 또한 성경에서 명령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

 

첫 번째로 생각해볼 성경 본문은 바로 오늘의 본문인 야고보서 1장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5)

 

여기서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리켜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5). 그런데 그 하나님께 구하라고 권면하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지혜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지혜는 지식과 다릅니다. 지식이 머리에 쌓이는 정보를 의미한다면, 지혜란 어려운 환경이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필요한 마음의 능력을 말합니다.

 

성경에 야고보라는 인물이 여러 명 나오는데, 그 중에도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가 쓴 책이 야고보서입니다. 열두 제자 중 야고보는 열두 사도 중 가장 먼저 순교했기 때문에 뒤에 나온 이 야고보서를 쓸 수 없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쓴 책입니다. 그는 자기 형인 예수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지 않다가, 나중에 예수님의 부활 후 믿게 되었고, 결국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담임목사)까지 된 사람입니다.

 

야고보가 이 편지를 쓸 때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이 형성되기 전입니다. 그 당시에는 크리스천들도 구약성경은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구약 39권은 거의 확정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가 하늘로 올라가신 지 약 25년 후부터 60년 후(AD 55-90)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신약의 책들 27권의 대다수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인간으로 직접 사셨을 때 그분이 하신 말씀을 직접 들었고 하시는 일들을 직접 보았고 그분을 직접 만났던 사람들이 대부분 아직 살아 있을 때 쓰였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소위 부활 장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야고보, 게바, 사도들에게 나타나시고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고린도전서를 쓴 그 당시에도 그들 중 다수가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본 사람들이 살아 있는데, 신약 성경의 내용이 가짜라면 어떻게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 내려올 수 있겠습니까?

 

그 기간 동안 예수님의 최측근으로서 그분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사도들이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곧 오겠다고 하셨지만,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예수님의 과 자기들의 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약 성경은 대부분이 사실은 편지입니다. 요한계시록도 편지입니다.

 

결국 틀림없다고 여겨지는 책들이 모여서 신약 성경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자연스런 과정을 거쳐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27권으로 된 신약성경이 정경으로 인정되었는데, 그것이 300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것이 확정된 카르타고 종교회의가 AD 397년에 있었습니다.

 

야고보가 이 야고보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완전히 확정되기 전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구약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는 있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건에 비추어 구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특별한 조명이 필요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지혜를 구할 때에도 성령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지혜가 필요하면 하나님께 직접 구하라고 선포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자신이야말로 낙타 무릎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 구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의심하지 말고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6-8)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의심하며 기도하면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놓고도 이게 될지 의심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1세기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예언하기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고전 14:39, )

 

성경이 아직 책으로 형성되기 전인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때에는 예언자(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대 교회 때 음성을 들려주셨고 환상을 보여주셨으며 지금도 한결같이 들려주고 계십니다. 물론 그때와 똑같이 하지는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2천 년 전에만 말씀하시고 지금은 말씀을 들려주지 않으신다고 생각할 근거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할 때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설교를 통해서, 목장 나눔을 통해서,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뜻을 알려주기도 하십니다.

 

지난주에 LA 부모님 댁에 휴가를 갔을 때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 앞에 앉은 중년 여성분이 그날 처음 온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배 중에 아멘, 아멘하고 찬양할 때는 몸을 흔들면서 너무나 열정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뒤로 쳐져서 졸린 가운데 하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며 아멘으로 화답하고 성경도 찾아보면서 적극적으로 할 때 되는 것입니다. 멍하니 다른 데를 보는 아이에게 아무리 옆에서 엄마가 , 밥 먹어!”라고 소리를 쳐도 듣지 못하는 것처럼, 듣기는 듣는데 생각이 다른 데 가 있으면 마음에 미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열심히 애쓰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

 

두 번째로 살펴볼 말씀은 마가복음 13장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고 가서 넘겨줄 때에, 너희는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무엇이든지 그 시각에 말할 것을 너희에게 지시하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13:11, )

 

이 말씀은 종말과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가르치시다가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내 이름으로 핍박을 받을 것이고 내 이름으로 체포되어 총독들과 왕들 앞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거기에 굴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며 나의 증인이 되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다수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왕 앞에서나 관원 앞에서 예수님을 전파한다는 것은 아주 겁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겁내지 말아라. 그때그때 생각나는 말을 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 말은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때가 되면 자기들이 할 말을 주님께서 들려주신다는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해야 할 말을 들려주시고, 제자들은 주님이 해주신 음성을 듣고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해야 할 말이 필요한 현장에서 필요한 때에 그 음성을 들려주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해주신 이 약속의 말씀이 1세기에 살았던 제자들에게만 해당되고 21세기를 사는 제자인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인데, 다른 말씀들도 믿는다면 이 약속 역시 하나님의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요한 때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또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를 구하면 꾸짖지 않으시고 후하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지 않는 분에게 전도할 때나 다른 성도와 교제하고 대화할 때, 특히 어떤 분이 상담이나 조언을 구할 때,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고 전달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가져야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누구와 보통 교제이든지 목장 모임이든지 또는 어떠한 모임이든지,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고 나가 보시기 바랍니다. 놀고 즐기는 모임이라 할지라도, 교회에 안 다니는 분들과 교제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분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나가보십시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듣는 데 더 민감해집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어떤 상황이 벌어질 때 어떻게 대처할지 지혜를 주십니다.

 

 

3.  우리 안에 거하시며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제자인 요한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으면, ‘기름 부음이라는 단어를 성령으로 바꾸어 읽으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성령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성령님이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느끼지 못하더라도 지금 계십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여 진리를 가르쳐주시니까, 가르쳐주시는 그대로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성령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가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과 성경 내용이 서로 반대가 된다면 무엇이 맞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악령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성경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일반적인 진리를 가르쳐주실 뿐만이 아니라,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서 정확하게 필요한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구약과 신약의 가장 큰 차이는 율법과 은혜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구속을 받지 않으니까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약과 신약을 율법과 은혜로 구별하는 것보다 더 올바른 방법은 율법과 성령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십계명을 포함한 여러 계명들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주셔서, 그 율법을 지키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그 계명들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예 지킬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 후에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영원히 우리 안에서 사십니다. 이것을 성령님의 내주라고 합니다. 영원히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함께 살아주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그냥 우리 안에서 가만히 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직접 개입하시면서 구체적으로 인도해주시고 코치를 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안 믿다가 믿은 분들이 이전에 했던 안 좋은 습관을 또 하려고 할 때 찔리는 겁니다. 옛날에 술고래였다면, 예수님을 믿은 후에 또 한 잔을 해보려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찔리는 겁니다. ‘안 해야 되는 게 아닌가? 그래도 내가 믿었는데 안 해야지.’ 이전엔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는데 성령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더욱 큰 차이는 설교가 들리는 겁니다. 이전에는 뭔지 전혀 감이 안 잡히고 졸리기만 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니까 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지혜로운 말을 해야 할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해야 할 말을 주십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에 닥쳤을 때에는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고 싶으신 일이 있을 때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율법이 폐해졌다는 말은, 율법과 상관없이 우리 마음대로 막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주시기 때문에 율법의 지배가 필요없어졌다는 뜻입니다.

 

“16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런데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20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21 질투와 술 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5:16-23, )

 

한 번 비교해보십시오. 음행,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 맺음, 다툼, 시기, 분냄, 분쟁, 분열, 파당, 질투, 술 취함, 흥청망청, 놀음 같은 것들은 말만 들어도 좋지 않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는 막을 율법이 없습니다.

 

이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이전에는 그렇게 음란과 방탕과 술 취함으로 살던 것이, 성령님이 들어오시니까 그런 것들은 좋지 않게 느껴지면서 멀리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 이런 게 좋다.’라고 바뀐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주시고 소원대로 살 수 있는 능력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2:1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려고 했지만 오히려 외식하는 자, 즉 위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갈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또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나가는 말]

 

제가 우리 교회에 온지 벌써 12년이 지났는데, 새벽에 기도하면서 귀한 기도의 체험들을 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집이 멀어 새벽에 많이 나오지 못하지만, 주중에는 자율적으로 기도하고 토요일에만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번 다니엘 금식기도 때 완전금식이나 일반금식이 아니라 채식 중심의 부분금식이었지만, 3주 동안 너무나 귀한 시간이었고 많은 기도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또 지난 5월 중순부터 중보기도실 사역이 시작되면서 더욱더 기도의 체험이 좋습니다. 벌써 많은 응답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겹줄 기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등을 통해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고 삶 공부 때마다 나누는 것이라 죄송하기는 하지만, 제 간증을 잠시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간증은 자기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해서 새벽기도를 하며 매일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10년 전 가정교회 목회자 세미나를 다녀온 후 도전을 받고 3시간 기도를 시도했습니다. 이전에 다른 데 있을 때도 방언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했는데 안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녀온지 이틀 만에 방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더 많이 하라는 뜻입니다.

 

그 후부터 기도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의무감이나 어쩔 수 없이 하는 적도 많았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니까 기도하기가 쉬워졌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기도 시간이 정말로 기대되고 기다려지면서 정말 내 기도하는 이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라고 하는 찬송가 가사가 마음에 와 닿게 되었습니다.

 

그 뒤 가정교회로 전환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겁니다. “네가 하냐?” 주님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다른 때 기도하면서 주님, 이 교회를 제가 어떻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 제가 우리 교회를 제대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또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 교회냐?” 그러니까 주님의 교회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 아닙니까?

 

그 후 또 안타까운 일들이 있어서 답답함 가운데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버티라. 내가 이루리라.” 그것을 들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 버티면 이루시는구나.’ 그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그 후 실제로 잘 풀렸습니다


그 외에도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다 새벽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루는 새벽기도 중에 어떤 아이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우리 교회의 어떤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아주 환하게 웃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집에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가정이 그때 영주권을 안타까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얼마 후 영주권을 탁 받았습니다.

 

또 어떤 교우가 직장을 잡는 문제로 고민하면서 같이 기도해달라 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또 새벽에 음성을 들려주시는 겁니다. “이미 주었다.” 그때 한 군데가 안 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미 주셨는데 왜 안 되고 있느냐고 또 기도했더니, 바로 얼마 후 더 좋은 곳이 되는 겁니다.

 

이런 말들은 제가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이렇게 좋은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말씀드렸습니다. 놀랍게도 다 새벽에 기도할 때 이루어진 일입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게 맞습니다. 예수님도 새벽에 기도하셨고, 새벽에 기도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지금도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물론 제가 주님의 음성을 육성으로 귀에 들은 것은 아닙니다. 머릿속에 그대로 심어주신 겁니다. 직접 뇌에 심어주시면 되는데 뭐 하러 귀에 말씀을 주셔서 거쳐가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신실하시고,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우리 작은 신음소리에도 응답하십니다. 내 기도 한마디도 다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음성을 들려주시는 주님이십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어떻게 알아?’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가 주님의 음성을 귀로 들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분명히 압니다. 어떻게 압니까? 기도해보면 압니다. 기도하는 분들은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계십니다. 기도를 안 하는 분들은 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하실 텐데, 한 번 해보십시오. 그런 게 있습니다.

 

혹시 아직 그런 경험이 없으시더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연애를 하는 기분으로 대화해보십시오. ‘나도 한 번 그런 체험을 해보아야겠다. 나도 음성을 들어봐야겠다.’ 하고 체험을 추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자연스럽게 들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그냥 들립니다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음성이 들립니다. 응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으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분의 사랑의 터치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평안과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요즘도 저는 너무나 포근한 그분의 품에 안겨 새벽마다 정말 좋은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의 자리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특히 새벽기도의 맛을 아시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새벽마다 그분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가는 시간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데이트 시간입니다. 정말 너무 좋습니다.

 

저는 여기 계신 여러분 모든 분이 저보다 더 생생한 하나님의 터치를 받고 체험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베풀어주시는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자꾸 짐처럼 느껴지고 재미가 없는 겁니다.

 

사실 기도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뭐겠습니까? 하나님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이 시대에 정말 느끼는 것은, 하나님을 열심히 잘 믿는 사람은 참 많다는 것입니다. “주여, 믿슙~니다!” 하며 엄청나게, 뜨겁게 믿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성경공부도 하고 열심히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렇게 지적을 했습니다. “이 시대 교회의 위기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많은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 원하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분일뿐 아니라, 우리 생활의 작은 부분까지도 자상하게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를 사모하는 우리가 되어서, 그분의 인도하심 가운데 형통한 삶을 살기를, 하늘의 복을 많이 받고 그 복을 나누어주는 놀라운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