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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23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마가복음 58

부활의 증인이 된 세 여인

(마가복음 161~8)

 

[들어가는 말]

 

16세기 유명한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열심히 종교개혁을 추진해 나가던 루터가 너무 지쳐서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습니다. 사흘을 자리에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는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실망과 좌절 속에 빠져 누워 있던 루터 앞에 그의 아내 카타리나(Katharina)가 상복을 입고 등장했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누가 죽었습니까?”

   “, 죽었습니다.”

   “누가 죽었단 말이오?”

   “당신의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당신이 이렇게 포기하고 누워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 한 마디가 루터를 깨웠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아내와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가서 강력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라는 거룩한 소명 앞에 자신의 인생을 드리기로 다시 한 번 작정합니다.

 

루터는 자기 아내의 그 지혜로운 도전이 없었더라면 중도에 그만두었을 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때 루터의 아내가 당신이 겨우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실망이다.’라고 했거나, 최근에 유행했던 말처럼 내가 이러려고 수녀를 관두고 당신과 결혼했나, 자괴감이 든다.’라고 했거나, 욥의 아내처럼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하지만 루터는 아내의 믿음의 도전으로 인하여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뜻밖의 사람들이 큰일을 일으키곤 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서 쟁쟁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의 역사, 복음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비범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을 보면 평범한 정도를 넘어 아주 비천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는 숫자를 셀 때 들어가지도 못하고 재판 때 증인이 될 수도 없는 여인들이 놀랍게도 부활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 여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1.  그들의 사랑 (1-2)

 

그 동안 살펴본 이 마가복음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의 삶에는 여러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 베드로의 장모가 나오는데, 예수님이 고쳐주시자 일어나서 예수님을 섬깁니다(1:30-31). 또한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께 육신과 영혼의 치유를 받습니다(5:25-34). 귀신 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은 믿음에 대해 예수님의 칭찬을 듣습니다(7:24-30).

 

300데나리온이 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린 무명의 여인도 있습니다(14:3-9). 특히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했다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향유를 부은 그 여인 외에도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하여 세 명의 다른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1)

 

15:40-41을 보면 이 여인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현장까지 따라왔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열두 명의 제자들 중 그 누구도 십자가 현장에 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여인들과 아리마대 사람 요셉만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세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된 무덤까지 따라가서 봅니다(15:47). ‘보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무덤을 다시 찾아오려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향품을 미리사다 둔 것입니다(1). 안식일을 금요일 해 질 무렵에 시작되어 토요일 해 질 무렵에 끝납니다. 이때 상점도 다시 열기 때문에, 여인들은 그 시간에 가서 향품을 사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무덤을 찾아가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2)

 

여인들은 다음 날 새벽, 해가 막 돋은 때에무덤을 찾아갑니다. 자기들이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간 것입니다. 여인들은 향품을 예수님께 바르기 위해 갔는데, 그것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지 않고 단지 세마포에 싸서 무덤에 안치했기 때문입니다(15:46).

 

요한복음(19:39-40)에는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알로에) 섞은 것을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있지만, 마가복음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당일에 향유 바르는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식일 후 첫날이 되자마자 가장 이른 시간에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갔습니다. 물론 요한복음에는 요셉과 니고데모가 향료와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싸서 안치했다고 되어 있지만, 향유를 제대로 바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의 장례 풍습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이 구분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시체를 무덤까지 운구했고, 이때 전문적으로 곡하는 여인들과 피리 부는 사람들이 뒤따랐습니다. 시체가 무덤에 놓이면 여자들이 시체에 향유를 바르고 세마포로 싸는 일을 했는데, 향유를 바른 이유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시체 썩는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남자인 요셉과 니고데모는 향유 바르는 전문가도 아닌데다가, 그때는 안식일이 되기 직전인 금요일 늦은 오후였기 때문에 서둘러 안치를 마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제대로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간 것입니다.

 

이러한 여인들의 행동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예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의 자리를 지켰고, 이제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가는 겁니다. 그러다 이 여인들은 놀랍게도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그것도 첫 증인이 됩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던 열두 제자는 다 도망간 그 십자가 죽음의 자리를 지킨 것도 이 여인들이고, 부활의 자리에 간 것도 이 여인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기적을 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습니까? 저도 저 자신에게 늘 질문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큐티(QT)를 하는데, 가끔 하기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하는데, 가끔은 나가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매일 하는데 하루쯤 빠져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럴 때 불쑥 올라오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느냐?’

 

부모라면 자기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다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자녀가 하고 있는 음악, 미술, 스포츠 등 행사가 있으면 데리고 가줍니다. 시간이 아무리 이르거나 늦어도,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데리고 가서 참여시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냥 빠지면 안 됩니까? 한 번쯤 빠져도 지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석하게 합니다. ? 이유는 단순합니다. 내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 몸이 너무 피곤하고 몸이 무거워도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는 꼭 봐야 합니다. 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제 나온 비디오를 못 봤으면, 오늘이라도 꼭 봐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한 번쯤 안 봐도 지장이 없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꼭 봐야 합니다. ? 이유는 단순합니다. 드라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없고 바빠도 심지어 아파도, 자녀가 뭘 해야 하면 꼭 데리고 갑니다. ? 사랑하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그 드라마는 꼭 봐야 합니다. ? 좋아하니까. 사랑하는 연인끼리 정말 이상한 시간이 데이트를 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하도 시간이 없고 바쁘니까 새벽에도 만나고, 아주 늦은 심야에도 만납니다. ? 사랑하니까 보고 싶은 겁니다.

 

사랑하면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나는 절대 새벽기도는 못한다.’ 무슨 뜻입니까? ‘나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와 같습니다. 내 자녀가 아침 6시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데 절대 못 갑니까? 그럼 새벽기도도 가능합니다. 나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이 내게 속삭이십니다. ‘, 너랑 새벽에 데이트하고 싶은데, 나와 줄래? , 너랑 매일 대화하고 싶은데 같이 만나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때 우리는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 아침에 못 일어나는데요. , 시간 없는데요. 정말 바빠요. 드라마 볼 시간 밖에 없어요.’ 우리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기는 하는 겁니까?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2.  그들의 염려 (3-4)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아침 일찍 무덤으로 향하는 여인들에게 한 가지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3)

 

이들은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을 누가 치워줄지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걱정은 사실 필요가 없는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자신들의 힘으로는 그 돌을(사실은 바위를) 치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덤에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드리고자 하는 애틋한 사랑의 마음,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애물인 큰 바위, 이 둘 사이에서 여인들은 걱정을 한 겁니다. 그러나 이미 돌은 굴려져 있었습니다.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4)

 

인간은 끊임없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존재입니다. 어제를 후회하고, 미래를 염려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이 염려에 대해 통계를 낸 것이 있습니다. 염려의 40%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30%는 이미 일어나서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한 것이고, 22%는 사소한 고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따져보면 92%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단 4% 정도만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4%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도 쓸모가 없는 걱정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여인들도 걱정을 했지만, 사실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들은 왜 염려한 것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신에나 바르는 향품도 샀고, 무덤을 막은 돌을 치울 걱정도 한 것입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동시에 부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들은 갈릴리에서부터 따르며 섬겼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들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부활이라는 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한 것은 틀림없지만, 부활에 대한 믿음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 수 있습니까?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기도하지만, 또 기도하는 사람이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데, 자기 방식대로, 자기 생각대로 사랑하면 곤란합니다. 이 여인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헌신적인 마음을 행동으로까지 옮겼지만, 부활 신앙은 없었습니다.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확실한 부활 신앙 가운데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으로 가능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굉장한 열심을 가지고 엄청나게 헌신하며 섬기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이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면 안 되고, 말씀으로 해야 합니다. 또 지식적인 말씀만 있어도 안 되고, 마음속에 따뜻한 사랑과 열정으로 해야 합니다.

 

말씀 없는 열정과 사랑은 꽉 막혀서 자기만 옳다고 하는 사람이 되게 만들고, 사랑 없는 말씀 지식은 위선적인 바리새인이 되게 만듭니다. 말씀 없는 열정과 사랑은 늘 걱정하며 살게 만들고, 사랑 없는 말씀 지식은 차갑고 냉랭한 사람으로 살게 만듭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사랑은 기도이고, 믿음은 말씀입니다. 물론 아주 딱 잘라 구분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주님과의 사랑이 깊어지고,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할수록 믿음이 자랍니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이 우리 신앙생활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바른 믿음 가운데 자라가고 있습니까?

 

 

3.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 (5-8)

 

이제 여인들은 열린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5)

 

흰 옷을 입은 청년은 다른 복음서들을 볼 때 분명히 천사입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6)

 

첫째, 예수님은 살아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7)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실 것이고, 거기서 뵙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려고 하십니까? 갈릴리는 어떤 곳입니까? 갈릴리는 예수님이 공적 사역을 시작하신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바람과 물결을 잔잔하게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행하시며 많은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 곳이 바로 갈릴리입니다. 바로 그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분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할 곳입니다. 우리는 그 갈릴리에서만 예수님을 뵐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돌아가신 예수님이 누우셨던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을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곳, 우리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시는 그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가서 주님을 뵈옵고 능력을 받아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미국의 미래교회학자이자 드류 대학교(Drew University) 석좌교수인 레너드 스위트(Leonard Sweet)이라는 분이 있는데, 엄청나게 많은 책을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스위트 교수는 서구 교회를 4M으로 분석하여 구분했습니다.

 

첫째는 선교하는 교회(Mission Church)’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는 이 선교하는 교회이며, 성령님께 사로잡혀 선교적 소명에 충실했던 교회입니다.

 

둘째, ‘사역하는 교회(Ministry Church)’입니다.

여러 종류의 사역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교회이지만, 조직화되고 제도화되면서 역동성이 떨어진 교회입니다.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조금 잃어버리게 되면 목회적 교회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 중심, 선교 중심의 교회가 열심을 잃게 되면 목회적 교회로 변질되어서, 성도들은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않고 목사도 더 이상 복음 전도를 설교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나 교인들이 복음을 전하여 영혼 구원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사역 중심, 목회 중심, 행정 중심, 행사 중심의 교회로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셋째, ‘현상 유지만 하는 교회(Maintenance Church)’입니다.

교회 자체를 유지하고 존속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린 교회를 말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섬기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교회 안의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현상 유지에만 골몰하는 교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다투며 분열합니다.

 

현상 유지하는 교회는 더 이상 부흥이나 발전이 없고 그냥 안주하는 교회로 변질됩니다. 핵심 단어가 안주입니다. 많은 미주의 한인 교회들과 한국의 교회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넷째, ‘박물관 교회(Museum Church)’ 또는 기념비 교회(Monement Church)’입니다.

항상 그때가 좋았는데하면서 과거를 그리워하고 회상하는 일만 하는 교회입니다.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과거의 문화를 보존하는 일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이런 교회들을 유럽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관광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지금도 예배나 미사가 드려지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당이 있으니까 있는 것일 뿐, 관광으로 수입을 올리는 것이 주된 일이 되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교회들 뿐 아니라 지금도 그런 교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뭘 해보자고 하면 우리도 다 해봤어.’라고 하며 더 이상 배우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정신이 아예 사라져버린 교회입니다.

 

그런데 박물관에 가보면 무엇이 있습니까? 과거의 유산들이 있고 유물들이 있습니다.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 등에 가보면 미라가 있을 뿐입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과거만이 있습니다. 박물관 교회의 특징은 과거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미국장로교를 비롯한 미국의 전통교단들의 대다수 교회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에 안타깝습니다.

 

교회만 그렇습니까?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성도도 선교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열심히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만들기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리며 기도하며 애를 씁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또 사역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영혼 구원은 약간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교회에서 하는 일에 협조하면서 열심히 뛰고 사역하고 섬깁니다. 그러다 보면 약간 공허해지기도 합니다.

 

현상 유지하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더 하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고, 그냥 지금 상태만 유지하자고 합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박물관 그리스도인입니다. 과거에 머물러서 내가 왕년에 이랬는데하는 것만 자랑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어디에 속합니까? 우리 한 번 솔직하게,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점검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다 서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는 뭘 하다 왔니?”라고 하실 때 박물관 그리스도인 하다 왔는데요라고 하거나 현상 유지만 하다 왔는데요라고 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사역도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영혼 구원의 열정은 없이 그냥 나의 재미와 만족만을 위해서 하다 왔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비록 열매가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다 왔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지하는 교회, 박물관 교회는 마치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는 여인과도 같습니다. 반면, 선교하는 교회는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갈릴리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정을 품고 아낌없는 헌신으로 자신을 드릴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면서 흥분하는 곳입니다.

 

한 생명이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을 보며 감격하는 곳, 내가 그 동안 그렇게 기도하며 섬겼던 저 영혼이 드디어 주님 앞에 나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서 세례를 받는 곳, 그래서 우리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는 그곳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갈릴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앞서 갈릴리에 가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갈릴리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여인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8)

 

이들은 나중에는 전하게 되지만, 이때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말 선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대 사명을 주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며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여인들의 처음 반응처럼 우리가 두려워하고 도망가기만 있겠습니까? 현상 유지만 하겠습니까? 아니면 갈릴리에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두고 힘차게 달려가겠습니까?

 

주님은 우리 각자의 믿음의 대답을 바로 지금 이 순간 기다리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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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교회를 교회 되게 (마 28:18-20) *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11 (3/26/2017) kpccoh 2017.03.26 3103
95 라합의 믿음 (수 2:8-14) - 일일선교집회 (이라합 선교사) kpccoh 2017.03.21 1226
94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은 하늘의 기쁨 (눅 15:1-15) *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10 (3/12/2017) kpccoh 2017.03.12 3918
93 서로를 치유하는 교회 (엡 4:25-32) *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9 (3/05/2017) kpccoh 2017.03.05 2834
92 하나님의 약속 (계 22:1-5) - 이맘다해 선교사 (2/26/2017) 이준원 2017.02.27 839
91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17-24) *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8 (2/19/2017) kpccoh 2017.02.19 5660
90 헌신된 성도의 봉사로 세워지는 교회 (엡 4:7-16) *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7 (2/12/2017) kpccoh 2017.02.12 6738
89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 (엡 4:1-6) *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6 (2/05/2017) kpccoh 2017.02.05 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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